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그냥 할배할랍니다. - 장난감골목
( 장난감골목은 동대문 4번 출구쪽에 있습니다. 대개 독일약국을 기준으로 찾아 가더군요. )
지금은 기억에도 가물가물하시겠지만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처음으로 받은 선물을 아직도 기억하고 계신 분 있는가요?
그걸 생각하며 사랑이 느껴지는 선물의 감촉, 아릿한 느낌과 가슴 한쪽이 비어지는 기분이 되살아난다면
아마 여러분은 아직도 젊음을 간직하고 계신 것일 겁니다.
( 일본말로 쓰여진 프라모델 박스 )
그러나 선물은 역시 아이들에 더 어울리는 말입니다.
더구나 성탄절이 다가오면 종교를 불문하고 왠지 모르게 들뜨고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게 대부분일겁니다.
나이가 들면 이런 감정도 무뎌지고 더구나 ‘돈 아깝게 이런 걸 다 사왔느냐’는 소릴 한번 들으면
선물이라는 단어는 우리의 머리 저 깊숙한 곳에 처박아 놓게 마련이지요.
그러나 집에 꼬맹이가 생기면 기억의 뒤안길에 깊이 파묻어 놓았던 선물이라는 생소한 단어를 새삼스럽게 떠올리게 됩니다.
익숙칠 않으니 평소처럼 무심히 지나고 있다가 크리스마스 캐롤에 깜짝 놀라
성탄 전야에 부랴부랴 선물을 마련하는 일을 겪은 후로는
이번엔 좀 더 성의 있게 준비를 해보자고 구경도 할 겸 장난감골목을 찾기로 했습니다.
아, 정확한 이름은 동대문 완구종합시장입니다.
( 이렇게 레인을 만들어 놓고 저절로 움직이는 기차, 자동차, 바이크 종류가 많습니다. )
( 이 녀석은 아예 떠날 줄 모릅니다. )
( 요즘은 남자아이들도 이걸 좋아 한다는군요. )
동대문 근처에 있는 장난감 골목은 완구, 학용품, 팬시용품, 이벤트용품, 등산용품, 판촉용품 등
잡화들을 전국적으로 도산매하는 곳인데 이제는 거의 관광특구가 되다시피 한 곳입니다.
지금은 거의 모든 관광지 편의점에 폭죽이 준비되어 있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폭죽은 불량식품처럼 아무데서나 구입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을 동반한 숙박여행이라면 여행지의 추억거리로 폭죽이나 형광팔찌들을 준비하여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줄 수도 있을 겁니다.
( 자동차 운전대. )
12월 15일 아직 성탄절까지 10일 정도 남았지만 장난감 골목은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저도 딸내미에게 꼬맹이 요즘 취향이 무엇인지 물어보니 ‘닌자 레고’라고 합니다.
‘닌자 레고’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부딪혀 보기로 합니다.
저출산이라고는 하지만 여기는 딴 세상으로 아이들 천국입니다.
너무 종류가 많아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장난감 앞에서 떠날 줄 모르는 아이와
엄마 아빠가 승강이하는 풍경은 흔히 볼 수 있습니다.
( 닌자 레고로 소원을 풀었습니다. 이래서 아이들 대상 산업은 불황이 없는 모양입니다. )
병뚜껑으로 바퀴를 만들고 깡통을 오리고 접어 만든 자동차를 가지고 놀던 쉰세대가
정교한 미니카들을 보고 있으면 그거 하나 사고픈 생각이 문득 듭니다.
그러니 어른들 장난감을 파는 키덜트마트가 유행하는 것이겠지요.
너무 사실적이라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할지는 의문이지만 그만큼 어른들의 흥미를 끄는 장난감도 많습니다.
레고를 팔고 있는 가게로 들어가 ‘닌자 레고’ 파는 코너로 가니 한 가지 종류밖에 없는데
그나마 얼마 안 있어 품절이 될 거랍니다. 품절이 될 거라니 마음이 급해집니다.
이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확보의 문제가 되어버렸습니다.
부화뇌동하긴 싫지만 어쩝니까? 물건이 딸린다는데...
( 맛은 좀 떨어지지만 제가 워낙 변덕스러워 또 찾을지 모르지요. )
오늘의 과제를 완수하고 나니 출출해집니다.
작년엔가 이곳을 지나가다 오래 된 설렁탕집이 하나 보았던 것 같아 기억을 더듬어 그곳을 찾아갑니다.
오늘도 탁월한 선택이 되려는지 점심시간이 좀 지났는데도 손님이 쉬지 않고 들어옵니다.
술국을 겸해 특설렁탕을 하나 시킵니다.
시키자마자 나오는 설렁탕은 이상하게도 특유의 설렁탕 냄새와 맛이 나질 않습니다.
밥을 말고 한 수저 뜨니 기대했던 고소한 사태고기가 아니라 수구레에 가깝습니다.
주인장 말로는 머리고기라는데, 설렁탕을 시켜서 수구레국밥을 먹자니 좀 억울하긴 합니다.
수구레 국밥이면 차라리 파나 푸짐하게 썰어 넣고 얼큰하게나 만들지...
그러나 서울에서 이런 국밥 먹기도 쉽지 않으니 뜬금없이 여길 또 찾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 아그들 백치고는 너무 그렇다아~ )
( 그렇지이~ 짝뚱이 없을 리 있나? 이건 무척 쌉니다. )
( 어떻게 저렇게 포장을 했을까요? )
( "이게 더 신형으로 더 튼튼하게 만들었어요." )
( 이런 등산소품도 팝니다. )
( "어디 손에 잘맞나 보자." )
장판에서 술국에 쏘주 한잔에 손주 장난감이 든 비닐봉투 하나 든 폼이
영락없이 할배스타일에 틀림없긴 하지만
이런 걸 할배라 한다면 즐거운 마음으로 계속 할배할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