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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춘선폐선로 - 화랑대역에서 성북역까지

fotomani 2012. 8. 14. 08:36

폐선로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노스탤지어일 것 같습니다만,

전 몇 가지 해보지 못했던 일들이 더 떠오릅니다.

하나는 기관차 폭만큼 빡빡하게 들이 찬 주택들 사이로 지나가는 군산 세풍제지선(페이퍼코리아선) 모습을 찍어보지 못한 것과

이젠 선로를 다 뜯어낸 경의선 노변 대포집에서 술한잔 마실 기회를 영원히 놓쳤다는 아쉬움 때문입니다.

 

 

 위 사진은 2006년 군산 세풍제지선을 지나는 기관차를 찍겠다고 군산에 내려갔다가

시간을 잘못 알아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던 중 디델엔진 소리가 들려

화들짝 놀라 뛰쳐나가 보니 이미 기관차는 건물 사이로 없어지고 뱀꼬리만 보이는 상태입니다.

 

 

마찬가지로 2008년 세풍제지선은 아니지만 구 군산항과 연결되는 철도입니다.

이 허접스러운 데를 왜 찍고 다니느냐고요?

으음~ , 그렇게 대놓고 윽박지르시면 할 말이 없어지네요.

 

 

낭만적인 사연을 기대했던 분들한테는 실망감을 드려서 죄송하긴 하지만

십 몇 년전 경춘선이 지나가는 공릉역 부근에서 아는 분과 쏘주 한잔하던 중

곁으로 지나가는 열차의 기적소리는 아직도 아리게 귀에 울려옵니다.

얼마 전 경춘폐선로에 청춘벨트라는 공원화 계획을 들은 적이 있지만

그것도 경의선 폐선로 구간처럼 레일을 다 뜯어내버리고 공사를 할까봐

늦긴 했지만 부랴부랴 지난 토요일 화랑대역에서부터 성북역까지 걸어보기로 하였습니다.

 

윗 사진공릉쪽에서 화랑대 4거리  건널목으로 가는 길로

예전엔 왼쪽 아파트쪽으로 돼지갈비집들이 빼곡히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많던 갈비집들이 없어지거나 근처 어디로 몇집은 이사 갔는데

지금도 아파트 있는 곳에 줄줄이 갈비집들이 들어서 있다면 그거 하나로도 큰 볼거리가 될텐데요.

 

 

 

이런 곳을 공원화하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레일을 다 뜯어내고 자전거 도로내거나 선로에 레일바이크를 올려놓을까요?

 

 

전 이런 철도설비들도 좋은 구경거리가 된다고 봅니다.

타르에 절은 침목 냄새, 땡땡거리는 건널목 경보음 소리, 새빨갛고 보라색으로 켜진 신호등 불빛, 레일 변환기...

밤열차를 타고 서울 가까이 들어오면 도시의 하늘은 조명으로 붉게 물들어 있고

어둠 속에서 빨간 신호등불, 보라빛 신호등불이 보이면 여행 마무리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아쉬운 여행에 대한 미련이 남곤 했습니다.

 

 

84년도에 만들어진 침목인가요?

 

 

 

역사는 꽁꽁 잠겨있지만 이정표는 불과 2년 전까지도 쓰이던 것이라 깨끗합니다.

 

 

저쪽 끝은 육사 교내를 관통하며 다음 역인 퇴계원으로 향하겠군요.

 

 

때때로 화랑대역은 전시장으로도 쓰였던 모양입니다.

 

 

앞쪽으로 오니 경작금지 팻말이 붙여 있는데도 아랑곳 없이 평상을 갖다놓고 텃밭을 가꾸었습니다.

생수병이 있는 걸 보니 몇시간 전에도 '난닝구'를 걷어 올리고 부채질하고 있었을 지도 모르지요. 

이렇게 공권력에 넌즈시 비벼볼 수 있는 구석이 있다는 것만도 얼마나 여유로운 삶인가요?

 

 

공릉쪽으로 오며 폐선로는 흙을 덮어 인근 아파트의 간이 출입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숨통이 터진거지요.

 

 

공릉쪽으로 들어오며 지하통로에 아깃자깃한 그림을 그려 놓았습니다.

 

 

그 통로 한번 상당히 비좁군요.

 

 

 

드디어 본격적인 공릉동입니다.

오래 전에 저 근방 어디에선가 쏘주 한잔 들며 경보음이나 기적소리를 들었겠지요.

 

 

차단기 내부가 상당히 복잡합니다.

 

 

 

왼쪽으로 역사는 없어지고 플랫폼 흔적만 보입니다.

언제부터인가 도시발전이라는 게 지저분한 것 모조리 없애버리고 똑같은 고층아파트를

그자리에 앉혀놓는 게  전형적인 발전양식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효율과 실적만이 강조되던 시대의 일입니다.

 

XX단지 몇동 몇호하면 한틀에서 찍어낸 듯 똑같은 아파트를 몇번 돌면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같은 사람은 숫자에 약해 몇번씩 찾아가 본 아파트지만 진입로와 생김새가 너무 똑같아

매번 전화를 걸어 몇동 몇호였는 지 확인하고서야 옆동으로 갔던 발길을 돌려 나옵니다.

아파트 입구에 구멍가게라도 하나 있거나 대포집이라도 하나 있었더라면

절~대로 잊어 버리지 않았을텐데요.

 

 

 

 

 

 

성북역으로 들어가며 중랑천을 가로지르는 폐철교입니다.

어릴 때 이런 곳을 건너면 뭔지 상당히 험악한 경고문이 써붙혀져 있었던 것 같은데요.

 

 

 

인공강우 때문에 철교 밑을 지날 때면 이렇게 입 벌리고 하늘을 쳐다보면 안됩니다.

 

 

 

레일을 침목에 고정하는 핀입니다.

재건, 건설의 상징인 대못에서 핀으로 바뀐 게 언제부터인가요?

'대한니우스'에 산업철도 기공식에 안전모를 쓴 고위관리들께서 흰장갑을 끼고

 번쩍번쩍 도금된 곡괭이처럼 생긴 망치로

 대못을 침목에 박는 활동사진이 아직도 머리에 삼삼합니다. 

 

 

종착역으로 질주하는 열차를 그린 영화 '머니 트레인'을 연상시키는 차단벽

경춘선 폐선로 철도부지는 생각보다 넓습니다.

아무쪼록 좋은 아이디어들을 내서 사람사는 이야기가 있는 폐선로 공원이 되길 기대해봅니다.

 

 

 

제가 좋아하는 빨간 신호등이 보입니다.

폐선로는 끝났으니 이제 밖으로 나가야지요. 다시 돌아가자니 그렇고 '에라 담을 넘자'

다음 날 제 가슴 흉골엔 멍이 하나 크게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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