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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궁녀라고요? 2 - 정림사지

fotomani 2016. 10. 6. 08:40



부소산성 산책을 마치고 거리로 나서니 마침 백제문화제 첫날 개막식 행사로 분주합니다.

개막식은 부여에서 하고 폐막식은 공주에서 한답니다.



정림사지 남문입니다.  여기로 들어서면 양쪽으로 연못이 있고

중문 자리, 석탑, 금당 자리, 강당을 차례로 볼 수 있습니다.


백제는 기원전 위례성에서 나라를 세운 후 근초고왕때 평양성을 공격할 정도로 막강한

국력을 지니고 있다가 475년 한성이 고구려에 함락돼 공주(웅진)로 도읍을 옮깁니다.

그 위례성이 어딘지 모르고 있다가 최근에 와서야 그 규모로 보아서 풍납토성이 

위례성 아닌가 여기고 있습니다.



웅진성에서 문주왕으로부터 무령왕까지 다시 국력을 재건하고 이어 538년 성왕대에

도읍을 사비로 옮깁니다. 이 시기에 신라와 함께 한강유역의 고구려군을 물리치기도 

했으나 성왕은 554년 신라 관산성을 공격하다 전사하게 됩니다.

 이후 의자왕이 신라 대야성을 함락시켜 설욕하고 신라 서쪽 10여개 성을 

빼았은 것은 지난 번 부소산성 서두에서 잠시 언급한 바 있습니다.



사비로 옮긴 이유는 관북리 왕궁 뒤로 부소산성을 배후에 두고, 금강(백마강)이

북에서 서를 거쳐 남으로 휘돌아 가니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이고, 동쪽에 나성을 쌓아 

천연요새로써 도읍의 넓은 터를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서해와 가까워 무역에 이점이 있었는데, 고구려에게 한강유역을 점령 당하고 

난 후로는 백제로부터 고구려 연안을 따라 중국으로 가는 해상 교역로가 막혀 

직접 서해를 건너 교역할 필요성이 생긴 까닭이지요.

오히려 해상교역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고 명실공히 해양강국이 된 것입니다.


백제 사비시대는 문화의 중흥기라 할 수 있습니다. 이때 많은 절이 세워졌는데

일탑일금당 형식이 대부분이라 합니다.  금당이라 함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을 뜻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는 게 기념사진 한 방, 인증셧, 필요하지요. ㅎ



백제는 정림사, 왕흥사 등 커다란 절을 세우는데 그 정점이 익산 미륵사라 할 것입니다.

미륵사는1중문 1탑 1금당 형식의 가람 3개를 병렬로 배열해 삼원병렬식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중앙에 가장 규모가 큰 목탑, 양쪽에 석탑을 배열하고 뒷쪽에 하나의 강당을

공유하는 구조였다 합니다. 

2007년에 가보긴 했지만 복원 초기여서, 다음에 익산을 찾아볼까 합니다.


윗 사진의 기와들은 무엇일까요? 백제에서는 돌이 아닌 기와를 세로로 쌓아 벽을 만들고

그 속에 흙을 다져 기단을 만들었다 합니다. 이것을 와적기단이라 하고 하앙식처럼

백제만의 건축법이며 왕궁리 유적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 기단들은 회랑을 위한 

것으로 회랑은 중문과 강당으로 이어져 탑과 금당을 장방형으로 둘러싼 형태를 가집니다.



불경을 강독하고 불교의식을 치루는 강당입니다. 신축 복원된 건물이며 

여기도 백제만의 하앙식 지붕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강당이라면 마루가 깔려야겠지만 이 자리에 있던 고려시대 비로자나불을 들여 

보호각처럼 쓰이고 있습니다.



정림사지 곁의 정림사지 박물관. 백제불교와 왕권, 불교문화, 유물 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卍자 형태의 건물입니다. 



정림사 복원 상상 모형.

석탑과 금당, 강당 그리고 이를 에워싼 회랑



금당 축소 모형



정림사지에서 출토된 소조 불상 조각



2007년 왕흥사 목탑이 있던 자리에서 출토된 사리 장엄구

오른쪽 금동 사리함 속에 가운데 은제 사리병을 넣고 또 그 속에 왼쪽 금제 사리병을 

넣었다 하는데, 이런 사리기(舍利器) 일습이 발견된 것도 처음이고 가장 오래 된 것이라

합니다. 그것도 그냥 쑥쑥 밀어 넣은 것이 아니고 움직이지 않게 요철에 딱 맞는

구조였다니...


(조선일보 사진)

사리 장엄구와 함께 왕흥사 터에서 발굴된 금제 장신구와 유리 장신구.

위 금구슬은 직경 5-6 mm 정도 크기입니다. 그 옛날에 저렇게 만든 겁니다.

고대국가에서 이런 장신구를 만들 세공기술  유리 구슬. 상상이나 되십니까?



이 사리함은 뚜껑 달린 목탑 심초석 빈 공간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마치 열기 힘든 퍼즐 상자를 여는 기분



이런 불상 등은 사찰에 부속된 공방에서 전수돼 만들어졌다 합니다.

그 유명한 백제 금동대향로도 이런 공방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지요.

특히 왕궁리 유적지를 발굴하면서 나온 도가니에는 철찌꺼기, 유리 성분 흔적이 남은

도가니가 여럿 출토되었답니다.



卍자 사이 정원



정림사지를 관람하고 부여박물관으로 향하던 도중 길가에 G340이라 써놓은 창고가 보입니다.

얼핏 희망콘서트, 경기명창, 가야금 합주단... 이 써있어 그냥 공연장인 줄 알고 지나쳤는데



알고보니 <G340>이란 브런치카페로 식사와 공연을 함께 하는 공간이로군요.

브런치... 좋지요.

(홈페이지 사진)



닥다리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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