수인선 협궤공원을 찾아서
60년대 초반 서울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전차와 기동차에 대한 추억을 조금은 가지고 있을겁니다.
궤도를 따라 조금만 회전을 하려해도 공중선에서 이탈되는 도르레로 된 전기유입장치,
빠질 때마다 제 자리에 끼워 넣느라 차장은 창문 밖으로 상반신을 내밀고 하늘을 쳐다보며
두손으로 줄을 당겨 한참만에 도르레를 제 자리에 끼워놓고 스을슬 움직여도 누구 하나
불평이 없던 그런 시절이지요
(이 사진은 출처를 몰라 밝히질 못했는데 문제가 되면 자삭합니다. 따온곳)
아마 이 사진은 청계천문화관의 그림인 것 같습니다.
동대문에서 왕십리를 거쳐 광나루까지 운행하던 기동차를 그린겁니다.
기동차가 출발하는 동대문 역은 지금 이스턴호텔 바로 뒤로 기억하고 있는데
마치 마카로니 웨스턴에 나오는 멕시코인들의 부락처럼 가운데 광장이 있고
주위에 2-3층의 성벽과 같은 건물이 둘러싸고 있는 구조로 기억합니다.
도시를 빠져나오려면 주변의 판잣집 사이로 달려야 하는 것은 필수지요.
위의 사진에서 전기줄과 전기유입장치가 먼저 말한 전차의 것입니다.
기동차는 전기로 움직이지 않고 자체 엔진으로 움직이니 저런 장치는 필요 없겠지요.
이건 1941년대 동대문과 뚝섬간을 달리던 기동차 사진입니다.(자동차생활)
마지막 운행정지되는 1965년도까지도 거의 비슷한 형태로 기억하는데, 전방에 자동차로 치면 범퍼 같은 것이 없어
멀리 떨어져보면 무식하게 생긴 굵은 바퀴축 위에 집채 하나 덜렁 올려 놓은듯한 느낌이었지요.
궤도 위를 달리는 흙받이가 없는 트레일러 뒷모습을 상상하시면 될겁니다.
지난번 <우드워커> 작품전시회가 안산에서 열려 마침 근처에
남아있다는 수인선 협궤열차 공원으로 갔습니다.(고잔-중앙역 사이)
소래에 가면 아직도 볼 수 있는 소래철교지요
지금은 이렇게 신도시 쪽과 소래 어시장을 연결하는 통로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협궤의 레일 폭이 불과 76센티미터 정도이니
위에 타공망을 깔고 사람을 통행 시켜도 사람이 붐비는 주말에는
서로 비껴 지나가기도 힘들 정도로 좁으니 과연 이 철도 위로는 어떻게 생긴 기차가 지나가고
어떤 사연들이 있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위의 사진은 <폐선.폐역답사>라는 사이트에서 담아 온 사진입니다.
저는 낚시를 하느라 70년대 딱 한번 타본 적이 있는데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수원과 인천 사이를 오가며 소금과 해산물, 학생과 출퇴근하는 회사원들을 나르며
약 60년간 오갔으니 거기에 쌓인 사연이야 이루 말할 수 없겠지요.
소래어시장을 들러 소래역의 흔적을 찾아 볼래도 도무지 찾을 수 없어 갑갑하던 차에
이번 전시회를 여는 근처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하니 무척 반가왔습니다.
그러나 수인 협궤공원은 내가 기대하던 수인협궤선에 대한 기억이 아닌
그저 그런 근린공원에 다름이 아니었습니다.
위 사진은 지난 신문 기사중 일부를 캡처한 것입니다.
아마 폐선 시키자는 결정이 났을 때도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제 와보면 이런 의견이 무시된게 너무도 아쉽습니다.
시장경제와 경쟁력에 밀려
그 흔한 역사문화 관광적 가치 하나 제대로 고려할 여유가 그렇게 없었는지
그저 수인선 협궤가 지니는 의미가
겨우 기차놀이와 판자떼기로 만든 초라한 모형기차 로 밖에 기억할만한 가치가 없는 것인지
황당할 따름입니다.
꼬마열차라니까 아마 놀이공원의 미니에이처 기차가 먼저 연상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며칠 전 오랫만에 강남대로를 갔다 깜짝 놀랐습니다.
스타워즈에 나오는 광선검을 커다랗게 만들어 교보4거리부터 강남역까지
그리스 신전 열주처럼 세워놓아 번쩍이는 LED광선은
나를 압도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누구를 향한 외침일까요?
과유불급을 떠올리는 내가 이상한 것 일까요?
낡고 가난하고 어두운 역사는 그저 덮어 버리고
카페의 장식용 골동품처럼 관상용으로 밖에 쓸모가 없는 것인지
그 옛날 뻘에서 파낸 조개를 머리에 이고가는 할머니의 새까맣고 주름진 얼굴은
우리들의 초상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존재밖에 되지 않는지
그저 답답할 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