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주동색, 씨래기국밥
<전통막장 씨래기국밥 전문>이라는 달랑 하나 현수막 같은 벽간판.
그 아래에는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목제 전선드럼, 색깔은 그런대로 어울리는 듯한데
과연 이게 뜻하는 게 뭐람?
지난 <속초여행>에서 맛본 강원도 막장으로 만든 찌개와 쌈장의 여운이 아직도 남아
서울 어디서 막장 맛을 볼 수 없나 검색해보니, 아침마다 운동 끝내고
사무실로 내려오는 보령제약 뒷골목길에서 얼핏 본 그 씨래기국밥집이
바로 강원도 막장으로 국밥을 만드는 집이었습니다.
문간에서 확인만 해본다는 게 그냥 들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어? 영업시간이 오전 6시 30분부터 오후 2시, 그것도 토요일엔 오전 10시?
벽에는 너무나 많은 사진과 A4 용지 방명록 사인이 붙어있어 다 보지도 못했지만,
그 중에서도 메주 쑤는 이 사진들이 가장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식당은 테이블로 쓰는 선반이 사방 벽에 설치된 작은 방 두 개와
차고에 하우스용 두꺼운 비닐로 벽을 친 임시 홀이 있습니다.
테이블에는 항아리에 배추김치가 담겨있고 작은 소쿠리에 구운 계란이 놓였습니다.
메뉴는 씨래기국밥 온리 하나에 구운 계란이 전부이고 각각 3천 5백원, 5백원에
국물, 밥 리필은 무료입니다.
테이블로 쓰는 선반 벽에는 서울보증 사보에 실린 이집 기사가 붙어 있습니다.
電業사가 빼곡한 이 골목에 간이 분식집을 열고 장사하다 철거되고
바로 이곳 작은 사무실에 식당을 열게 되었답니다.
새로 열면서 분식 대신 고향의 시래기와 막장으로 만든 국밥을 메뉴로 정했답니다.
이런 시래기 전문점으로는 419탑 근처에 <절구시래기>란 집이 있는데 시래기국보다는
쌈장과 함께 먹는 시래기밥이 더 맛있습니다. 물론 양념장도 나오지요.
곁에 히말라야산 핑크소금 단지가 있는데 이걸 갈아서 구운 계란을 찍어 먹는답니다.
이 집에서 구운 계란 먹는 다른 방법은 노른자를 국에 넣어 으깨 먹는다는데...
맛은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국에는 고기 한 점이라도 꼭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 시래기국은 불합격입니다.
세련한 도시녀가 아니라 사립문 사이로 수줍게 빼꼼히 내다보는 단발머리 소녀입니다.
줄거리가 느껴지지 않는 부드러운 시래기, 통멸치 육수의 배릿한 여운,
국밥을 한 숟깔 털어 넣고 '어~'하며 국밥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강원도 막장의 털털한 뒷맛.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깔깔해진 식도와 헛헛한 뱃속을 부드럽게 채워 줍니다.
"오늘 그걸 다 팔아요?"
"어떤 땐 이것도 모자라요~"
환갑에 <시래기아줌마>란 시집을 낼 정도로 국밥 파는 만큼 자기 시간을 즐길 줄 아는 주인.
飯主同色인가? 음식 맛과 주복순님 얼굴이 어딘가 비슷하게 닮았다는 생각이...
닥다리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