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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설렁탕은 다 누가 먹었을까?

fotomani 2009. 9. 18. 11:32

세월이 흐르면서 변하는 것이 어디 사람의 마음뿐이랴. 우리들이 항상 먹고 있어서 변하면 금방 알 것 같은 음식 맛도 세월이 흐르며 서서히 변하면 알아채기 힘든다.  평양냉면이 오래 된 분단으로 고유의 맛이 변화된 것이라면 설렁탕 맛은 왜 이리 밍밍해진 것일까?

 

우연히 눈에 띈 설렁탕집. 문간에 각종 매체출연사진이 붙어 있어 찝찝했는데 의외로 괜찮은 맛과 가격을 보여준다.
 

요즈음 설렁탕은 내가 알고 있던 설렁탕 맛과는 너무나 달라서 나 자신도 원래 설렁탕 맛이 어떤 것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그러나 설렁탕하면 내식대로 말해서 ‘복숭아 향과 육수 냄새가 뒤섞인 듯한’ 사골 국물 냄새와 송송 썬 대파 향과 푹 삶은 편육이 잘 익은 깍두기와 어우러질 때 비로소 제 맛이 나는 것 아닌가 한다.

 

면이 들어가 있으니 좀 그렇죠?

설렁탕은 ‘세종대왕이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선농단(先農壇)에서 제사를 지낼 때 비가 장대처럼 퍼부어 먹을 것이 마땅치 않자 논에 있던 소를 잡아 푹 끓여 먹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설렁탕’으로 불리게 되었다 하고, 또 국물 색깔이 눈처럼 뽀얗다고 ‘설농탕(雪濃湯)’이란 이름을 얻게 됐다는 주장도 있는데, 곰탕과 다른 점은 뼈를 넣고 고아서 설렁탕 특유의 냄새와 맛이 나게 된다‘라고 하는 것을 보면 격으로 따지자면 양반님 네들이 점잖게 앉아 먹는 음식은 아니고 그렇다고 천한 것들이 늘상 먹는 값싼 음식도 아닌 것 같다.

 

설렁탕은 역시 이렇게 밥과 깍두기 국물이 들어가야 제맛입니다.

현재의 설렁탕은 뽀얗고(雪) 짙은(濃) 국물에 너무 집착하는 것 같다. 아무리 음식이 맛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 즐거움을 준다 해도 사골 진국처럼 보이려고 여러 가지 첨가물을 넣고도 시침 딱 떼고 흠흠거리는 것을 보면 거짓말과 말바꾸기를 하고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 요즘 세태를 보는 것 같아 너무나 얄밉다. 더구나 이런 국물을 군소리 없이 땀을 뻘뻘 흘리며 훌훌 마시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무관심인지 무신경인지 답답하기 짝이 없다.

각종 전골이 많은데 그중 수육전골은 中자를 시켜도 2사람이 넉넉히 먹을 양인데 이 사진은 우족전골이다.

설렁탕의 식욕을 돋구는 냄새가 어떻게 나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식당을 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사골을 푹 고면 그런 냄새가 난다고 하는데 집에서는 정성이 부족한지 그런 냄새가 나도록 고지 못하니, 나는 먹기만 해야지 만들어 대접할 분수는 안 되는 모양이다. 인테리어도 훌륭한 어떤 설렁탕집을 들어가서 특유의 냄새가 좀 덜 한 것 같다 했더니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얼굴이 벌개지며 ‘손님들이 냄새 나는 것을 싫어해서 냄새와 맛을 조금 죽였을 뿐이지 우리 집에서는 두유 같은 것을 넣지 않습니다’라고 단호히 말한다. 누가 뭐라 했는가?

 

어때요? 괜찮습니까?
 

내가 맛있게 먹었던 설렁탕집은 모두 이름 없고 작은 정육점을 겸한 식당들이었는데 설렁탕이 소머리부터 꼬리까지 모든 부위를 넣고 푹 고은 국이라고 한다면 정육점을 겸한 식당이 더 풍부한 재료를 쓸 것 같은 예감이 들기도 한다. 모두 공통적으로 국물이 멀갰는데 뽀얗던 사골국물도 고기를 넣고 다시 끓이면 국물이 도로 말개진다 한다. 어쨌든 간에 멀겋지만 냄새가 짙어 칼칼하게 느껴지는 탕국물 맛과 입안에 들어가면 부들부들한 촉감이 느껴지는 수육 그리고 방금 집어넣은 대파 향. 더불어 뜨거운 국물에 씻어 먹는 막 시기 시작하는 농익은 깍두기 맛이 배가 차오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입으로 느끼는 만족감이 대단하다. 여기에 편육에 만하(지라)가 덧붙여지고 깍두기 국물까지 있다면 더욱 환상적일 것이다. 구리와 양평에 이런 집이 있었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모두 자취가 없어지고 말았다.

 

친구가 먹고 싶다해서 시킨 내장탕. 양은 푸짐한데 맛은 한우에 비해 약간 떨어진다.

아마 오래 전부터 유명한 집이었던 모양인데 우연찮게 내 입맛의 80% 정도 만족시켜 줄만한 설렁탕집을 하나 찾았다. 국일관 옆 골목 허름한 집인데 입구에서부터 알루미늄 통에서 끓는 탕국물 냄새가 진동한다. 국물 맛이 깊진 않지만 5천원이란 가격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넉넉한 수육과 탕 맛이 놀랍다. 비록 호주산을 쓴다고 하지만 중(中)짜리 수육전골은 2사람이 먹기 벅찰 정도로 푸짐하다. 사골국물은 다른 음식을 만들 때도 쓰는데 광장시장 순대국집에서는 사골국물에 된장을 풀어 순대국을 내주고, 혜화동로터리에서는 사골국물로 칼국수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당산동 유명한 곱창집. 곱창과 양을 굽는데 희안하게도 홀안에는 설렁탕 냄새가 나는데 곱창과 양이 부드러워 다시 한번 찾고 싶은 집이다.

아, 그리고 당산역 근방에 곱창전문집이 있는데 이 집에 들어가면 설렁탕 냄새가 난다. 따로 설렁탕을 하느냐 물어보니 돌판에 곱창과 양을 굽는 냄새라는데 구수한 냄새와 곱이 적당해서 씹는 맛이 있는 이 집은 언제나 사람이 바글거리니 잘 되는 집은 무언가 달라도 다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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