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먹고 보고 행주산성
지난 토요일에 미세먼지가 <매우 나쁨>이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걷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경고는 노약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라고 내 처지도 잊은 채 귀 흘려 듣고
미세먼지를 안개겠거니 착각했던 것이었을까요?
걸어서 행주산성으로 향하려면 출발지를 어디부터 잡아야할까 잠시 망설입니다.
홍제천 초입 홍은동에서 시작하긴 좀 망설여지고 헬스클럽 앞에서 버스 타면
연대 앞을 지나 사천교에서 내려 홍제천과 만나니 그곳에서 출발하기로 맘 먹습니다.
지난 주와 벌써 다릅니다.
낭창거리는 버들가지에 아기 손 같은 말간 새싹이 난 걸 보니 기분 좋습니다.
다행이 동파 사고는 없었지만 지난 겨울은 너무 추웠습니다. 미운 시베리아 고기압.
오리 부부도 긴 겨울 무사히 넘기고 물질을 즐깁니다.
이윽고 한강 합류 지점까지 닿습니다.
공사 중인 월드컵대교 부근에서 아점을 듭니다.
어제 냉동실에서 묵히고 있던 멸치를 활용 차원에서 볶아 견과류 멸치볶음을 만들었는데
그걸로 주먹밥을 만들었습니다.
아침 허기는 그때만 지나면 잊어 버리지만 밖에서 먹는 재미를 놓치기 싫어서지요.
가양대교 북단에 국궁장이 있습니다. 양궁은 사거리가 1백 미터 정도 되나요?
아마 더 날아가긴 하겠지만 그 정도에 표적을 놓고 화살을 날릴 겁니다.
이 분들 과녁은 눈대중 만으로도 2백 미터는 넘을 것 같습니다.
국궁 만드는 걸 보고 있으면 2백이 아니라 3, 4백도 너끈이 날라갈 것 같습니다.
한강 유람선이 땅 위로 올라 앉았네요. 저걸 보고 야간 크루즈가 아니라 뷔페 크루즈를
생각한다면 기승전먹病이 이미 심각한 단계에 들었다 할 수 있겠습니다.
이윽고 행주산성까지 도착했습니다. 지도 상으로는 보를 건너 행주 수위관측소 탑 옆에
산성으로 올라가는 오솔길이 있던데...
보 위에서 본 방화대교 아치.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방화대교입니다.
수위관측소. '네에~, 길이 있군요. ^^'
그러나 산길은 거의 40도 경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헉,헉, 고생했으니 무료관람可?
鎭江亭, 강을 내려다 보며 쉬면서 땀을 식히며 마음을 가라앉혀라?
나쁜 미세먼지도 아름다운 풍경은 어쩌지 못합니다.
행주대첩 비각과 정자.
행주산성도 이순신 장군 유적지와 마찬가지로 1970년 성역화 사업이라는 기치 아래
정자와 건축물들이 급조되어 모두 콘크리트로 만들어졌습니다.
지금은 철거돼 일부가 서울 역사박물관 마당에 전시된 광화문과 같습니다.
역사에 근거한 복원과 발굴이라기 보다는 호국정신 고양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것이지요.
참고로 토성의 흔적이 발견된 것은 1990년이었고 석성 흔적과 유물들은
작년 2017년에 발굴되었습니다. 그래서 새롭게 접근하려는 시도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행주대교입니다. 이 먼지가 모두 내 허파꽈리로?
인도가 잘 살게 되면 수세식 화장지를 쓰게 되어 아마존 밀림이 모두 없어질 것이라는
로마클럽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가 버리고 말았는데, 왜 중국이 발전하면
동방의 작은 나라는 미세먼지로 뒤덮힐 것이다 라는 뻔한 예측은 하질 못했을까요?
하늘도 뿌옇습니다.
복원된 토성으로 정상 부근의 내성입니다. 원래 이 정도 규모였는지는 모르겠는데
부소산성보다 성의 형태가 뚜렷합니다.
관람객이 꽤 되네요.
'방문객 대부분은 행주대첩이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전개됐는지, 심지어 산성이
실제 존재하는지조차 모른다. 1980년대 초반부터 생겨난 산성 주변 100여개
대형 요식업소가 오히려 인지도가 높다.'는 경인일보의 탄식처럼 부근에는 음식점이
성황입니다. 행주초등학교 부근 국수거리입니다.
부근 다른 집과 별반 차이 없겠지만 원조에 대한 인증샷 강박증이 줄을 서게 만듭니다.
대개 이런 집에선 손님에 치어 반주하자면 눈치가 보이거나 아예 팔지 않습니다.
전 반주가 필수라 텅텅 비어있는 다른 집으로 들어 갑니다.
잔치국수는 4천원, 비빔국수 5천원, 초계비빔국수는 7천원입니다.
기본국수 플러스 양념값 천원, 닭고기 값 2천원인가요? 그릇이 작은 세숫대야만 합니다.
옆에서 칼국수를 드는 걸 보니 잘 익지 않은 듯해서 탁월한 선택에 마음이 놓입니다.
다음엔 초계 비빔 말고 그냥 잔치국수를 먹어봐야겠습니다.
오~ 근처에 와인 아웃렛이 있네요.
매장이 꽤 큽니다. 다른 사람들 보니 박스 째 사갑니다. 나야 뭐 눈팅으로 만족.
마릴린 먼로의 'MM'은 입 맞추는 입술 모양 두개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먼로워크, 먼로룩, 먼로효과라는 용어까지 탄생시켰다 하는데 워크와 룩은 그렇다치고
먼로효과는 뭘까요? 영화 <7년만의 외출>에서 먼로의 치마가
지하철 환기통에서 나오는 바람에 치켜 올라가는 거 아시지요?
이 걸 따서 도심 건물 사이 좁은 통로에서 생기는 소용돌이에 붙인 일반 명사랍니다.
중간에 잠시 쉴 때 앱을 껐다 다시 켜는 걸 깜빡해서 후반부는 직선 슬로프입니다.
미세먼지를 무시한 벌은 다음 날 목이 잠기고 눈의 통증으로 나타 나고야 말았습니다.
닥다리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