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한달반여 의자를 뒤로 자.빠.뜨.린.채 미드라는 마약에 빠져 지내다보니
지난 일요일부터 요추에 탈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젠 컴터 앞에는 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몇년 전에 고등학교 선생님께서
주신 책 몇권을 앞에 놓고 사관생도처럼 군뎅이를 1/3 걸치고 꼿.꼿.히 앉아 책을 읽고 있습니다.
그중 서울 100년 사진기록을 보다가 아래와 같은 사진을 우연찮게 보게 되었습니다.
경희궁이야 우리 들이 잘 아는 것이고 경운궁은 덕수궁을 말함이지요.
그런데 두 궁 사이를 잇는 홍교가 있었다니?
홍교는 홍예교, 홍예문 등에서 쓰는 것과 같이 아치형태로 만든 다리나 문을 말하는겁니다.
벌교의 홍교가 유명하지요.
얼마 전에 전 조선호텔 옆에 있는 환구단을 들른 적이 있습니다.
커다란 고층 빌딩 아래 묻혀 있는 환구단은 그야말로 초라하기 그지 없더군요.
설명문에는 고종이 1897년 황제로 즉위하면서 황국의 예법에 따라
환구단을 건설하였다? 라고 써있었습니다.
그래서?
1913년 조선총독부가 황궁우, 석고, 삼문, 협문 들을 제외한 환구단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조선경성철도호텔을 지었다.
환구단은 대한제국의 자주독립을 대내외에 알리는 상징적 시설로써...
도무지 아리송합니다.
환구단, 원구단, 황궁우를 찾아 보면 '그냥 같은 말로' 천자가 신위를 모셔놓고
제사를 드리거나 (고종)황제 즉위식을 한 곳이라 두루뭉수리 구별없이
말하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시지요. 같은 사진집 사진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환구단이라 알려져 있는 곳은 좌측의 팔각건물 황궁우이고
환(원)구단은 우측 담으로 둘러 싸인 3층 기단과 건물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고종은 태조의 신위를 모신 황궁우 앞에 있는 바로 이 환구단에서 황제 즉위식을 하고
대안문(대한문)을 거쳐 경운궁(덕수궁)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이제 환구단과 황궁우에 대한 모호함은 좀 풀렸습니다.
다시 홍교로 넘어가지요.
경운궁은 지금 경향신문사 있는 곳까지 숲으로 연결 되었다 합니다.
비좁은 거처로 고민하던 고종은 경희궁을 연결하는 홍교를 놓아
서궁인 경희궁도 함께 쓰려고 했지요.
그러나 이 홍교는 불과 1908년에 철거되고 맙니다.
경복궁, 경희궁이 일제 총독부 소유로 넘어가며 1907년 경희궁 자리에
통감부 중학교를 세우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래 서울역사박물관 자료입니다.
자료를 보면 경희궁은 그야말로 비련의 주인공이 아닌가 합니다.
파헤쳐지는 것으로도 모자라 전각들이 뜯겨져 팔려 나가고
흥화문은 이토히로부미 사당 박문사 산문으로 쓰이다가 신라호텔 영빈관 정문으로
숭전전은 동국대학교 법당으로 쓰이고, 쓰이고, 팔려 나가고...
양념으로 이탈리아 공사로 부임했던 까를로 로제티의 <꼬레아 꼬레아니>에서
서궁(경희궁)의 전설을 사진으로 올립니다.
아마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을겁니다.
그런데 이 친구는 말도 통하지 않는데 오또케 이런 구체적인 전설까지 모은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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