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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느껴라! 생명의 경이로움을 - 맹씨행단

fotomani 2010. 3. 23. 10:15

맹씨행단(孟氏杏壇)하면 첨성단, 선농단, 사직단처럼 제사를 드리기 위해 단을 쌓아놓은 곳인가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은 아니고 집을 일컫는 말인데 조선 초기 정승 맹사성이 말년에 아산 배방면에 있는 집에 살며 후학을 가르치던 곳(행단: 학문을 닦는 곳)이라 하여 맹씨행단이라 하기도 하고 마침 이곳에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어 맹씨행단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맹씨행단으로 들어가는 솟을대문

너무 아침 일찍 도착하여 사당 세덕사 곁에 난 좁은 문으로 들어갔다.


맹씨행단은 완벽한 H자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가운데 2칸, 좌우 3칸이 직각으로 만나고 있다. 이곳을 처음 찾았을 때 양날개에 해당하는 건축물 측면에 왜 창이 없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는데, 후손이 관리하는 홈페이지에는 1920년대 까지만 해도 좌측이 3칸, 우측이 1칸 더 튀어나와 있었고 은행나무 있는 곳에 사랑채와 앞쪽 공간에 행랑채가 있었다 하니 그 부분을 없애고 맨 벽으로 처리를 한 모양이다. 맹씨행단은 살림집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집이라 할 수 있는데(1330). 물론 중간에 손을 많이 보았지만 부넘기가 없는 온돌구조, 종도리를 받치는 솟을 합장과 복화반(아래쪽이 넓고 위쪽이 좁은 화반, 동자주 위의 첨차 등에서 조선초기 이전 양식임을 알 수 있었다 한다. (http://www.themaenghouse.com/)

 

맹씨행단은 좁은 3X! 맞배지붕집을 양날개로 가운데 커다란 2칸 맞배지붕집이 만나 H자를 이루고 있다

 

은행나무 있는 곳에서 본 맹씨행단

 

양날개 전면부에는 창이 없다. 이 부분에 각각 3칸, 1칸씩 더 있었던 부분을 없앴다 한다.


자기 집을 마련하려는 사람들이 한번쯤 생각해보는 것 중 하나가 한옥인데 건축비용을 알아보고는 이내 포기해버린다. 모양은 팔작지붕이 좋지만 품이 엄청 들고 맞배지붕으로 하자니 너무 단조롭다.  맹씨행단은 양쪽 날개에 맞배지붕집을 평행하게 세로로 배열하고 가운데를 직각으로 이어 얼핏보면 팔작지붕집 같기도 하고 그때문에 단조롭지 않다 . 구조가 그리 복잡하지도 않으면서 공간활용이 높다. 만약 양날개를 악간 앞으로 연장하고 ㄷ자의 가운데 부분을 빛이 들어오는 실내정원이나 단차를 둔 대청으로 활용하면 어떨까?

 

방안에서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작은 창

 

대청 뒷벽은 2개의 판자 여닫이문으로 되어있어 문을 열면 꽃밭과 돌담이 보인다.

 

맹씨행단이 북향하고 있어 좌측날개 측면 창으로는 아침햇살이 나무 사이로 밀려 들어온다

 

 대청 내부 전면. 창호지를 바르지 않은 문살로 처마 서까래 실루엣이 보인다.


한옥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한옥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뭔가 퀴퀴한 것 같고 거의 모든 생활도구가 서구화 된 주택에 맞추어져 있으니 싱크대와 냉장고 하나만 부엌이나 대청에 들여놓아도 꽉 차버릴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맹씨행단의 대청을 보면 대략 35-40평 아파트의 거실과 비슷한 평수가 나올 것 같다. 사실 이만한 규모의 한옥에서 이만한 대청을 확보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데 바로 이점이 내가 맹씨행단에 관심을 갖는 이유이고 한옥 현대화에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기대를 갖는 이유이다.

 

 


평면 사각형 팔작지붕 한옥을 지으려면 네귀퉁이 추녀 4개만 구하면 다 끝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추녀와 대들보는 한옥에서 가장 든든하고도 큰 나무가 쓰인다. 그러나 모양은 날아 오르는 학의 날개처럼 우아하지만 추녀는 역학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추녀가 빠지고도 팔작지붕처럼 멋들어지고도 넓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면 그것은 여간한 매력이 아닐 수 없다.

 

후면. 대칭 속의 비대칭, 창문의 위치를 달리해서 변화를 주었다.

 

위의 사진을 보면 매우 단순한 듯 하지만 이런 각도에서 보면 화려한 모습을 보여준다.


요즘 서울 주거생활이라는 것이 흙을 구경할 수 없고 다행히 작은 화단이 있어 음식찌꺼기를 흙에 묻어 비료로 사용하려해도 해도 썩지를 않는다. 한옥의 단점 중 하나가 방이 작아 현대생활을 하기에 불편하다 하지만 그것은 쉽게 해결할 수 있다. 그보다 한옥의 장점은 방안에서도 흙(마당)과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당은 자연이 연기를 펼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할 뿐이지만 자연의 변화와 함께 마당이 우리에게 주는 풍성한 정서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보라! 더운 여름 마당에 한바탕 소나기가 퍼부을라치면 구들에 군불을 때고 방안에서 빗소리, 흙냄새와 함께 흙을 튀기며 마당에 꽂히는 빗방울을 볼 수도 있고, 토담에 기대 따가운 가을 햇볕을 맞고 있는 국화도 볼 수 있고, 겨울날 이부자리에 다리를 파묻고 펄펄 내리는 눈도 볼 수 있지 않은가?

 

사당인 세덕사. 사당은 보통 맞배지붕을 해서 엄숙함을 강조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곳은 팔작지붕으로 마무리했다.

 

세덕사에서 건너다 보이는 맹씨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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