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불구불 개심사
개심사는 김종필 목장으로 알려진 운산 목초지를 헤치고 달려 소나무 숲속, 상왕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른 아침이라 소나무 향 짙은 쾌적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절로 올라갈 수 있지만, 해미읍성, 개심사와 재래장터가 여행사 패키지 상품으로 묶여
낮에 찾아 가시면 제가 느꼈던 그 기분을 느낄 수 있을지 장담하기 힘듭니다.
축대 바로 위 마당에 오래 된 배롱나무가 있어 한 여름에는 화려한 꽃으로 덮히는데
석탄일 가까운 지금은 배롱나무 꽃대신 연등이 윗마당을 붉게 물들이고 있습니다.
수의수처(隨意隨處). 개심사를 한 마디로 요약하라면 바로 이 말이 되겠습니다.
뭔 말이냐고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개심사엔 유난히 구불구불한 기둥이 많습니다. <바르게 살자>가 가훈 내지 좌우명인 분에게
이런 기둥들은 부정적인 삶의 표상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런 못된 낭구기둥덜은 모조리 뽑아버리고 <진실된> 기둥으로 모두 교체해야
직성이 풀리겠지요.
대웅전 앞마당입니다. 앞에는 강당으로 쓰는 안양루입니다.
http://blog.daum.net/fotomani/69980
심검당과 대웅보전입니다. 성종 15년 (1484)에 지어진 집들이니 근 5백년이 훌쩍 지난
건물들이지요. 비바람을 견뎌온 기둥은 할머니 주름살처럼 거친 나뭇결을 내보이고 있습니다.
거칠지만 따스하고 인자한 모습이지요.
오백년 쯤 전에 지금처럼 인천에서 수입 소나무나 경상북도에서 춘양목을 가지고
올 수 있었을까요? 우마차 다닐 길이나 변변히 있었을까요?
결국 산에 올라 어리버리하게 굽으며 자란 소나무일지언정 기둥으로 쓸만큼 굵기만 하다면
껍질 벗겨 말려 두었다가 몇개 모이면 그걸로 기둥이며 추녀로 썼을 것이라는 추정이
더 합리적이지요. 그래서 수의수처입니다. 억지로 맞추려 하지말고 형평껏 하라는 말이지요.
개심사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뷰포인트입니다.
맑은 날 마당에 내리쪼인 햇빛이 바람벽과 처마에 되비치면
다른 어떤 화려한 색감도 이 온유함을 따라오지 못합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덜 변형된 해우소일 겁니다. 十十모양 의 허리 높이 간막이가 되어있고
널판지 사이로 구멍이 뚫린, 뒷간, 측간, 심하면 똥투(投)간이라는 단어에 가장 어울릴 해우소.
그러나 아래층에는 겨나 재로 오물을 덮어 보기와 달리 상당히 위생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아래 층에 사람이 있는가 잘 보고 사용해야겠지요. 아래층에서 벼락 맞는 사람은
로또 당첨 확률이 극도로 높을 겁니다.
요즘은 이런 재래식 해우소도 볼거리가 됐는지 이미 없애버린 해우소도 부활 시켜
현대식 해우소와 함께 사용하는 곳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능선과 기둥의 부드러움을 잘 보여주는 상왕산 줄기와 범종각의 실루엣
곧은 기둥 네개가 뻗쳐있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 겁니다.
3회에 걸쳐 직소폭포, 해미읍성, 개심사를 돌아 봤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른 아침이 아니면 이렇게 여유롭게 다니기 힘들 겁니다.
스스로 만드는 여행이지요.
이번에 고속도로 정체로 가지 못했지만 변산반도에서는 직소폭포, 개암사, 내소사를
함께 들러보는 걸 추천합니다.
지난 해미읍성 포스팅에 기승전 다음 먹을거리가 없다 섭섭해 하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마침 삽교장날과 그 전날 문을 여는 국밥집, 한일식당이 날이 맞아 빈 속에 주름 접혀지는
뱃살을 부여안고 삽교까지 왔습니다. 이 사진은 제가 잘 다니던 몇 년 전 식당 전경입니다.
시간이 걸려서도 이집을 찾은 건 국밥과 함께 싱싱하고도 깔끔하게 나오는
이 배추김치도 한몫하기 때문이지요.
국밥이 이 정도는 돼야지요. 그런데 이거 몹미까? 식당에 도착하니 옆집 마당에 천막까지
치고 손님을 치우는데도 뱀꼬리는 줄어들질 않는데, 과장되게 2시간 기다렸답니다.
백종원의 소개로 방송을 탄 뒤 이렇다나요?
아무리 맛이 있다해도 제 배가 인내심의 한계를 넘어설라캅니다.
근처 국밥집으로 갑니다. 똑같다는데 건더기는 다 가라앉아 있고, 배추김치는 없지만
그렇다고 음식 가지고 투정하면 안되지요. 허겁지겁 맛.있.게. 삽질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