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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맛있다는 볼락을 곱게 발라 먹다니... (통영번개여행기)

fotomani 2009. 8. 17. 15:10

 

 

오랜만에 심야버스를 타고 지방으로 내려간다.

지난 여름여행 사전 답사비용 보조금으로 여유가 생겨 연휴기간에 통영, 거제를 다녀올 계획이었는데

비용을 줄일 겸 시간도 절약할 겸 심야버스를 타게 된 것이다.

(주: 대학동문 모임에서 여름여행을 하였는데 그때 답사비용 잉여금을 말함)

 

 

동행하는 후배들은 벌써 나와 탑승구에서 기다리고 있다.

내 딴에는 3명이라 맨 뒷좌석을 예약했는데 후배는 튀는 자리라며 뭐라 한마디 한다.

그러나 튀는 건 약과, 이 자리의 진수는 정작 취침모드로 자세를 잡고서야 맛볼 수 있었다.

버스가 고속도로로 진입하면서부터 에어컨을 올려주는데

갑자기 콧속으로 여름에 처음 승용차 에어컨 틀었을 때처럼 온갖 먼지 냄새가 밀려온다.

코는 칼칼해지고 코 위에 수건을 대놓아도 냄새와 기침이 나서 잠을 잘 수가 없다.

휴게소에서 기사에게 물어보니 ‘차가 오래 되어서 그렇다’는 간단한 대답뿐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다.

 

 

역시 꾼들은 부지런하기도 하다. 벌써 채비를 끝내고 막간을 이용해 참을 들고 있다. 

여객선터미널. 벌써 많은 사람들이 섬으로 들어가는 배를 타려고 표를 사고 있다.


4시 조금 넘어 도착한 통영  여객선 터미널에서는

새벽이라 갈 길을 정하지 못한 여행객들이 대합실 의자에 앉아

잠을 청하기도 하고 서로 이야기도 나눈다.

통영 여행지도를 하나 챙겨들고 서호시장으로 향한다.

 

 

4시면 붐비기 시작한다는 서호시장은 공휴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다.

시장주변 불이 켜진 곳으로 가니 김밥집과 낚시집이다.

역시 꾼들은 부지런하다. 벌써 채비를 끝낸 사람들은 막간을 이용하여 깁밥, 백반 등으로

시끌벅적하니 배를 채우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한 바퀴 돌고 <원조 시락국>집으로 가니 벌써 그 사이에 손님이 두엇 앉아 있다.

목로 중앙에는 작은 반찬들이 간막이 된 커다란 스테인리스 통에 들어 있는데

큰 통에 파이프로 냉매가 돌면서 음식을 차게 유지한다.

반찬은 각자 덜어 먹고 국밥만 갖다 주는데 주인장이 어떻게 먹는지 일일이 가리켜 준다.

장어국에 시래기를 풀어 넣었다는 시락국은 담백하니 짙은맛은 없고

추운 새벽 허한 밥통을 채우기 딱 좋을 정도이다. 

(주: 붕장어는 주로 머리와 내장을 떼고 일본으로 수출을 하였는데 이때 머리를 모아

갈아낸 후 육수를 만들고 시락-시래기-을 넣어 국을 만든다.)

 

4시가 조금 지나니 여는 <원조 시락국집> 

테이블 가운데는 왼쪽 파이프로부터 냉매가 공급되는 커다란 스테인리스 통이

있어 반찬이 차게 유지된다. 

새벽부터 일하는 인부나 술꾼들의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만든 시락국

 

 

얼굴을 씻기 위해 잠깐 들른 여객선터미널에는 욕지도나 매물도 가려는 사람들로 벌써 붐빈다.

목적지를 정한 것이 아니니 바쁠 것은 없지만 여행의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일출을 보기 위해 남망산 공원을 향하다

한산대첩축제 때문에 색등을 켜고 부두에 정박하고 있는 <비로봉함>으로 간다.

함정 번호 앞에 LST(Landing Ship for Tank)라 쓰여진 것처럼

선수와 선미에는 차량이 들어 가기위한 구조로 되어 있고 중간 계단 갑판에는 흰옷을 입는 수병 몇몇이 서있다.

 

 

일출을 보기위해 남망산 공원으로 가던 중 곁에 정박 중이던 비로봉함 근처에서

일출을 맞기로 한다. 

 

 

강구만에 정박중인 어선들. 한산대첩 시연때문에 깃발을 달고 있다. 

광란의 밤 흔적. 

활어시장 표지가 보이자 오로지 하모(갯장어)를 먹어보려는 목적으로 동행한 후배의 눈이 번쩍뜨인다. 

 

 

아직 캄캄한 바다로는 낚시배인듯한 작은 쾌속선들이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바다로 향하고

훤해지기 시작하는 동녘 하늘로는 작은 구름이 몰려 있어 깨끗한 일출을 보기 쉽지 않을 것 같다.

해안을 따라 동호항(강구만)쪽으로 향한다.

이곳에는 어선이 많이 몰려있는데 축제를 위해 깃발을 달고 있다.

 

 

일식 가옥에 들어서 있는 컴퓨터 학원. 근대와 현대의 오묘한  조화 

 

 

동피랑은 <한국의 몽마르뜨>가 아니라 하루 아침에 갈아엎는 개발이 아닌

지역사회와 조화를 깨치지 않으면서 원주민의 삶이 공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써 더욱 더욱 발전 시켜 나가야 한다.

 

 

중앙활어시장 곁으로 난 작은 골목길을 오르면 동피랑이란 마을이 된다.

동쪽에 있는 벼랑이란 뜻의 동피랑마을은 재개발사업으로 아파트촌이 되었을 마을을

주민, 시민단체, 시의 협조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었는데

삶의 질이라는 것은 편의성과 경제적인 효율성에 치중하는 사람들에게는 마뜩치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재개발을 하며 온통 콘크리트 골목이 된 것이 아니라

그전부터 필요에 의해 콘크리트 포장이 되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급경사로, 블로크집, 슬레이트집, 문간 옆 화장실과 그 위의 장독대, 작은 텃밭,

그 무엇 하나 현대적인 편리함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경제적인 능력이 되지 않는 터줏대감들에게는,

자리를 내어주지 않고 비좁은 동네에서 끼리끼리 모여 살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불안한’ 행복이 진행 중이다.

벽화 중에는 ‘동피랑엔 꿈이 살아있다’라는 그림이 있다. 그 꿈이 무엇이겠는가?

경제적 능력이 없어 들어가 살아 보지도 못하는 아파트딱지이겠는가

아니면 없더라도 예전부터 알고 부대껴오던 이웃들과 함께 지내며 사는 꿈이겠는가?

골목길을 돌아 나오는데 아줌마 셋이서 길옆 난간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리를 하나씩 척 걸치고 자동으로 스트레칭을 하는 걸 보니

동피랑의 꿈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그려질 것 같다.

 

 

 

 

 

 

동피랑 마을 정상. 바닥에는 집의 배치를 알 수 있는 기초가 그대로 있다. 

'왜 우리에게는 유럽과 같은 아름다운 마을이 없냐'고?

언제 그거 남겨 두기라도 했나? 값 안오른다고 보기 싫다고 다 까부서버렸지. 

 

 

 

 

구구한 설명이 필요없이 아침 스트레칭을 하는 아주머니들이

동피랑의 <꿈>을 한마디로 상징해준다. 


항구의 특성중 하나가 산 옆에 자리하고 있어 산자락을 가로타는 길의 경사가 급하다.

 큰 배를 접안하려니 수심은 깊어야 하고, 그러자니 도로확장과 시가지 확보가 큰 문제이다.

아침 해가 내리비치는 길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세병관, 충렬사로 가는데

모두 개관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문 앞에서 금목서 나무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축제기간에는 무료라고 써붙고 문을 열어 놓았으면서도 아직 개관시간이

안됐다고 못들어간단다. 

향기가 온동네에 진동한다는 커다란 금목서나무 

이런 고개를 넘고 내려오고 다시 올라서서 

충렬사까지 왔으나 문은 굳게 닫쳐있고...


아직 판도 벌이지 않은 중앙시장을 거쳐 이중섭거리에서 버스를 타고 미륵도 케이블카 정류장으로 간다.

버스는 공휴일인데도 SLS조선 회사 직원들로 만원이다.

 

 

벌써 48회째라는 한산대첩축제 박정희 장군의 사진이 보인다. 

이중섭 모자이크 타일과 화장품 선전 소책자 

이중섭의 은박지 그림과 우연찮게 찍힌 출석사진 

 

 

 

도남동에 내려 케이블카 정류장으로 가니

벌써 매표소에는 백 여명의 관광객이 줄을 서있는데 운행은 9시부터 한다한다.

아직 한 시간 이상 남아있다.

승객수 백만명을 돌파했다는 케이블카는 시간이 지나며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들어

정상에서 먹어야 참맛을 알 수 있다는 김밥을

고등학생 도시락 까먹듯이 벤치에서 기다리는 동안 벌써 다 먹어버리고 빈껍데기만 남겨버리고 만다.

 

 

케이블카 점검중 

대기중인 관광객들. 자 우린 먼저 올라 갑니다.

 

동승한 젊은 부부의 마탕도넛을 하나씩 얻어먹으며 상부정류장에 도착하니

시원한 바람이 상쾌하게 얼굴을 때린다.

방부목계단을 따라 도착한 전망대.

마치 조도 전망대처럼 앞에는 점점이 섬들이 떠있고 왼쪽으로는 통영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날씨만 좀 더 맑았으면 좀 더 파란 바다를 볼 수 있었을텐데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짧은 시간에 여기까지 올라와 이런 경치를 접할 수 있다는 게 아깝지 않다.

아래 산등성이로는 작은 절이 하나 보이는데

짓기 까다로운 팔작 십자각으로 만든 범종루가 하나 있어 미래사임을 짐작케 한다.

 

 

 

 

조도와 흡사한 전망대 

 

 


아래로 내려오니 사람들은 더욱 많아져 장바닥이 따로 없다.

너무 일찍 도착해 대기하느라 아까운 시간을 허비했다는 손실감은 다행이라는 안도감으로 바뀌고

동행한 후배가 지난 밤부터 입에 달고 다니는 갯장어를 맛보기 위해 중앙시장으로 간다.

먹는 방법이 달라 한 접시 모듬으로 줄 수 없으니 따로따로 시키라는 아줌마를 살살 달래서

갯장어(하모)와 쥐치를 큰접시 하나로 모듬으로 주문하고

세꼬시 무침 먹듯이 야채에 회와 초고추장, 콩가루를 넣어 비벼 만든 갯장어 무침을 한입 넣고

후배는 ‘향이 유다르다’며 감격한다.

나중엔 쥐치를 사이다와 초고추장을 섞어 넣은 우리식 물회로 만들어 먹으니

아줌마가 와서 한번 맛보자며 한입 떠먹는다.

 

 

욕지도 삶은 고구마와 삶은 쭈꾸미 

 

 

아줌마가 견본으로 만들어 준 갯장어회 무침 

남은 껍질과 대가리, 뼈로 만든 시락국 


유난히 덥다는 오늘, 해가 중천에 솟으니 걸을 맘이 나질 않는다.

근처 해수탕으로 직행. 열탕과 냉탕을 오가며 강구만이 내려다보이는 탕 속에서 열을 식힌다.


케이블카 정류장에서 팔던 멍게비빔밥에 넣어 먹는 양념멍게를 파는 집이 시장에서 볼 수가 없다.

여행 중에 맘에 드는 풍경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찍어야하고

먹을 만한 게 있으면 그 자리에서 먹어야지 '나중에'는 없다.

 다행이 너무 시지 않고 짜지 않아 그럭저럭 꿩 대신 닭 구실할 만한 멍게젓은 있어 각자 하나씩 구입한다.

너무 일찍 올라가는 것 아니냐며 아쉬워했던 6시 40분차도

폭염에 너무 지치니 끽소리 없이 꼬리를 내리고 만다.

대신 이른 저녁으로 내가 주장했던 볼락구이를 끝으로 여행을 마치자고 의견일치를 본다.

구이는 한 접시에 작은 볼락 5마리씩 올라온다.

그런데 잘 먹는 사람은 내장이 맛있다고 내장 째 먹는 구이를

내장은 깨끗이 발라내고 먹었으니 언제나 다시 와서 제대로 먹어볼 것인가?

 

 

 

 

내장째 먹어야 맛있다는 볼락구이를 깨끗이 발라 먹었으니 또 언제가서 그렇게 먹는담? 


천장에 텍스가 붙은 사무실 같은 재래식 다방. 시원한 냉커피 두 잔과 빙수 한 그릇 시킨다.

설익은 키위와 과일조각과 팥알이 각자 따로 노는 팥빙수니 아마 냉커피 맛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그러나 그 옛날에는 담배 연기 속에서 이보다도 못한 계란 노른자가 들어간 ‘모닝커피’와 쌍화차를 들며

 마담 눈치보며 죽치고 앉아 있었을 통영 예술가들을 생각하니

이 맛이 별다방 콩다방 커피 맛으로 변해버리고 나면 그나마 통영의 옛 맛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닥다리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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