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꿈에 자꾸 그곳이 나타나는거지?
좀 울적합니다.
일요일(11/12) 방안에 앉아 있자니 폭음한 다음 날처럼 몸과 마음이 안정되질 않습니다.
집사람은 목이 완전히 잠겨있어 꼼짝도 못하고...
카메라를 둘러메고 이태원과 해방촌으로 한번 가보기로 했습니다.
꿈에 관한 한 저에게는 한가지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가 있습니다.
산기슭을 깍아지른 절벽 밑에 '하꼬방(판잣집)'들이 널려있고 그 위에 교회당이 보이는
꿈을 가끔 꾸는데 왜 그런 꿈이 나타나는 지 도무지 그 수수께끼를 풀 길이 없는 것입니다.
미루어 짐작을 해보건데 그곳이 아마도 해방촌일 것 같긴 하고
월남가족인 우리는 전쟁 전 남대문쪽에 자리잡았었고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가 다시 남대문 근방에 자리를 잡았었습니다.
명절 때 큰형님께 물어보니 잠시 해방촌에 있았던 적이 있었다는데
그 당시 저는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니 더욱 의문이지요.
해방촌과 이태원을 얘기하기 전에 먼저 뗄래야 뗄 수 없는 용산을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용산은 조선조에 군자감을 설치하여 군수물자를 관리하였고
청일전쟁 때는 일본군 숙영지,
1904년 러일전쟁 발발 직후 용산 동쪽에 육군임시철도감부를 설치하였답니다.
그 결과 정식으로 한국주차군 사령부와 사단이 용산에 주둔하게 된 것입니다.
일본 주차군 사령부 (서울 20세기 100년의 기록 서울학연구소)
1945년 해방과 더불어 미군 24군단 사령부가 용산기지에 들어서게 되었고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1953년 8월 이곳에 유엔군사령부,
주한 미군사령부를 두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일제시대에는 충무로를 중심으로 일본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지만
총독관사가 있는 용산 사령부 근처에 일본인이 많이 살았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1911 용산 일본군 병영 안의 총독관저 (서울 20세기 100년의 기록 서울학연구소)
그러니 남산은 거의 일본인 주거지에 둘러싸이다시피 하게 된 것이지요.
이 남산 서쪽 기슭에 국사당을 인왕산으로 옮기고 조선신궁을 지었는데
숭례문 옆으로는 북쪽 참배길을 남쪽으로는 지금 소월길쪽에 남쪽 참배길을 만들었습니다.
규모도 대단해서 지금의 야외음악당에서부터 남산 중턱까지
서울역에서 보면 남산이 하나의 거대한 신전처럼 보이게 된 것이지요.
(위의 4개 사진 : 보림재님의 블로그 http://blog.ohmynews.com/jeongwh59/275663
'남산 중턱의 조선신궁을 아십니까?' 에서 발췌했습니다.)
해방촌은 바로 이 조선신궁 남쪽 기슭 국유림에 해방 이후 월남한 난민의 집단거주지로
국가에서 임대해 준 것이었습니다.
일제하라면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이겠습니다.
당연히 일본인 주거지에서 이곳을 통해 조선신궁으로 올라가는 참배길 흔적도 남아 있지요.
해방촌과 이태원은 이런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의 쓰라린 역사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제와 PX문화를 떠나서 생각하기 힘든 곳이지요.
물론 지금은 그런 흔적을 찾아 보기 힘들지만
우리는 그 역사를 극복하고 뛰어넘을 만큼 성숙되었을까요?
저 뒤에 보이는 교회는 해방촌의 상징인 해방촌교회입니다.
알렌 등이 세운 남대문교회에서 설립하였으며 해방촌에 모여 살던 실향민들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정신적으로 힘을 주는 역할을 했을겁니다.
이태원쪽에서 본 모습입니다.
남산기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고 봐야겠지요.
경사가 급한 골목길이어선지 청소 리어카도 동력이 달린 삼륜차입니다.
남영역이나 숙대입구역에서 내려 미8군 담장을 끼고 용산고등학교쪽으로 올라갑니다.
용산고등학교 끝자락에 해방촌의 중심지로 보이는
작은 화단이 있는 로터리가 나타납니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가파른는 계단이 나타나는데 지금에야 골목길이 사통팔달 연결괴어 있지만
이 계단이 조선신궁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였을겁니다.
게단 바로 곁에 주차 되어 있는 승용차가 아슬아슬해보입니다.
지금은 판잣집이 있을 리 없지요.
오래 전에 지어진 개인주택과 최근에 지어진 연립주택들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해방촌이라는 상호는 몇군데 있습니다만 '선천'은 무슨 뜻일까요?
이곳에 있는 보성여자고등학교 설립자가 한경직 목사입니다.
평안북도 선천분이지요.
아마 월남민들의 다수가 선천분이었으리라 추측해봅니다.
저의 고향이 선천인데 그래서 그런 꿈을 꾸었을까요?
해방촌의 중심지인 해방촌 5거리 용산 2가동 주민센터입니다.
왼쪽 건물들 밑에 난 통로로 들어서면 신흥시장이라는 작은 시장이 있는데
막상 시장 내부보다는 그 건물 윗쪽에 난 길의 점포들이 더 성업 중이었습니다.
지붕으로 막아 대낮인데도 전등을 켜놓고 있습니다.
달동네 시장에 있을 법한 바느질집이 꽤 많이 보입니다.
드디어 해방촌 교회에 다 왔습니다.
로고가 독특합니다. 아마 한반도와 십자가 같은데...
왼쪽 건물 아래쪽으로 위에서 본 신흥시장이 있습니다.
해방촌 부동산.
곁에 지나는 동네 사람에게 '배추 샀어?'라고 물어보던 아줌마가
어리버리한 저에게 어데 찾냐고 물으며 보성여고 가는 길을 가리켜줍니다.
여기는 해방촌 성당입니다.
한경직 목사가 설립한 보성여고에서는 축제가 한창입니다.
해방촌에서 제일 그럴듯한 골목인 것 같지요?
계단 끝에도 자동차가 주차 되어 있고...
능선으로 난 골목길은 보기에도 숨이 찹니다.
언덕길 아래로 미군영내가 들여다 보입니다.
해방촌 어디에서나 남산타워가 보입니다.
이쯤되면 서울의 랜드마크가 아니라 해방촌의 랜드마크처럼 보입니다.
해방촌 위로는 소월길이 지나고 있지요.
여름에 평상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 보면 마음만은 배부를 것 같습니다.
남산 케이블카 근처에 있는 한양공원 표지석
한양공원이 먼저인지 조선신궁이 먼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고종이 쓴 휘호로 뒷쪽에는 연혁과 기부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으나
알아 볼 수 없게 정으로 쪼아 놓았습니다.
이 아래에는 유명한 돈가스집이 몇개 있으니
산책하시다 출출하시면 들러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다음은 이태원 모습을 사진위주로 올려 놓을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