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시 ‘그날’ 쓴 고등학생 11년 만에 입 열다(펌)
광고회사 카피라이터 정민경(29) 씨는 ‘얼굴 없는 시인’이다. 그가 고등학생 때 쓴 시 ‘그날’은 2007년 제3회 5·18 민주화운동 기념 서울 청소년백일장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해마다 5월이 오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천재 고교생이 쓴 5·18 시’로 다시 읽히며 화제가 된다.
‘그날’이 지난 10년 동안 이름 난 작가의 시 못잖은 유명세를 이어가는 동안 정작 시를 쓴 정 씨의 행보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었다. 올해 우리 나이로 서른 살이 된 정 씨가 여전히 백일장 수상 당시 신분이었던 ‘경기여고 3학년 정민경’으로 소개되는 이유다.
그런 정 씨가 11년 만에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나섰다. 정 씨는 15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5·18과 관련해 10년 넘게 자신의 시가 언급되는 데 대해 “어렸을 때부터 취미 삼아 시를 써왔는데, 여전히 많은 분들이 제 시를 읽고 감상해주셔서 놀랍다”며 “요즘은 친구들이 에스엔에스에 ‘그날’을 올릴 때 제 이름을 태그로 달아 놓는다”고 말하며 웃었다.
당시 백일장 심사위원이었던 정희성 시인은 ‘그날’에 대해 “‘그날’의 현장을 몸 떨리게 재현해놓는 놀라운 솜씨”라고 극찬했다. 열아홉 고등학생 시절 정 씨는 어떤 이유로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관심을 가졌던 것일까.
정 씨는 5·18이 일어난 지 9년 뒤인 1989년 광주에서 태어나 6살 때까지 살았다. 부모의 고향이 각각 전남 나주와 여수인 점도 시에서 자유자재로 전라도 방언을 구사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정 씨는 “5·18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가족은 없지만, 아버지 친구분 중에 5·18 때 군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는 등 아직도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분들이 많다”며 “부모님은 평생 주변에서 5·18 피해자들을 보셨기 때문에 저 역시 자연스럽게 ‘오월 광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다”고 말했다.
특히 정 씨는 ‘그날’을 쓰는 데 직접적인 영감을 준 작품으로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강풀 작가의 웹툰 ‘26년’을 꼽았다. 그는 “첫 화에 사람이 방 안에서 떨고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장면에서부터 상상이 시작돼 ‘그날’을 쓰게 됐다”며 “사학과에 다녔던 네 살 위 친오빠와 역사 관련 이야기를 많이 나눴던 것도 영향이 컸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정 씨는 상을 받은 뒤 ‘그날’의 저작권을 백일장을 주최했던 5·18 민주화운동 서울기념사업회에 기증했다. “‘그날’을 쓴 뒤 한동안 감정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만큼 시의 화자에게 몰입했다”며 “이 시가 제 손을 떠나 5·18 희생자들을 위해 보다 많은 곳에 쓰일 수 있기를 바랐다”고 전했다.
정 씨가 백일장 수상 이후 꼭 11년 만에야 언론에 자신을 드러낸 까닭은 무엇일까. 당시 수능을 앞둔 고3이었던 정 씨는 자신에게 쏟아진 갑작스러운 관심이 당황스러웠다.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의 처지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2007년만 해도 5·18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분위기가 남아 있었어요. 가족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되도록 언론과의 접촉은 피했습니다.”
그런데도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열아홉 고등학생이었던 정 씨의 삶을 뒤바꿔 놓았다. 그는 “시를 발표한 이후 정치적인 이념 때문이었는지 학교에서 나를 괴롭히는 교사들이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정 씨가 쓴 시를 인쇄해 반마다 돌아다니며 “빨간 펜으로 이 시의 잘못된 부분을 고쳐라”고 말하며 망신을 준 일도 있었다. 교무실에 불려가 “(수상과 관련해) 대학 쉽게 갈 생각을 하고 있다”와 같이 수상 자체를 깎아내리는 말도 들어야 했다. 정 씨는 그 시절에 대해 “학교에서 교사들과 마찰을 겪으며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이어졌고, 이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전했다. 그는 결국 남들보다 2년 늦게 대학에 입학했다.
자신의 평소 관심과 거리가 먼 경영학과에 입학했지만, 정 씨는 대학에서도 인문학회 활동을 하며 지속해서 글을 써왔다. 주변에선 전업 작가를 해보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그는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갖기에는 생계를 해결할 자신이 없어” 대학 졸업 뒤 카피라이터로 광고회사에 입사했다. 정 씨는 조만간 회사를 나와 문화 분야 관련 공부를 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다. 작가들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해도 배 곯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현재 정 씨의 꿈이다.
인터뷰를 끝내며 정 씨는 다시 한 번 5·18에 대해 걱정하는 소회를 남겼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5·18을 앞두고 제 시가 읽힌다는 것은 그만큼 ‘오월 광주’와 관련된 문화 콘텐츠가 드물기 때문인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최근 5·18 진상규명 작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것 같은데, 이번 기회에 그동안 감춰졌던 광주의 진실이 속 시원히 밝혀졌으면 좋겠어요.”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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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44880.html?_fr=mt1#csidx8446a2cfafcf1aaab25ec3094e7fc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