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발튀김? 먹는 재미가 쏠쏠한 화성산책
(수원 역앞은 예전이 아닙니다.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습니다.)
지난번 핑계 삼아 고속버스로 속초 1박2일 여행을 하고나니
마치 숙제처럼 ‘이번 토요일에는 뭐할까?’라는 마음이 생기니 이게 병인 것 같습니다.
다녀오면서도 속마음으로는 ‘한 달에 한번 정도?’라고 마음먹었으면서도 말이지요.
그래서 1박2일은 다음으로 미루고, 반나절 정도로 가능할 곳을 고르던 중,
수원의 어느 장터에서 등갈비를 즉석에서 구워 파는 걸 보았던 게 가물가물 살아납니다.
인터넷을 뒤져보았더니 등갈비는 간 데 없고 팔달문 근처 재래시장에 관한 정보가 엄청나게 올라와 있습니다.
화성은 커다란 원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처음에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은 어디서부터 시작할 지 잠시 고민하게 됩니다.
저도 화성행궁이 복원되지 않았을 때는 북쪽의 장안문에서 시작해서 다시 장안문으로 끝이 났었는데,
지금은 화성행궁으로부터 시작해서 서남각루, 서장대, 화서문, 장안문, 동장대,
동북공심돈, 창룡문, 봉돈을 거쳐 팔달문에서 끝을 내는 코스를 권하고 싶습니다.
수원 팔달문(남문) 근처에는 오래 전부터 재래시장이 발달해서 지금은 거의 관광코스가 되었습니다.
오전에 죽 돌아보고 배가 출출해질 즈음 재래시장 구경하는 것도 괜찮지요.
더구나 아이들이 끼어있는 나들이라면 당연히 이 코스를 추천합니다.
하여간 저는 이번에 화성보다도 새로 생긴 화성박물관과 유상(柳商)박물관 그리고 재래시장 등갈비가 주목적이었으므로,
혼자 가는 것보다도 ‘꾼’을 불러 모을 필요가 있었지요.
문자를 넣으니 술 먹는 꾼은 어제 밤 꿈에 흰 수염을 늘어뜨리신 할아버지가 나타나
지난 주 예봉산에서 잊어버리고 온 스틱을 찾아주신다고 했다나 어쨌다나 흰소리를 하고,
대신 술 한모금도 못하는 꾼은 다행히 시간이 된답니다.
(포장마차의 닭발과는 또 새로운 느낌입니다.
이태리 타올로 빡빡 문지른 청결한 느낌이 팍팍 듭니다.)
천안도 지하철로 갔는데 수원정도야 깜도 안 되지요, 배가 고프지 않다던 ‘꾼’께서는
수원역에 내리자마자 배고프다며 뭘 좀 먹고 가잡니다.
불과 한 시간도 되질 않아 늠름했던 모습은 꼬리를 내리고야 만 거지요.
“야, 좀 참고 팔달문 근처로 가서 먹자.”
“거기 뭐 있어?”
말은 안하지만 툴툴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한입 뜯으니 더운 날씨에도 김이 모락모락 올라옵니다.)
예전엔 너무 ‘학구열’에 불타 재래시장은 건성으로 지나쳤었는데
오래 전부터 근방에 통닭으로 유명한 골목이 있답니다.
그래서 기왕 먹는 점심 거기에서 한 끼 때우기로 한 것이지요.
팔달문에서 내릴 걸 잔머리 굴려 한 정거장 더 가서 내리니 간격이 꽤 돼서 다시 내려가느라 시간이 좀 걸립니다.
아직 사람이 몰리는 시간은 아닌 지 기다리지 않고 홀에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뭘로 하실래요?”
“통닭, 아니, 프라이드.”
조금 기다리니 접시 위에 한가득 프라이드치킨을 올려오고
다른 작은 접시엔 닭똥집과 닭발 튀긴 것을 가지고 옵니다.
생각지도 않던 닭똥집과 닭발이라니? 감격입니다.
우선 닭날개부터 하나 골라잡아 뜯으니 대낮인데도 방금 튀겨 김이 모락모락 올라옵니다.
곁에 중년남성 둘이 들어와 맥주를 주문해서 ‘통닭’이 나올 때까지도 정신없이, 게걸스럽게 뜯다가 곁을 보니,
‘아~ 내가 주문하려고 했던 게 바로 그건데~’
완전 베스킨라빈스 아저씨가 되고 말았습니다.
배가 고파 허겁지겁 ‘감사히’ 먹다보니 통닭인지 프라이드인지 구별도 않고 그냥 먹어댄 것입니다.
‘아 얄팍한 인간의 마음이여’, 그 때부터 맛있던 프라이드가 맛이 없어집니다.
일단 시장부터 한번 둘러보려고 근처 기름집에서 유상박물관을 물으니 전혀 모릅니다.
원래 그런 전시관이나 박물관은 외지인이 더 잘 아는 법입니다.
바로 곁에 있는 박물관으로 가니 토,일요일 휴무랍니다. 뭐가 좀 잘못된 것 같습니다.
그 앞에 술 따라주는 사람도 없이 소란 통에도 묵묵히 자작하고 있는 정조대왕 동상이 인상적입니다.
(오른쪽 사람들 틍에 꺼어앉아 자작을 하고계신 정조대왕님이 보입니다.)
(유상은 개성상인인 송상(松商), 서울상인인 경상(京商)처럼 팔달문 시장 상인을 일컫는 것으로,
조선의 개혁군주 정조가 팔달문시장을 끼고 흐르는 수원천에 버드나무가 많다 해서 붙인 이름입니다.)
근처엔 영동시장, 지동시장, 미나리광 시장, 못골시장이 서로 붙어있습니다.
재래시장을 되살리려는 상인들의 노력과 미디어가 뒷받침해줌으로 활성화가 된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역시 시장은 먹을거리가 주입니다.
곁에 패션타운이 있어도 역시 사람이 들끓는 곳은 먹을거리를 취급하는 시장입니다.
(못골 라디오 사랑방이라는 못골쉼터의 빙수.
방송기자재와 밴드, 회의실겸 감상실로 되어 있습니다.)
(간판들이 세련됐습니다. 이런 류의 CI작업이 요즘은 읍단위의 마을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새로 생긴 화성박물관으로 갑니다.
마당에는 거중기,녹로 등 화성의 궤에 나오는 중기(重機)모형이 있어 흥미를 더해주고
실내에도 잘 만들어진 모형 위주로 자칫 산만해지기 쉬운 시선을 잘 이끌고 있습니다.
(2층 전시실을 돌다 갑자기 나타난 풍경, 새로운 기법의 전시물인 줄 알고
자세히 들여다 보니 그냥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풍경이었는데
마치 유화를 보는 듯해서 한참 들여다 보았습니다.)
봉돈과 창룡문 사이 샛길로 화성에 오릅니다.
서울성곽도 마찬가지이지만 화성도 문화재의 가치에 신경을 쓰지 못할 시절
코밑까지 차오른 주거지로 달동네와 문화재가 서로 공생하는 독특한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문화재에 대한 관심도 많아지고 데이트코스로도 잘 활용되는 화성 성곽길입니다.
제가 처음 화성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우리나라에도 이런 성(건축물)이 있어?’하는 경외감이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당시로서는 미물에 지나지 않을 인부들에 대한 배려와 세세한 일지는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예전엔 정자마루에 이렇게 앉아있기 힘들었는데 깨끗히 관리되어
옷 더렵혀질까 걱정을 안해도 될 정도입니다.
대청마루에 잠시 누워보니 시원하다는 말밖엔...)
이제는 그 감동이 많이 무뎌지기는 했지만 잘 관리되고 있는 문화재와 함께 활성화된 서민의 장터가 잘 어우러져
화성은 또 하나의 매력적인 탐방코스가 되었습니다.
벌써 날이 많이 더워졌습니다.
다음에는 오후에 시작해서 야경을 하번 구경해야겠습니다.
곳곳에 조명시설이 있어 밤에는 또 새로운 느낌일 것도 같고 야시(夜市)에 대한 유혹도 만만치 않을 것 같거든요.
말하자면 샛재미를 많이 볼 수 있는 탐방길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