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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먹는 설렁탕- 느티나무설렁탕

fotomani 2020. 8. 25. 11:58

온갖 쓰레기들이 싸질러놓은 똥 무더기에 치어 이번 주말(8월 22일)은 시내도 조용합니다.

아침에 볼 일을 보고 동대문역사공원역에서 환승하려니 새벽부터 설친 탓에 허기집니다.

출구가 국립의료원 쪽이 가까우면 선지해장국집, 한양공고 쪽이 가까우면 설렁탕집을

마음속으로 정하고 나가니 설렁탕입니다. <ㄴㅌㄴㅁ 설렁탕>집으로 향합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있는 패션몰에 깔려 허우적대는 기와집으로 들어가니

홀은 상상 외로 현대적입니다. 

 

사실 설렁탕은 80년 대 이후론 내 맘에 드는 곳을 찾지 못해 큰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메뉴판을 보니 보 9000, 특은 1자가 흐릿하게 비치는 화이트 칠 위에 갑자기 14000입니다.

머피의 법칙에 빠질까봐 '특; 대신 '보'로 주문합니다.

 

국물은 상당히 짙은데 내가 원하는 설렁탕이라기보다 알기 쉽게 말해 돼지국밥처럼 

뼈육수입니다. 고기는 '보'치곤 양이 상당히 많습니다.

해장술 한잔 안할 수 없네요.   '조케 말할 때 빨리 꺼져라 잉, 코로나, 고수레~'

 

당연히 겉절이와 깍두기를 넣어 먹어야지요.

깍두기 단지에 국물이 없어 아쉽지만 깍국은 생략합니다.

 

그런데 설렁탕보다 깍두기가 일품입니다. 육고기 국물로 담근 듯 묵직하고

감치는 뒷맛이 설렁탕의 오묘함이 깍두기로 이사온 듯 합니다.

손님이 워낙 많아 냉장고에 미리 썰어 놓은 양지, 사태살인 듯 군내가 약간 납니다.

그러나 9천 원에 이 정도 양의 고기와 짙은 국물은 설렁탕 맛을 기대하지는 못했어도

국밥으로서 중상 정도의 만족감은 충분히 줍니다. 

 

1926년 동아일보 <평양인상, 어죽과 안주상>이라는 기사에서 

'설렁탕은 소뿔만 빼놓고 소의 모든 것을 넣고 끓이는 것이어서... 설렁탕 가치 쇠털 냄새는

조금도 아니 납니다...' 설렁탕 특유의 냄새가 '쇠털 냄새'임을 은연중 암시합니다.  

설렁탕 냄새가 쇠털 냄새인지는 모르겠으나 모든 부위를 다 넣고 끓이면 틀림없이 나긴 하겠습니다.

짐작컨대 이 집 설렁탕은 뼈도 머리뼈는 안 쓰고 고기도 양지나 사태 외에 잡고기나

부산물을 쓰지 않아 내가 설렁탕 고유의 맛과 냄새를 못 느낀 것 아닌가 합니다.

하긴 요즘 설렁탕과 곰탕 차이도 모르는데 설렁탕 고유 맛이나 냄새를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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