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갤러리

아줌마, 나 삐질라 그래~

fotomani 2012. 7. 24. 09:05

저한테는 느지막한 시간인 8시 반에 집을 나와 천안 가는 지하철에 올랐습니다.

그럴 듯하게 말하자면 지하철로 가보는 천안여행정도로 다소 낭만적인 느낌이 나지만,

, 까놓고 말하자면 미리 가보는 백수여행. 천안편쯤 되겠지요.

놀토에 할 일도 없이 집안에서 뭉기적거려야 좋을 게 없어 나왔는데,

공교롭게도 친구들이 죄다 결혼식이다 돌이다 해서 결국 청승맞게 혼자 전철에 올라타게 되었습니다

 

천안행 급행은 대략 한 시간에 한 대꼴이 되는 것 같습니다.

기다리기 귀찮아 그냥 일반전철을 타고 중간에 뒤따라오는 급행전철로 갈아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상당시간을 전철 안에 있을 것 같아 주간지나 사려고 하니 그 잘 보이던 매점이 하나도 보이질 않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신문을 보니 잠깐 만에 배터리 량은 절반으로 떨어지고,

하릴없이 앞에 앉은 처녀는 왜 저렇게 정신없이 조는 걸까?

왜 저 아저씬 양반다리로 앉아 있을까? 궁리도 해보고

옆에 앉은 아줌마는 뭐하는 아줌마인데 향수냄새가 진동할까? 추리도 해보면서 그럭저럭 천안에 도착했습니다.

 

 

( 말이 좋아 '지하철로 떠나는'이지 '미리 가보는 백수여행'입니다.

천안역에 내리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건 '어르신'입니다. )

 

플랫폼의 모습은 딱 빠고다 공원입니다. 어르신네가 유난히 눈에 많이 띱니다.

역전에서 버스를 타고 병천으로 갑니다.

오랜만에 보는 버드나무가 많은 걸 보니 역시 천안입니다.

독립기념관을 거쳐 병천에 도착하니 11시 반. 딱 세 시간 걸렸군요.

 

( 아우내 장터 )

 

오늘이 21일이라 마침 1,6 오일장이 서는 날입니다.

아우내장터는 여느 시골장이나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특산물로 괴산에서 재배된 대학 찰옥수수가 많이 보이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 장터 단골 안주에는 역시 돼지껍데기에 닭발이 빠지면 섭섭합니다. ) 

 

( 장터를 나오니 이리봐도 순대, )

 

( 저리봐도 호도과자입니다. )

 

장터에서 큰 길로 나서니 온통 순대국집과 호두과자집입니다.

언론매체에 따라 원조집도 달라지는지 모두 서로 다른 XX할머니를 내세우고 있지만

맛에 있어 크게 차이가 나는 것 같지는 않고 충남집, 청화집이 오래 된 집인 모양입니다.

사람이 바글대는 충남집으로 들어갑니다.

신발 분실에 대한 경고문과 진미만실(眞味滿室)’이라는 액자가 눈에 띱니다.

 

( 그중 오래 됐다는 충남집으로 들어갑니다. )

  

( 빈자리가 없습니다. )

 

( 기본반찬. 이게 1인분 량인 모양입니다. ) 

 

간단히 반주를 하려니 순대국으론 좀 부족할 듯하고 순대 한 접시를 시킵니다.

아줌마가 반찬 쟁반을 가져오더니 갑자기 방향을 틀어 늦게 온 옆자리 손님에게 반찬그릇을 내려 놉니다.

젓가락 들었던 손이 머쓱해집니다. 두 사람인 줄 알고 김치를 너무 많이 담았다나요?

아줌마! 나두 김치 많이 먹을 줄 알어~ 나 삐질라 그래~”하니 옆 손님들이 웃습니다.

 

( 이윽고 나온 순대 한 접시. 양이 무척 많습니다. )

 

많이도 담아 나옵니다.

아바이 순대처럼 껍질이 두텁지는 않고 삐져나온 당면이 인상적입니다.

순대를 손으로 밀어 넣어 만든 듯 내용물이 단단히 쟁여져 있지는 않고

약간 질긴 맛이 느껴지는 순대피와 마늘이나 생강처럼 여겨지는 잘 익은 채소가 씹힙니다.

하나를 해체해보았으나 무엇인지 정확히 구분하긴 어렵군요.

그러나 그 때문에 맛이 좀 독특합니다.

 

사실 갖은 양념을 20가지나넣는다고 자랑삼아 얘기하는 음식점들이 있는데 저는 이런 거 별로 좋아하질 않습니다.

그렇게 많은 재료를 범벅 시켜놓으면 대체 무슨 맛이 날까요?

 

( 제 자리를 못찾고 비죽비죽 고개를 내민 당면발이 인상적입니다.

머리고기 중에서도 오돌뼈를 많이 줘서 안주로는 먹을만 합니다. )

 

그러나 뭘 넣었다고 하는 지 한번 살펴볼 필요는 있겠습니다.

1999227일 경향신문에는

병천순대는 돼지피에 배추 양파 파 양배추 부추 피망 생강 마늘 찹쌀가루 들깨가루 새우젓을 함께 넣고 버무리기 때문에...’라고

실려 있는데, 최근 신문에도 채소류가 거의 대동소이하게 들어가고 있는 걸보면 야채순대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같이 나온 순대국물은 진국으로 노린내가 별로 나지 않고 구수하고 걸진 맛은 순대국 맛이 어떨지 짐작케 합니다.

결국 한 접시를 다 해치우지 못하고 조금 남긴 채로 나옵니다.

 

( 순대가 맛이 짙진 않지만 이 국물에 들어가면 조화를 잘 이룰 것 같더군요.

안주로 먹기 양이 적더라도 순대국 먹을 걸 잘못했습니다. ) 

 

( 전형적인 시골 버스정류소 )

 

 

( 재떨이 상당히 감각적입니다. )

 

( 시내 번화가도 한번 둘러보고 )

 

( 아라리오 갤러리도 한번 가봅니다. )

 

천안에 일주일에 한두번 볼일 있는 친구에게 혹시나 해서 전화를 하니 점심 먹고 내려온답니다.

터미널 근처 사우나에서 낮술도 깰 겸 냉열탕을 오가며 담금질을 해대고 나와 전화하니 5시에 도착한답니다.

나 원 참. 이럴 줄 알았으면 독립기념관이나 돌아보고 올 걸 잘못했습니다.

할 일없이 시간이나 죽이고 있자니 정말 백수 꼴 나버렸습니다.

사우나 근처가 중심가인 듯하여 번화가와 백화점, 아라리오 갤러리를 구경하니 그제서야 저기서 나타납니다.

 

( 이제야 도착했습니다. 저리로 오랍니다. )

 

( 근처 갈치조림 잘하는 집이 있다고 찾아간 집 )

 

 

그것만 해도 열불 터지는데 지 할일 다하고 그제서야 밥 먹으러 가잡니다.

오늘 코 꿰도 단단히 꿰였습니다.

저녁 먹으러 간 갈치조림 잘한다는 집은 밥집인지 운동하는 학생들이 와르르 몰려나옵니다.

사람이 많다는 건 일단 안심할 수 있다는 거지요. 단골인지 사장이하 종업원들이 모두 아는 체 합니다.

 

( 특이사항 국물과 무가 어우러지면서 그맛이 천하일품이라 XX옥을 찾는

손님들의 칭송이 자자하다.  ㅋ )

 

벽에 조악하게 써 붙인 갈치조림의 특이사항(?)에는

국물과 무가 어우러지면서 그 맛이 천하일품이라 XX옥을 찾는 손님들의 칭송이 자자하다라고 쓰여 있으니

마을 앞에 붙여진 낯간지러운 공덕비나 칭송비가 연상되는데

하여간 백수의 배는 존심이니 뭐니 집어치우고 어서 옵쇼하며 한잔 술에 갈치 안주를 반색을 하며 받아드리고야 맙니다.

 

( 자꾸 뚜껑을 여니 곁에서 아직 익지 않았다고 좀 더 기다리랍니다. )

 

( 뭐 칭송이 자자할 건 없겠지만 얼큰해서 입맛에 맞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