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처 무수골은 도봉산으로 올라가는 진입로이기도 하며 근처에 주말농장이 있을 정도로
시골 냄새가 물씬 납니다. )
무수골이라면 1호선 도봉역에서 개천을 따라 도봉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자리한 마을로 아직까지도 서울에서 아름다운 산골 맛을 느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곳이라고 보면 됩니다. 지금 도봉역 뒤에 자리 잡고 있는 서울 북부지원과 북부지청 자리는 옛 창동병원, 101보충대가 자리 잡고 있던 곳으로 오래 전 군 생활을 해보신 분들의 추억 어린 장소이기도 하지요.
( 도봉역 건너편 골목. 이 정도면 2-3층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을 법 한데... )
수많은 군인들이 상주하다보니 이곳에는 아직도 오래 된 음식점들이 몇 곳 남아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무수옥입니다. 아마 60년 정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집인데 끈질기게도 그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걸 보면 뭐가 있긴 있는 모양입니다.
( 옛날이나 지금이나 거의 변함없는 모습입니다. )
지금은 고깃집으로 더 유명하지만 음식점에서 고기를 구워먹기 시작한 것이 70년대 중반쯤일 것으로 보면 그 당시는 설렁탕이나 곰탕 혹은 내장탕이 주종이었을 것 같습니다. 저도 한 십 여 년 전에 한번 가봐서 이번에 모임을 그곳에서 한다 하니 은근히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강북이 강남보다 변화가 적은 게 사실이지만 도봉역 앞은 건물 외벽만 좀 현대적이 되었을 뿐 건물 층수하며 형태는 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도봉산 쪽으로는 국립공원으로 묶이고 철길 건너편에는 중랑천이 흐르고 있으니 확장될래야 확장돼나갈 수가 없을 수밖에요. 그러나 당장 경제적으로 혜택을 덜 받는다 할지라도 나중에 전화위복이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무수옥은 겉모양만 ‘스뗑’ 창틀과 문틀만 바뀌었지 형태는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니 구조는 옛 모습 그대로네요. 벽에 붙여놓은 열량과 나트륨 성분표만 세월과 타협을 했을 뿐, 세상과는 무관하게 마냥 똑같은 일상이 이 안에서 반복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마침 수익창출은 결과일 뿐 목적이 아니라는 어떤 분이 했던 말이 바로 이런 경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그런데 요새 이런 걸 붙이나요? 저도 이런 건 처음 보았습니다. )
( 기본 상차림은 뭐 별거 없지요? )
( 아~ 전 무채를 좋아 하는데 이집 무채는 달콤새콤하질 않아 오히려 제 입맛에 맞습니다. )
( 중간에 설렁탕을 시키니 나오는 깍두기. 국물 색깔 조옷습니다. 뭐 해야할 지 짐작들 가지요? )
( 두툼하게 나오는 등심. 강남사람들이 일부러 와서 10인분씩 사간다나요? 그냥 동네꺼 잡수시지~ )
상추를 비롯해 무채나물, 깍두기, 양파와 파채가 간단히 나오고 등심 4인분 한 접시가 나옵니다. 다른 음식점에서 넓은 덩어리로 나오는 것과 달리 두툼하게 조각으로 나옵니다. 고기를 결대로 썰기도 하고 결에 수직 방향으로 썰기도 해서, 마치 고기질에 대해서는 ‘잔소리 마라’는 듯 좀 얄미운 시어머니 같기도 하고, 마블링이 잘 된 고기조각을 보면 마음씨 고운 가녀린 며느리를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떻게 나오든 저야 고기 맛만 좋으면 되니 남의 집안일에 끼어 들 필요는 없지요.
( 올려 놓기 시작합니다 )
( 이건 나중에 오는 회원들을 위해 구워놓은겁니다. )
자~ 고기를 올려놓습니다. 질이 좋으니 너무 익지 않도록 센 불에 겉만 익혀 먹을만치 올려놓아야겠지만, 앞에 앉은 후배는 선배님 입안이 공실(空室)이 되지 않도록 너무 신경을 써서 조금씩 올려놓으라 해도 손이 말을 듣지 않는 모양입니다. 이런 황송할 데가. 같이 온 동문들도 연신 맛있다며 거치장스러운 예의나 의리 다 집어 팽개쳐버리고 술도 안 따라주고 열심히 삽질하고 있습니다.
“야! 시간나면 술한잔 딸아 주라~” “으~응? 그래! 넌 뭐하냐? 선배님 좀 챙겨드려라~” 곁에서 거드는 그게 더 밉상이라는 말은 언제나 진리입니다.
( 그냥 양파와 파채만 넣고 먹었더니 무채까지 넣어 들라 합니다. 역시 전문가 말을 들어야 합니다. )
무채무침은 그냥 먹는 게 아니라 파채랑 섞어 먹으랍니다. 허허. 그게 맛이 더 풍부해지는군요. 그러고 보니 생고기 유성집에서도 이렇게 달랑 무채무침이 나왔던 기억이 있는데 전 그걸 연신 잔치국수에 퍼 넣고 먹었더랬지요.
( 잘한다는 설렁탕집을 가봐도 향과 맛이 따로따로 놀아서 향이 그럴 듯하면 맛이 밍숭밍숭하고
맛이 그럴 듯하면 향이 없고, 어떤데는 뽀얀 국물만 자랑하면서 '비주얼'만 괜찮으면 됐지
먼 까탈을 부리냐는 듯이 제대로 된 설렁탕집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
( 향과 맛이 아주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럴대로 '요즘 세상'에선 수준급,
아니 그보다도 들어간 수육이 만족스러운 집입니다. )
( 예의 '깍국'을 아낌없이 집어넣고 ... )
이제 본 메뉴를 맛봐야겠습니다. 설렁탕과 내장탕을 시키니 내장탕은 수요일과 목요일에만 된다네요. 아마 수요일에 고기가 들어와선 가요? 제가 좋아하는 설렁탕집에서 나는 특유한 냄새는 머리뼈를 넣고 고아야 난다고 어떤 분이 일러주셨지만 이집 설렁탕에서는 그 향까지 나진 않습니다. 대신 국물이 진국이고 건져 나오는 수육은 등심고기나 마찬가지로 투박하게 썰었습니다. 한마디로 잔머리 굴리지 않고 걸집니다. 설렁탕다운 설렁탕을 찾기 힘든 때에 이 정도면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습니다. 이 설렁탕은 마지막 남은 국물까지 죽이 되어 마지막 사명을 완수하고 스러집니다.
( 마늘도 넣고 곡기 안주 삼아 마지막 밑바닥이 보일 때까지 ... )
( 다른 음식점의 육회와 달리 찰기가 느껴지는 육회. 등심만 아니었다면 이거 하나로도 쏘주 한병쯤은 거뜬할 것 같은 ... )
배를 썰어 깔지 않고 파채, 깨, 참기름 플러스 계란 노른자(?)로 조물딱거려 나오는 육회도 일품입니다. 내색은 않지만 회비로 먹는다며 본전 뽑느라 무식하게 먹지만 않았다면 그것 하나로도 쏘주 한병 거뜬히 감당할 물건입니다.
( 후식으로 설렁탕 국물에 만 국수 )
( 전 여기에 무채를 듬뿍 집어넣어서 먹는 걸 좋아 합니다. )
( 배도 차고 술도 차니 벽에 붙은 이런 달마 부적도도 눈에 들어 옵니다.
대나무 그림자 뜰을 쓸어도 먼지가 일지않고 달이 연못에 들어도 물에는 흔적이 없네.
맑고 깨끗하게 남에게 폐끼치지 말고 살라는 말씀인 것 같은데 남이 더 먹을까 아귀아귀
동물적 본능에 충실해서 내 뱃속만 채웠으니 어찌 가슴이 뜨끔하지 않을소냐. )
향수병이 안주에 분칠 돼서 맛이 더 있었던 걸까요? 아니면 정말로 고기가 맛이 있었던 걸까요? 갑자기 ‘난닝구’만 입고 통금을 넘겨가며 술 먹던 군대시절이 생각납니다.
( 자 이제 아쉬우니 2차를 아주 간단히 해야지? )
‘이중(위)아, 2차하자~ XX집으로 빨리 쫓아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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