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지도 않았던 상차림 - 삿뽀로
제가 원래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편이긴 하지만 강남쪽에 있는 회사를 다니는 아들때문에
요즈음은 더욱 일찍 일어납니다.
애비란 놈이 아들 출근하는데 이부자리에 자빠져 코나 골고 있는 꼴은 제가 참지 못할 것 같아서요.
버스에 타보면 의외로 사람이 많습니다.
거의 모두 새벽일 나가는 부지런한 사람들이지요.
머~ 개중에는 저어기 노원역쪽에서 밤새 놀다 술냄새 풀풀 풍기며
새벽 분위기완 전혀 동떨어져 뒷자리에 딱 들러붙어 주무시고 계시는 젊은이도 가끔 보이긴 하지만요.
하여간 아침 일찍 헬스클럽에 가면 거의 라커번호 1번 열쇠를 손에 쥐게 됩니다.
한 40분 정도 웨이트를 하고 러닝머신 있는 곳으로 와서 J 채널을 틀어놓으면
대개 <이자카야 100선>, <홋카이도 계절의 아름다움>, <온천순례기> 등의 프로그램이 나옵니다.
관광과 문화도 볼만하지만 사이사이에 맛집과 요리들이 나오니 지루한 러닝타임 킬링용으론 그만이지요.
살을 빼겠다며 악착같이 먹는 프로를 본다는 게 아이러니이긴 하지만서도요.
아침에 보는 프로그램에서 별 것도 아닌 재료로 맛나게 안주를 만드는 걸 보면서
나도 한번 만들어 보아야겠다는 유혹이 생기기도 합니다.
언젠가 참치 몇조각에 미소로 버무린 살짝 데친 파가 나오는 걸 보고 '간단하니까' 한번 만들어 먹은 적도 있지요.
음식을 먹는다 하면 대부분 '어디 맛있는 거 없나?'하며 찾아 가는게 대부분이겠지만,
어떤 때는 그보다도 '어디 깨끗하고 분위기 좋은데 없나?'하며 음식점을 찾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골목골목 뒤져 보기도 하지만,
고층빌딩 스카이라운지에서 야경을 즐기며 음식을 먹는다거나
위의 프로를 보며 발동이 걸려 '어디 흔히 접할 수 없는 가정요리 같은 것 없을까?' 하며 찾게 되는겁니다.
그런데 저 지난 한주동안 그러한 곳을 두군데나 들러보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한군데는 작은 활어횟집으로 밑반찬이 해물로 덮어버려 입이 벌어졌었는데
이거야말로 분위기보다는 실속있고 신선한 해산물이 상을 덮어 버립니다.
그러나 해물은 후배가 따로 주문을 한 것이라 하니 나중에 해물이 없는 상태를 본 다음 포스팅을 하기로 하겠습니다.
"아빠, 토요일 점심때 시간 있어요?"
"별 약속 없는데, 왜?"
"곧 엄마 생신인데 식사나 같이 해요."
얼마 전에 아들이 내 생일상 받아준다 해서 대충 엄마와 내가 한꺼번에 치룬 거 아니냐 물으니
그러면 엄마가 섭섭해한다며 꼭 하잡니다.
삿뽀로라는 일식집이 강북에 생긴 건 얼마되지 않는데 강북 같지 않게 규모도 크고 사람도 많이 붐빕니다.
회와 함께 먹으라며 나온건데 오~ 이거 처음 보는겁니다.
불현듯 헬스클럽에서 봤던 일본선술집 프로가 생각나며 흥미가 솟습니다.
참치내장과 날치알, 간장에 절인 고추와 파가 있습니다.
얼린 돌 위에 회를 얹어 내옵니다.
여자분들 취향에 딱 맞췄습니다.
구절판도 아니고 아홉칸판에 밑반찬을 넣어 나옵니다.
'이래도 사랑하는 마눌님이나 애인이랑 함께 안 올꺼야?' 시위를 하는 것 같습니다.
수삼이 아닌 생버섯과 꿀, 들깨소스로 버무린듯한 소라무침, 견과류볶음 등등
집사람도 내가 사진 찍는데 이골이 났는지 묵은지로 싼 회를 젓가락으로 들고 찍으랍니다.
고추냉이를 직접 갈은 와사비.
이런 대중적인 곳에서 이런 생와사비를 만나다니
기왕 하는거 강판과 고추냉이를 가져와 직접 갈아 먹으라 하면 어떨까 욕심을 내봅니다.
묵은지와 고추 그리고 이름모를 절인 나물
나 이거야 참~ 결혼식에만 이벤트가 있는 줄 알았더니 여기도 빠지지 않습니다.
생일이랬더니 얼음보숭이 위에 회를 얹어 케이크처럼 만들어 대령합니다.
졌습니다.
저 뒤에선 생일노래를 부르라면 부르겠지만 내 취향이 아닌데 하는 손주의 표정입니다.
와인 두잔과 함께...
사진 찍어 액자에 넣어 줄테니 케익 앞에서 러브샷을 하랍니다.
이거 영 쑥스럽구만~~
러브샷은 서로 '팔뚝'들이 굵어 안 될 것 같아 손을 어깨에 올렸더니 무겁다고 움찔합니다.
나이가 드니 이게 얼마만이냐며 '어서 오사이다'하고 반기진 못하겠지요.
금가루도 뿌리고...
오호~~ 이것도 예상조차 못했습니다.
살치살은 아닌 것 같은데 불에 달궈온 돌판을 가져와 그 위에 올려놓고 굽습니다.
살치살이 아니면 어떻습니까?
이거 장소만 다르지 일본 료칸 다다미 위에 상차려놓고 먹는 느낌입니다.
좁은 불판 위에 4인분이 올라 앉으니 붐빕니다.
육즙이 흘러내리는 모양이 저 밑바닥에 숨겨져 있던 본능을 자극시킵니다.
서서하지 말고 무릅꿇고 앉아서 하라면 과욕이지요?
선도가 좋으니 살짝 겉만 익혀서...
해물우동
이건 이름이 무언지 제가 잊어 버렸습니다.
'너는 누구냐!'
생일을 맞은 사람에게만 주는 약식 생일소반
같이 붙어있는 한식당 경복궁에서도 같은 상차림을 줍니다.
마지막으로 지리와 알밥
맛이 입에 짝 맞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만한 가격에 이만한 이벤트에
느닷없는 호강을 했습니다.
돈 쓰지 말라고 강력히 주장하는 집사람이지만 은근히 흐믓한 표정입니다.
우리 집 엄지, 'VIP'께서 만족스러웠다면 모두에게 다 즐거운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