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브란에 고스란히 맡겨둔 나의 주식은 어찌됐느냐" 격노
이 것는 1986년 4월 2일자 매일경제신문 <개화 100년 인물경제사> -네이버 지난 신문보기 캡처- 기사 부제이다.
서울 역사박물관 출판 <서울의 근대건축물>이란 책에는
서울에 있는 구한말 근대건축물들이 소개 되어 있는데 그중 나의 시각적 관심을 끈게
<뚝도 제1정수장>이었다.
일요일 아침(11/03/27) 서울 숲 곁에 있는 상수도 박물관으로 탈바꿈한 뚝도 제1정수장을 방문하였는데
박물관에는 "수도 경영의 특허를 받다"란 제목의 아래 사진이 걸려 있었다.
1900년만 해도 서울 시민은 우물과 샘물로 식수를 대신하였다 한다.
하수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했으니 수인성 전염병이 창궐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고종은 전차와 전기를 한국에 소개시켰던 미국인 콜브란과 보스트위크에게 공사시행을 맡겼다 하는데,
해설에 ‘(이들은) 발빠르게 움직여, 고종으로부터 상수도 부설 경영에 대한 특허를 받았다’라고 하는 것을 보면,
이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상수도 사업을 개시하여 도움은 받았지만 장사꾼 속이 별로 좋은 느낌은 받지 못했던 것 같다.
이런 궁금증은 <콜브란과 보스트위크>를 검색해 위의 기사를 접하게 만들었는데
내용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요샛말로 간단히 풀어보자면 얼리어답터인 고종에게 들러붙어 이것저것 신문물로 유혹을해서
국제상거래에 어두운 고종의 돈으로-사실은 고종의 개인 돈인지도 알 수 없지만-
회사를 만들어 놓고 부실운영을 구실로 차관을 들여와 일본과 미국에
불평등거래로 되팔아 먹고 튀었다는 전형적인 먹튀가 아닌가?
일국의 황제가 일개 사기꾼의 농간에 놀아났다는 게 얼마나 분통이 터질 일인지는 아래 기사에 잘 나타나 있다.
이게 정말로 매일경제신문 기사인가?
수도박물관 입구
주차는 서울숲에 하고 서울숲으로부터 들어가는 입구가 따로 있으니 이거야말로 1석2조 아니겠는가?
완속여과지와 각종 배관, 밸프, 펌프
밸브
정수지 상부 환기구
강 한복판에 취수정을 만들고 물을 끌어 들여 완속여과 방식의 연속침전법으로 수돗물을 공급했다한다.
박물관으로 쓰이는 이 건물은 송수실이고
윗 사진의 완속여과지는 한국 근대 초기에 세워진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로 한국에 소개된 근대공법 중 가장 오래 된 것이라 한다.
건축 당시 벽체 원형을 액자형으로 살려 놓았다.
양수공장(이 건물) 내부 양수시설을 입체형으로 전시해놓아 더욱 실감 나게 해준다.
이른 아침이라 문이 굳게 닫혀 있었는데 아주머니 도움으로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뚝도 제1정수장 전경 모형
1956년도에 만들어진 돌 현판
완속여과지 입체모형
여과지 바닥에 까는 여과수 집수블럭(필터)
경성 수도 일반 평면도 부분
대현산배수지로 송수된 물은 배수본관을 거쳐 광화문까지 와서
을지로 5가 부근(창녕교 근처)에서 4개로 나뉘어져 공급되어
그 해 12만5천명에게 12,500입방미터의 물을 공급하였다 하니
1인당 하루 100리터의 물이 공급된 꼴이다.
완속 여과지 내부
1908년에 세워져 1990년 8월까지 82년간 사용되었고 원수의 수질이 양호할 경우
별도의 화학약품처리 없이 양질의 수돗물을 공급하는 친환경적 생산시설이라 하고
세균제거율이 거의90% 전후였다고 한다.
바닥에는 고운 모래가 깔려있고 물이 차있던 흔적이 기둥에 보인다.
완속여과지 여과구조를 보여주는 단층면
희미하게 보이지만 상부에 고운 모래층이 있고 하부에 자갈층이 보인다.
화장실에는 아기들을 위한 받침대까지 마련해놓고 있어 푸근하다
상수도시설이 중요한 시설물이긴 하지만 군부대도 아니고
이렇게 철조망까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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