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야 여행을 하면 전투형으로 발 닿는대로 가급적 여러 곳 헤매고 다니지만,
여행이 반절이 지나고 후반부에 접어드니 슬슬 시간이 아까워지기 시작하고
월요병 비스무레한 허전한 느낌이 들기 시작합니다.
서귀포항으로 나갑니다.
서귀포항은 다른 항구와 달리 여행객을 상대로 하는 어시장이 없습니다.
출조하는 낚시꾼에게 물어보니 수협공판장을 가리켜 줍니다.
벌써 한쪽에선 경매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귀항하는 동안 배속에선 벌써 상자에 생선들을 정리했는지
배가 접안하자마자 일꾼들이 달겨들어 생선궤작을 팔레트 위에 쌓아놓기 시작하면
곧이어 지게차가 난짝 들어
이렇게 경매하는 곳 끝줄에 갖다놓으면 계속 순서에 따라 경매가 진행됩니다.
갈치가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하게 담겨 있습니다.
서울에서 먹어봤던 갈치회가 좀 뻑뻑해서 그리 호감을 갖지 못했었는데
그런 선입견 때문에 이번 여행에 갈치회 먹어 보지 못한 것이 미련 남습니다.
새벽에 갈치를 보고 왔더니 갈치가 당깁니다.
숙소에서 미리 전화를 했더니 무뚝뚝한 아주머니 목소리로
'몇명이나 오냐'고 묻습니다. ???
식당에 도착하니 홀에 손님이 없습니다.
사람도 없는데 뭘 몇명이냐고 물어보냐 했더니 봉고차로 오는 손님들이 있어서 그렇답니다. ㅉㅉ
"갈치 대자면 몇명이나 먹어요?"
"3명밖에 못먹어요."
아침부터 배 터질 일있나? "대자 하나에 정식 2 주소~"
어째 시쿤둥한 반응입니다.
서울이었으면 게눈 감추 듯이 사라졌을 게장.
대여섯 토막되는 것 같습니다.
이래서는 제대로 얻어 먹지 못하겠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지
집사람과 딸이 무슨 냄새가 이리 좋으냐, 이게 우리 먹을 갈치조림 냄새냐 뭐냐 하며
평소에 하지 않던 분위기를 '업'시키니 -대한민국 아줌마덜 파이팅!-그제서야 아주머니 말문이 터지며
서비스로 고등어도 한 마리 구어 왔답니다.
'서비스는 뭘~ 정식 둘 따로 시켰으면 당연히 그 정도야 따라 나와야지'
속으론 그렇게 생각해도 아침부터 씰데없이 혼날까봐 군소리 없이 먹습니다.
어찌됐건 물이 좋으니 갈치가 꿀맛입니다. 쐬주? 오늘은 좀 참지요.
그러지 않아도 손주한테 '쏘주 먹으면 밥통된다'는 훈계를 듣는 판인데...
서귀포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니 시원하게 펼쳐진 구릉 위로 구름에 가려진 한라산이 보입니다.
다원 중에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제주다원으로 갑니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나름 아깃자깃하게 꾸며놓았습니다. 저 아래 중문단지가 보입니다.
저 멀리 산방산도 보이고
차발 중간 중간을 막아 미로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입장권을 사면 차를 무료로 시음할 수 있습니다.
햇차라는데 차맛은 잘 모르지만 분위기 탓인지 수종사 따라가는 게 없는 듯 합니다.
모슬포를 거쳐 근처 모래사장에서 물놀이를 하려고 그늘막을 치려했으나
거센 바닷바람으로 포기하고 잠시 물에 들어 갔다가
화순해수욕장으로 가려하니 벌써 12시를 조금 넘었습니다.
우선 요기를 해야겠다 싶어 모슬포에 있는 산방식당으로 가니 홀에는 이렇게 사람이 들어차고
밖에서는 순서를 기다리느라고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거나 서있습니다.
순서표 24번을 배정받고 많이 '죄송 받으며' 기다립니다.
제가 좀 급한 편이라 이런 거 잘 못 참는데...
기다리는 동안 주방도 구경하고 남들은 뭘 먹나 기웃거려 봅니다.
나중에 후배에게 얘기하니 편육을 시킬 때 껍데기도 달라면 공짜로 갔다 준답니다.
좀 미리 가르켜주지...
또 쏘주 생각이 간절한 걸 시원하게 목이나 좀 축이라고 남정네 3명이 맥주 '한'병을 시킵니다.
비빔밀면과
물밀면
섞어봐야 어떨지 짐작이 되지요.
꼬맹이도 맛이 있는 지 지 엄마 걸 뺏어먹기 시작합니다.
전에 먹었던 밀가루 냄새가 살짝살짝나던 밍숭밍숭한 밀면만 생각하고 얕잡아 봤더니 그게 아닙니다.
'어~~~ 면맛이 정말 좋습니다.'
오래 밟고(반죽하고) 적당히 숙성시켰는지 부드러우면서도 졸깃졸깃 식감이 무척 좋습니다.
기다린 보람이 있군요.
화순해수욕장으로 가기 위해 송악산 초입 작은 고개를 넘으니
시야가 트이며 산방산이 나타납니다. 모처럼 시원한 광경입니다.
이거 야단났습니다.
화순해수욕장에 이르니 정작 물놀이해야 할 주인공인 꼬맹이는 꿈나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카트 하나만은 꼭 태워야겠다고 월드컵경기장 옆의 카트랜드로 가니
관광버스 여행객들이 도착해서 40분을 기다리랍니다.
'미쳤어? 40분이나 기다리게.'
잘난 체하며 뗏목이나 태우자고 쇠소깍으로 갑니다.
뗏목이요? 2시간을 기다려야 한답니다.
투명보트를 타려하니 3시간을 기다리라는군요?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이럴 줄 알면 로또를 사지요. 이렇게 마음먹은대로 되지 않는게 바로 인생 아니겠습니까?
해변에서 아드님더러 포즈를 취하라니 이럽니다.
죽쒔다라는 속마음이 이렇게 나타난 것일까요? 아니면 2자로 줄여 '된장!'이라는 걸까요?
아직도 꼬맹이는 주무시고 그냥 걸어서라도 구경이나 해야지요.
이제 다 포기하고 저녁때 해먹을 BBQ장이나 보러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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