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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엔 웬 미륵불이 이렇게 많을까?

fotomani 2012. 4. 2. 11:34

이번에는 안성 미륵불을 한번 소개해볼려고 합니다.

안성에는 미륵불이 워낙 많아 제가 둘러 본 것은 그중 일부에 지나지 않고

비록 지방 석공들이 투박하게 만든 석불이라 할지라도 

이것만으로도 미륵불이 가지고 있는 소박한 멋은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 입니다.

 

사실 이 1박2일간의 여행은 이미 2년전 1월에 청룡사 대웅전을 살펴보기 위해 했던 것인데

기왕 떠나는 것 다른 볼거리가 없나 안성에 대한 정보를 모아보니 안성맞춤 외에도

안성에는 미륵불이 유난히 많은 것에 눈길이 끌렸습니다.

 

2010년 1월 초순 저녁에 들른 석남사는 인적이 없이 조용하기만 했습니다.

금광루 아래를 지나는 계단참에서 본 석남사 전경은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아담하면서도

잘 짜여진 모습입니다.

 

풍경의 종은 어디로 가고 집을 잃은 물고기만 기둥에 매달려 인적 없는 절집을 홀로 지키고 있습니다.

 

석남사를 들른 이유는 바로 이 마애불 때문이었습니다.

대웅전 왼쪽 길로 조금 올라가다 보면 왼쪽 커다란 바위에 마애불이 보입니다.

 

그 참, 후덕하게 생긴 부처님입니다.

지긋이 감은 눈, 두툼한 입술, 어깨까지 늘어진 귀, 넓직한 어깨...

사람에게 좀 더 친숙하게 다가오는 삼국시대 불상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번민이 있을 때 이 아래에서 눈을 감고 있으면 저절로 마음의 평안이 얻어질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그렇게 첫날 청룡사와 석남사를 들리고 다음 날 대농리 미륵불을 찾아 갑니다.

네비게이션 길찾기를 최단거리로 맞추어 놓아 좁은 새마을도로로 진입하는 통에 좀 헤맸습니다.

마침내 저 멀리 아침햇살를 안고 커다란 나무와 함께 마을을 지키고 있는듯한 엄숙한 모습의 석불입상이 보입니다.

아침해가 비친 얼굴이 신비한 분위기를 만들어 냅니다.

 

옆에서 실루엣으로 보았을 때 강인한 고려시대 석불모습일 것이라 짐작했던 것과 달리

오히려 여성적입니다.

손에는 보병을 거꾸로 들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덕을 온세상에 널리 퍼뜨리기 위함이랍니다.

원래 2.2미터라 하며 아랫부분은 흙으로 덮혀있고 벙거지 모양의 보개는

마치 제주 돌하루방을 연상시킵니다.

 

이 사진은 나주 운흥사 입구에 있는 석장승입니다. 쌍으로 마주보고 있지요.

어떻습니까? 위의 미륵불과 분위기가 비슷하지 않나요?

사실 백성이 미륵불이나 이런 석장승에 기대하는 바람은 서로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주 석장생 : '할배요, 내가와쏘' 보기 :

http://yonseidc.com/bbs/view.php?id=gallery&page=1&sn1=&divpage=1&sn=off&ss=on&sc=on&keyword=나주&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95

 

기솔리 쌍미륵사, 당연히 쌍미륵이 있어야겠지요. 꼭 남녀가 같이 서있는 모습 같지요?

5미터가 넘는 커다란 석불임에도 불구하고 날씬한 몸매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러나 이렇게 아래서 보면 무사와 같은 듬직한 모습이 고려시대 불상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제가 보기엔 보는 각도에 따라 얼굴모습이 달라져 보이는데

이런 점은 수만가지 염원을 가진 중생을 대하기엔 장점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석불이 말이나 행동으로 일일이 상처를 보듬어 줄 수도 없고

그래, 그저 너희 생각하는대로 되어주리라...

 

 기솔리 쌍미륵 곁에 있는 국사암 궁예미륵입니다.

기솔리와 가까운 곳에 있다곤 하지만 가파른 산중턱에 있어 올라갈려면 숨이 좀 차지요.

가운데 본존불이 있고 좌우로 협시불이 있습니다.

아마 미륵불을 조성하였던 이는 궁예가 잠시 죽주산성에 머물렀고,

근방에서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었으니 태평성대가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좋은 뜻으로 궁예미륵이란 별명을 붙였는지 모르겠습니다.

 

미륵신앙의 미륵은 석가모니불이 구제할 수 없었던 중생을 남김없이 구제한다는

대승적 자비사상을 근거로 출현하여 자씨보살이라고도 불린다 합니다.

 

그러나 궁예는 후고구려를 거쳐 태봉국을 건국하며

몇년 후부터는 스스로를 미륵불이라 칭하고 맏아들은 청광보살 작은 아들은 신광보살이라 불렀다 하고,

밖으로 나갈 때는 백마를 타고 2백명이나 되는 비구승을 거느리고 다녔다 합니다.

일국이 패망을 하게되면 삼천궁녀니 포석정 주연이니 하며 덧칠을 해서 깎아 내리게 마련인데

그래도 한 때 용장이었던 궁예가 그럴 리야 없었을 것이라고 믿고 싶지만

어쨌든 하늘나라에 있는 궁예가 이 미륵불을 보면 그리 달갑진 않을 것 같습니다.

하릴없는 사람의 상상입니다. 

 

매산리 석불입상으로 가는 구(舊)도로. 갑자기 안개가 끼더니 소나무에 눈꽃이 앉습니다.

이 무슨 일일까요?

 

매산리 석불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곳에 보호각(미륵당) 속에 있습니다. 

이 미륵은 태평미륵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위에서 본 기솔리 석불입상의 몸매와 닮았지요?

 

 

솟을대문 뒤로 보이는 미륵불의 얼굴모습은 들어오는 길목의 눈꽃만큼이나

괴이한 느낌을 줍니다.

 

 

또 곁에 있는 죽산리 석불입상으로 갑니다.

지금까지 본 석불입상보다는 좀 더 세련돼 보이고 연화대좌 위에 올려져 있어

품격이 있어 보입니다.

그 앞에 빈 대좌에도 기솔리 쌍미륵처럼 미륵불이 있었을까요?

 

역시 어디서 본듯한 자태지요?

 

그런데 안성에는 왜 이리 미륵불이 많은 것일까요?

경기문화재단 해설(안성에는 왜 미륵이 많을까?)에 의하면

여주에 지금은 폐사지로 남아있는 고달사와 함께 대찰인 봉업사가 있어

 경기 남부지역의 불교문화에 끼친 지대한 영향 때문에, 

 죽주산성을 중심으로 일어난 많은 전투가 빨리 끝나기를 기원하기 위해,

혹은 시장과 교통로로써 요충지로 많은 사람의 평화와 안전을 기하기 위함이라 전하고 있습니다.

 

안성에는 그외 수많은 미륵불이 있으니 동선에 따라 다양한 여행계획을 잡으실 수 있으며

청룡사 대웅전, 칠장사 철제 당간지주와 혜소국사비, 안택식물원 등이 볼만 합니다.

여기에 오래된 곰탕집이 기대에 못미쳐 포스팅하진 않았지만 

안성은 고기가 유명하여 입이 즐거운 여행을 기대하셔도 좋을겁니다.

 

http://blog.daum.net/fotoma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