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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에 촌스러운' 돈가스

fotomani 2013. 6. 20. 09:09

지난 석가탄신일은 공휴일이었지만 알람은 어김없이 430분에 울립니다.

 

미적거리다 기왕 일어난 김에 거실에 며칠 전 주문해놓았던 블라인드를 달고

내 볼일을 좀 봤는데도 아직 8시가 넘질 않았습니다.

자리에 들어가 다시 잠을 청하자니 잠이 올 것 같지도 않고

사무실에 나가 며칠 전부터 시작했던 사진파일 정리나 하려고 집을 나왔습니다.

 

 

 

사진파일 정리는  관련사진이 들어가 있는 폴더를 키워드로 쉽게 찾기 위해

폴더에 태그를 붙이는 작업인데

단순작업인 만큼 금방 지루해집니다.

점심시간은 돼오고 같이 먹을 만한 사람에게 문자를 띄워도

나만 한가한 건지 신통한 답장이 오질 않습니다.

 

조계사로 가며 간단히 점심이나 하려고 종로 2가로 가니

공휴일이 돼서 인사동길은 사람들로 인산인해입니다.

사람들을 피해 YMCA로 나있는 피마길로 들어섭니다.

원래 있었던 작은 선술집들은 수리를 하느라 뼈다귀를 앙상히 들어내 있고

간단히 먹을 만한 음식점이 눈에 띄질 않는데 마침 새로 개업한 둥지란 음식점이 나타납니다.

 

 

문간에서 본채로 들어가는 좁은 골목을 빛이 들어오는 지붕을 만들어 테이블이 환하니 좋습니다.

벽에는 사진과 함께 요란한 현수막이 붙어있고,

메뉴는 돈가스로부터 찌개류를 거쳐 각종 구이류까지 다양합니다.

오늘도 잘못 들어온 것 같습니다. ‘까짓것, 그래 봤자 점심 한 끼지.’

 

 

선뜻 메뉴를 정하기 힘든데 수제라는 말이 눈에 들어옵니다.

 ‘5천원에 수제라야 빤하겠지...’하면서도 개 끌려가는 기분으로 그걸 시킵니다.

앞 테이블을 보니 냉면을 먹고 있습니다.

저걸로 시킬 걸 잘못했나?’

 

 (성북동 언덕배기. ㄱ돈가스 정식. 패밀리 레스트랑 수준이 되었습니다.)

 

황교익이라는 분의 서울의 일본음식에 대한 글에서

'1990년대 이후 서울의 일본음식은 두 종류로 분류될 수 있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와 웬만큼 한국화한 일본음식과,

최근래 일본에서 직수입한 일본음식,

한국화한 일본음식은 가난한 한반도에서 버티느라 싸구려에 촌스럽게 변하였으며,

직수입한 일본음식은 세계 으뜸의 경제대국을 이룬 국가에 걸맞게 비싸고 샤방샤방하다.

비교하자면 남대문 시장의 냄비우동과 강남 프랜차이즈 일식집의 사누키 우동,

피맛길 참새집 꼬치와 홍대 앞 일본인 유학생 출신 요리사의 꼬치,

성북동 기사식당 돈가스와 일본에 로열티를 지급하는 돈가스 같은,'

 

(같은 동네. 분위기는 아직도 기사식당 수준의 돈가스집이지만

질이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 집) 

 

이분 글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위 2장의 사진은 그렇게 토착화한 성북동 기사식당 돈가스입니다.

서울성곽을 산책하다 내려와서 배채우기 딱 좋은 곳이지요.

하나는 패밀리 레스토랑 수준으로 변했고 나머지는 아직도 기사식당 수준으로 남아있고

모두 다 간장을 변형시켜 만든 소스를 아직도 줘서 가끔 옛날 생각이 나면 들리는 곳입니다.

그래도 옛날 가격을 받고 있는 곳은 없는데

종로바닥에서 5천원이라니 피마골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가격이 무척 착합니다.

 

 

배추김치와 깍두기 그릇이 나오고 조금 있다가 커다란 접시에 돈가스가 나오는데

눈으로 대충 보아도 가격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아줌마, 여기 쏘주 빨간 거 하나 주~“

별 볼일 없으면 그냥 후딱 먹고 나오려던 생각을 지웁니다.

 

 

적양배추에 당근과 양배추가 적절히 섞인 샐러드, 방울토마토,

오이만 해도 5천원이라기엔 정성이 깃 들였습니다.

거기에 갓 튀겨낸 돈가스의 바싹한 겉옷, 질기거나 딱딱하지 않은 돼지고기,

마트소스를 찍 뿌리지 않은 것만 해도 제 가치를 훨씬 뛰어넘는데

거기에 파슬리 가루까지 살짝.

시간이 널널하니 신문 펼쳐놓고 읽어가며 한 방울, 한 톨 깨끗히 치우고 나옵니다.

요새는 봉투 뜯고 계란 풀어 끓여주는 라면도

3천원하는 세상입니다.

새로 개업을 해서 가격은 100일 천하로 막을 내린다 해도

'싸구려에 촌스럽게 변한' 돈가스라도

이 정도의 질과 양을 유지한다면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들께는

즐거운 소식일 수밖에 없지요.

 

쏘주 한 병 뚝딱하고 조계사로 가자니 좀 미안하긴 하지만

발우공양이 고마운 마음으로 음식을 남기지 않고 깨끗히 먹는 것이니

부처님도 제 마음을 이해해주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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