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구 골목길을 한번 걸어볼까요? -2/2
그렇게 동아백화점 근방에서 돼지불고기를 먹고
스을슬 신발골목, 주얼리골목 심지어 양키골목을 거쳐
경상감영공원으로 구경하며 걸어갔습니다.
경상감영공원은 잘 정비되고 깨끗했습니다만
서울의 파고다공원처럼 노인들이 많은 동네더군요.
주변건물에 다방, 콜라텍, 국수집들이 있어 차라리 이 동네에서 점심을 했으면 더 나을 뻔 했습니다.
대구 근대역사관으로 쓰이고 있는 옛 조선식산은행 건물입니다.
겉에는 여러가지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고요
타일은 대리석 타일 같은데 제 전공이 아니라 잘 모르겠지만
이 타일을 보는 순간 서울의 근대건축에서도 보았던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정문은 공원에 붙어있는 후문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금고입니다. 군산 조선은행 건물에서도 보았지만 속은 한공간인데
왜 저렇게 작은 문을 위에다 만들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경상감영이 이렇게 컸습니다.
한쪽 작은 방에서는 일제시대 때 버스를 타고 가상투어를 하는 영상실이 있습니다.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선물로 가장한 폭탄꾸러미가 배달되어 일본인 경찰 수명이 중상을 입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의 주범으로 장진홍의사가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복역중 쓴 편지입니다.
왼쪽에 장진홍(張鎭弘)이라는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2층에서는 근대의 삶과 추억이라는 사진전시회가 있었는데
대구 서문시장 대형사진입니다.
까만 옷은 접니다.
아~ 눈매는 지금까지도 살아 있군요.
패티김입니다.
왜 능금꽃 피는 고향인가 했더니 일명 대구찬가로 불리는 노래인데
'능금꽃 향기로운 내 고향땅은/ 팔공산 바라보는 해뜨는 거리/ 그대와 나 여기서 꿈꾸었네...'로 나갑니다.
계산성당으로 찾아가는 길에도 곳곳에 과거의 흔적이 있습니다
1899년 한옥식으로 지은 최초의 성당. 계산성당 홈페이지 사진입니다.
1901년 지진으로 인항 화재로 소실되었답니다.
제대 뒤로는 가운데 성모마리아 상이 스테인드 글래스로 인해 살아나는 느낌입니다.
'빼았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유명한 이상화 시인의 집입니다.
일제에 의해 억지로 짊어진 차관을 전국민이 되갚아 주권을 되찾자는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한 것으로 유명하지요.
거리 이름에 국채보상로도 있습니다.
원래는 이 솟을대문이 정문이어서 여기를 들어와 두갈래로 나뉘어졌던 모양인데
솟을대문쪽은 커다란 건물에 막혔습니다.
두갈래는 당연히 사랑채와 안채로 갈리었겠지요.
몇해전 겨울도 다벗어나지 못한 2월말 군산을 답사한 적이 있습니다.
서울 생각만하고 거센 바닷바람에 몸이 얼어가며 인터넷지도를 프린트해서
찾아볼 곳을 마킹펜으로 표시하고 구시가지를 돌아 다녔지요.
그때 아쉬웠던 것이 이런 좋은 유산들을 방치해버리는가 하는 것이었는데
모처럼 대구에서 그런 아쉬움을 풀었습니다.
자~ 이제 포항으로 떠납니다.
2006년 군산답사기 http://yonseidc.com/bbs/view.php?id=gallery&page=1&sn1=&divpage=1&sn=off&ss=on&sc=on&keyword=군산&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81
2009년 군산답사기 http://yonseidc.com/bbs/view.php?id=gallery&page=1&sn1=&divpage=1&sn=off&ss=on&sc=on&keyword=군산&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