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국립고궁박물관에 들렀을 때
한켠에서는 순천 송광사 목조 관음보살좌상 복장유물 전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절에서는 성보박물관을 지어 불교 관련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 곳이 많습니다만
그중에는 복장유물도 많이 전시되어 있지요.
복장유물은 말 그대로 뱃속에 모셔둔 유물이라는 뜻이지요.
그 배가 부처님의 뱃속이라는 것이 특징입니다.
복장은 신앙적 의미로 불상 내부에 봉안되는 불교적 상징물이나 행위를 말한다 하며
불상을 처음 만들 때 납입하거나 수리 또는 금칠을 다시할 때 넣는다고 합니다.
송광사 복장유물은 2009년 관음전에 봉안된 목조 관음보살좌상을 개금(改金)하던 중 불상 안에서
저고리를 비롯한 의류 2점, 시주자 명단 1점, 직물조각 11점, 전적 8종 17권, 다라니 2종 423매,
후령통 1점, 유리편 1점이 발견되었습니다.
저고리 안감에 적혀있는 발원문에는 1662년 소현세자의 3남 경안군 내외의 장수를 기원하는 뜻으로
시주하여 불상이 제작되었음을 알려줍니다.
저고리의 형태는 오래 전의 것이라도 색의 조화에는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장수를 기원하며' 발원문을 썼다니 좀 흥미롭습니다.
경안군은 이미 말씀드린대로 소현세자의 3남이지요.
소현세자는 광해군과 대비되는 인물로 병자호란 때 인조의 삼전도 굴욕이 있은 후
자진해서 볼모로 청나라 심양의 심양관에 끌려가 9년간 머물며 조선과 청나라 사이의 중요한 창구역할을
톡톡히 해낸 인물입니다.
볼모가 풀려 조선으로 돌아온 소현세자는 일설에 인조에 의해 독살되고(인조실록),
소현세자비 강빈도 수라상에 독을 넣었다는 혐의로 죽음을 당하고
세아들마저 제주도로 유배 되었다가 두 아들도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경안군만 남게 되었으니 '경안군의 장수를 기원하며' 발원문을 넣었다는 뜻이 무얼 의미하는 지
절절히 와닿습니다.
그런데 왜 이들이 이런 비련의 주인공이 되었어야만 했을까요?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소현세자비 강빈에 대한 사극도 2007년에 방영을 했었던 모양입니다.
그만큼 시청자의 관심을 끌만한 흥미로운 인물이었다는 거지요.
제가 연속극들은 전혀 보질 않아서 줄거리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잘 모릅니다.
하여간 소현세자비 강빈은 여느 여자와는 달리 대가 센 여자였던 모양입니다.
요샛말로는 여걸이었던 거지요.
15세기에 벌써 이렇게 직조를 하여 무늬를 넣었다는 게 놀랍습니다.
최초에 심양관에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그리고 강빈이 도착했을 때 일행은 모두 200여명이었는데
당시 청나라는 명과 전쟁중이어서 경제적인 처우에 신경을 쓸 여건이 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이 때 다행스럽게도 심양의 팔왕이 은자 500냥을 보내면서 조선과의 무역을 원했더랍니다.
명과 교역했던 생필품이나 도구들을 명과의 전쟁으로 조달이 힘들어지자 교역국을 조선으로
바꾼 것이지요.
보존상태가 너무 좋아 400년이 지난 지금에도 바로 엊그제 봉안해놓은 것처럼 깨끗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거래량이 커졌고 심지어 커다란 농장까지 만들어 곡물까지 거래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으니 역시 재물은 노력과 운이 따라야 하는 법인 모양입니다.
이 모든 거래를 실질적으로 세자비 강빈이 했으니 성리학의 몰락을 예견하고 선진문물을
들여오려는 소현세자와 요샛말로 말하자면 통상장관 강빈이 귀국했으니 인조의 마음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지요.
물론 이것과는 다르겠습니다만 부석사 무량수전의 바닥이 유리를 덧붙인 전돌이었다 합니다.
극락의 땅이 유리로 되어 있다고들 하지요?
명과 친하고자 하는 아버지의 말도 가벼이 여기고 듣도보도 못한 신문물과 세계정세에 대해
젊은 것이 침 튀겨가며 강변하는 것도 못마땅한데 며느리라는 것이 천한 장사치가 되어 아들을 휘두르고 있으니
당연히 선물로 받아왔다던 벼루를 내동댕이쳐 버렸을 법도 하겠습니다.
자고로 보수는 변화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법입니다.
이런 소현세자와 소현세자비 그리고 아들들이 의문의 죽음 당하게 되니 경안군이나 주위 사람들이
장수를 기원하는 것도 당연하겠지만, 이런 바람도 아랑곳 없이 경안군은 발원문을 써놓은지
겨우 3년 뒤 (1665) 세상을 뜨고야 맙니다.
이제와서 보면 조선사를 바꿨을지도 모르는 광해군과 소현세자를 잃었다는 것이
바로 복장이 터질 일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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