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결에 들여온 책 두 권
‘어디선가 봤던 책 같기도 한데, 어디서 봤더라?’
한창훈의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그러나 발간된 지는 꽤 됐어도 내가 봤던 책은 아니었다.
생계형 낚시꾼으로 거문도에 살며 약 30종의 해산물을 350쪽 정도의 책 속에 풀어놓았는데
딱딱한 해설서가 아닌 삶의 숨결이 묻어나는 ‘재미난’ 책이다.
‘또 이 녀석은 자신의 다리를 잘라먹는다고 한다. 배가 너무 고프거나,
지가 먹어봐도 맛있거나, 둘 중 하나는 확실하다.’
‘그러니까 옛날형 낚시인 것이다. 공동체가 살아 있을 때 주민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예전에는 고기잡이 다녀온 사람은 으레 이웃에게 나눠주곤 했다.
“반찬이나 하소” 툭 던져주기도 하고 미안해서 안 받으려는 사람에게는
슬그머니 놓고 휭, 사라지던 모습 흔했다.
가난과 풍요를 분별없이 공유하는 것. 그게 공동체이다.’
어렵지 않은 단어를 쓰면서도 글을 다루는 재미와 무게가 만만치 않게 다가오는 작품인데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와 <그 남자의 연애사>를 사보라 유혹한다.
구렛나룻과 야성미 넘치는 외모와 달리 말이다. 다시 몇 구절 인용을 해보자.
‘그렇게 여러 날이 갔다. 끈질기고 끈질기게 권하니 한 두 점 안 먹을 수 없었다.
일주일 정도 지나자 (장모의 입에서) 비로소 한마디 나왔다.
“맛있기는 하네.”
현이 아빠가 스페어 기사로 사흘간 타지를 다녀왔다. 그가 온 날 현이 엄마가 말했다.
“당신 장어 낚으러 안가냐고 엄마가 물어본다.”
한 아주머니는 속고쟁이를 벗으려다 내 눈과 마주쳤다.
그녀는 잠깜 고민하는가 싶더니 몸을 돌리고 허리를 굽히면서 고쟁이를 내렸다.
깊은 무료함 뒤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풍성함이 찾아온다는 것도
(여덟 살 나이에) 처음 알게 되었다.‘
책 전시좌대에 놓여있던 다른 책,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제목도 희한하네’ 속으로 생각하며 중간쯤을 둘치니
’”이제 와서 다 지난 얘기 끄집어내서 어쩌자는 거냐?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냐?“
또 어떤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고생고생해서 키워놨더니, 이제 별 이상한 소리 다 한다.“
그런 아버지들은 여전히 불안해서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지도 못하고,
자기 행위에 대해 책임질 줄도 모른다.‘
‘이거 어째 내가 입에 달고 사는 말 같은데?
그런 말이 왜 문제가 되는 거야? 내가 책임을 안져?’
관계라는 것은 상대가 있음을 전제조건으로 한다.
산다는 행위가 여러 사람들과 부대껴야 하는 것을 의미하고
그러다보면 귀찮아져서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말과 몸짓이 타인은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여자가 알아야 할 남자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아놨지만
남자들이 읽어야 할 책이고 단순히 남녀관계 뿐만 아니라
부부, 자녀, 사회구성원으로써 남자의 정체성을 헤아려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