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산을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는 미황사 대웅보전과 웅진전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기 그지 없지만
미황사 부도밭으로 비를 맞으며 가는 길은 무심의 길이기도 하고 부도밭에 앉아 있으면
저절로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매력이 있어 해남에 가면 거의 한 번씩 둘러보고 오는 절입니다.
( 새벽부터 안개낀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해남으로 달려 갑니다. )
( 밥은 먹어야죠. 잠시 목포 초원음식점에 들러 꽃게무침 덮밥을 아점으로 요기하고 갑니다. )
두륜산(대둔산)을 뒤로 하고 있는 대흥사(대둔사) 부도밭은 미황사처럼 부도에 동물조각이 많습니다.
미황사 부도밭에 앉아 그 동물들과 친해졌던 나로서는 그와 비슷하고 규모도 크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고
더욱이 초의선사와 추사의 일화가 전해지고 있으니 안 가볼 수가 없었지요.
( 주차장 곁에 있는 일주문 )
두륜산 대둔사라 쓰인 일주문을 지나면 유명한 유선(여)관이 나옵니다.
잘 정리된 장독대와 중정, 곁에 흐르는 계곡물은 서생이 보면 책을 읽을 것 같기도 하지만,
저 같은 술꾼이야 비 오는 날 미닫이문을 열고 마당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쏘주나 한잔하는 게 오히려 더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사실 문에서 들여다보이는 마당에 도토리묵, 해물파전, 동동주라 쓰여진 호객성 간판이 있으니 그게 다 제 잘못만은 아니지요.
( 유선장 객실 )
( 문간에서 보니 이렇게 나를 유혹을 하는데 어쩌란 말이냐? )
( 또 다시 나오는 일주문 )
허~ 아까 본 것과 비슷하게 두륜산 대흥사라고 쓰여진 일주문이 또 나옵니다 그려.
그건 그렇다 치고 일주문을 지나자 오른쪽으로 그 유명한 부도밭이 나옵니다.
서산대사, 초의선사를 비롯하여 수많은 고승들의 부도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으니 이거 초심자가 번지수 찾기 난망이군요.
여하튼 나는 동물부조들과 놀러 왔으니 그거나 감상하며 곁달아 찾을 수 있다면 감지덕지 감사드려야지요.
( 오른쪽 원구형으로 된 부도가 초의선사 부도로 草衣塔이라 씌여있습니다 )
( 정중앙 앞쪽 팔각형태의 부도가 승장으로 유명한 서산대사 부도입니다 )
고약스럽게 부도밭 문은 굳게 잠겨있지만 다행이 담장이 낮아 까치발을 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과연 우리나라 최대 부도밭답게 온갖 형태의 부도들이 모두 다 모여 있습니다.
물론 저와 함께 놀 동물들 용, 거북, 도깨비, 잔나비, 불로초, 게 등도 나를 반겨줍니다.
( 단순화 된 거북이와 웃고 있는 거북이 )
( 각종 동물부조와 오른쪽 아래 거북이 꼬리와 뒷발이 아기발처럼 귀여운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
부도밭을 지나면 약간 너른 공터가 나오는데 이거 절의 배치가 내가 봐오던 방식과 영 딴 판입니다.
일반적으로 일주문을 통해 진행방향으로 맨 끝 쪽에 대웅전이 있어야 할 텐데
좌측에 대웅보전이 있는 북원이 있고 정면에 남원이 배치돼있습니다.
( 일주문을 통해 경내로 들어오면 왼쪽으로 남쪽을 향한 건물이 있는 북원이 있고 바로 앞에 남원이 보입니다 )
저는 먼저 유불(儒佛), 노소 불문하고 정약용, 추사 그 외 많은 사대부들과 교류를 나누었다는
초의선사가 머물렀다는 일지암 쪽으로 갑니다.
추사가 제주로 유배 길에 초의선사의 일지암에 들렀을 때
전라도 최고 명필 이광사가 쓴 대웅보전 편액을 비웃으며 자신이 다시 써주었으나
나중에 해배후 자신이 쓴 편액을 내리고 다시 이광사의 편액을 달게 했다는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유배기간 중 천재 김정희가 인간적으로 좀 더 성숙해진 탓일까요?
제주에 있을 때 초의선사에게 차를 보내달라고
‘다구치고 으르고 조르는’ 편지와 차를 보내준 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명선’이라는 글을 써 보낸 이야기들이 전해오며, 이 명선은 초의선사의 호로도 사용되었습니다.
그럼 잠시 추사가 어떤 식으로 편지를 보냈는지 살펴볼까요?
(그림 출처 동아닷컴 http://news.donga.com/3/all/20110906/40132865/1.)
얄밉게도 ‘거친 추아차는 부처님 앞에 올리고 내게는 좋은 것만 골라주오’,
때로는 잔소리를 ‘매번 볶는 방법이 조금 지나쳐서 정기가 삭는 느낌이었소... 불기운을 조절하는 것이 어떻겠소’
그렇게 쪼잔하게 군 게 미안해서 ‘차포(茶包)는 과연 훌륭한 제품이오. 능히 차의 삼매경을 투득하여 이르렀구려(透到)’
염치를 아는 듯이 ‘물리지도 않고 요구만하니, 많이 베풀어 주기야 어찌 바라겠소’
그러나 다시 안면몰수하고 ‘...또 차를 재촉하니...다만 두해의 쌓인 빚을 한꺼번에 챙겨 보내되
다시는 지체하거나 빗나감이 없도록 하는 게 좋을 거요.’
천재의 이런 면모 때문에 적대적인 세력도 많았지만 그래도 정이 가는 건 웬일일까요?
( 일지암으로 올라가는 길 )
( 내가 들렀던 2007년도에는 일지암에 이와같은 불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는데 지금은 어떤 모습일지? )
산길을 올라가니 새로 암자를 짓느라 공사가 한창입니다.
안내판을 보니 초의선사가 이곳에 머무르며 ‘차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 동다송과 다신전을 저술하였고,
소치 허련을 배출한 남종화의 산실이기도 하다’라 적혀 있습니다.
이곳에는 2개의 다정이 있는데 소쇄원의 광풍각의 초가집 버전 같은 일지암이 있고 기와지붕은 자우홍련사입니다.
그 가운데 작은 연못이 있고 일지암 낮은 석축에 다감(茶龕)이라 음각된 석판이 끼워졌습니다.
( 차를 그만큼 귀하게 여긴다는 뜻이겠지요. 다함 판석이 낮은 석축에 끼워졌다 )
( 어떤 손을 위해 방을 덥히고 있을까요? )
‘부드럽고, 아름답고, 가볍고, 맑고, 차야 차맛이 잘 우러난다. 또한 고여 있지 않고 너무 급히 흐르지도 말아야한다’라는
다천(유천)이 흐르고 산자락을 쓰다듬고 내려온 산들바람에 대흥사가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경관까지 갖추고 있으니
왜 일지암이 이곳에 있어야만 하는 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차라도 한잔했으면 금상첨화일 텐데 수종사 같은 차보시가 없어 아쉬움을 달래며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 고여있지도 않고 급히 흐르지도 않는 ... )
( 일지암은 이와 같이 경내가 내려다 보이는 탁 트인 시야를 가지고 있습니다 )
( 사람이 없어 차 한잔 못얻어 먹고 ... )
다시 내려와 천불전으로 갑니다.
입구 출입문에는 휘엉청 휘어진 문지방이 있어 자연스레 머리를 조아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안에는 1000구의 불상이 모시어진 천불전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차했습니다. 천불전 뒤에 주지스님의 거처인 ‘일로향실’을 지나쳐 버리고 만 것입니다.
뭐가 아차냐구요?
추사의 원본 편액이 여기에 걸려있는데 그걸 접견하지 못했으니 또 다시 갈 수도 없고 헐~
( 남원 )
( 천불전으로 들어가는 가허루. 휘엉청 늘어진 문지방이 눈을 끕니다 )
( 이 건물이 대웅전인가 착각할 정도의 위치에 단정하게 자리잡고 있는 천불전 )
( 1813년부터 6년간에 걸쳐 조성되었다는 千불 )
( 내소사 문살 문양이 떠오르는 분합문 )
북원은 작은 계곡에 놓인 다리를 건너 침계루 밑을 지나 대웅보전으로 들어갑니다.
문제의 이광사 대웅보전 편액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기둥 위에 올려진 용머리가 모두 제각각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게 독특합니다.
정면 5간의 팔작건물이 위풍당당하군요. 내부천장에는 용과 비천상이 날라 다닙니다.
여기서도 아차합니다. 대웅보전 앞 요사채 백설당에 걸려진 추사의 ‘무량수각’ 편액을 또 놓칩니다.
사전에 공부를 부실하게 하고 간 죄지요.
어쩝니까?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친견하고 와야지요.
( 북원의 현관인 침계루 )
( 천불전보다 중후하고 화려한 대웅보전 )
( 내부에는 기둥 위에 장식된 용머리의 꼬리들이 보이고 봉황이 날아 다니고 있습니다 )
( 제각각 형태를 취하고 있는 용두 )
( 가장 큰 요사채인 백설당. 여기에 추사 원본 무량수각 편액이 걸려 있었는데, 알아야 면장을 하지 )
( 왼쪽 기둥 사이로 흰 글씨가 살짝 보이지요? )
남들에게는 사전에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갖고 가라 조언을 하면서
막상 자신은 그렇지 못해 몇 가지를 놓치니 후회막급입니다.
2007년 찍은 사진을 왜 이제야 올리냐구요?
사실 미황사와 대흥사는 무게감이 느껴져 미루다가
며칠 전부터 자료 정리하면서 대흥사 사진을 보니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되겠다 싶어 올리지만
역시 역량이 부족함을 절실히 느낍니다.
“다시는 지체하거나 빗나감이 없도록 하는 게 좋을 거요!”
저는 야단맞아도 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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