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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쿠샤>가 뭐야?

fotomani 2015. 3. 10. 08:38




며칠 전 고등학교 동기 정기모임 산책겸 회식 장소로 정한 안산 자락길을 미리 답사 한번 

해보자고 해일찍 간 김에 언젠가 한번 들러봐야겠다 벼르던 <딜쿠샤>를 찾게 되었습니다

사직터널 위에 있다하나 대신고등학교쪽으로 접근하면 찾기가 힘들고 

독립문에서 사직터널을 바라보고 오른쪽 길로 올라가 왼쪽으로 꺾어 

터널 위를 가로질러 접근해 들어가는 게 훨씬 쉽습니다

지도와 달리 딜쿠샤 윗길은 막혀 있기 때문이지요.



이젠 근대건축에 좀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딜쿠샤>가 많이 알려졌지만

아직도 나타샨지 뭔 소린지 어리둥절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딜쿠샤는 힌두어로 매혹, 기쁨, 이상향이란 뜻이라는데 

1923년 앨버트 테일러 부부가 이곳에 저택을 짓고 그 이름을 <딜쿠샤>로 명명한데서 유래한 겁니다.



제국을 만들고 황제라 했지만 대한제국은 열강들의 각축장이 되어 

안타깝게도 각종 알짜배기 이권들을 헐값에 넘겨주는 일이 허다하게 벌어졌습니다

운산광산(금광)의 채굴권은 1896년 미국무역(American Trading Co.)이 획득하게 되었는데

 이때 조지 테일러가 동업자 자격의 채금전문가로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운산 금광은 <노다지>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금이 많이 생산된 곳인데

고종 황제에 의하여 1910년까지 광권(鑛權)이 보호되고

그 후 총독부도 개입하지 않아 1939년까지 미국인 광산으로 많은 수익을 낼 수 있었다 합니다

조지 테일러는 이 광산에 종사하면서 한국 무역업의 기반을 구축할 정도로 큰돈을 벌었습니다

그리고 1908121079세로 한국에서 별세하여 양화진 제1묘역(-21)에 묻혔습니다.



조지 테일러의 아들 앨버트 테일러(Taylor, Albert Wilder)는 상속 받은 재산으로 

형 윌리암(William)과 서울 소공동에 “W. W 테일러무역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이들은 미국의 제너럴 모터스(G.M), 포드, 크라이슬러, 오버랜드(Overland) 등에서 

제작한 자동차를 한국에 수입. 판매하였습니다

또한 미국의 영화사로부터 영화(필림)를 수입하여 여러 극장에 대여하였고

쉐퍼(Sheaffer) 만년필을 포함한 수많은 생활 용품들도 그들의 무역을 통하여 한국에 유통되었습니다.



앨버트 W. 테일러는 메리 린레이(Mary Linley)와 결혼하여 

커다란 은행나무가 서있는 언덕 권율장군의 집터를 1920년에 구입하여 

즐거운 세상의 궁전(Palace of Earthly Delights”이란 뜻의 딜쿠샤(Dilkusha)"로 명명하여 

1923년 건축되었습니다

전망이 좋고 집이 잘 지어져 주한 외국인들의 사교 공간으로 빈번히 사용되었습니다



테일러 부부는 첫아이를 세브란스 병원에서 분만하였는데 

당시 병원 간호사가 일본군인들의 검색을 피하기 위해 독립선언서를 아기 요람 아래 숨겼습니다

테일러는 이때 AP 통신원도 겸하고 있었는데 이 선언서를 숨겨 해외에 처음으로 알렸습니다



또한 일본의 만행을 보고서로 작성하여 해외로 반출하였는데 

이 때문에 서대문 형무소에서 수개월 수감생활을 하고 1942년 강제 추방됩니다.   



앨버트 테일러는 8.15 광복 후 

한국에 남겨둔 재산을 회수하고자 미 군정청 고문으로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그가 살던 딜쿠샤는 이미 큰 손실을 입었으며, 불법 점유자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남기고 간 자산은 은행 계좌에 보존되어 있었으나 그 가치는 이미 매우 낮게 떨어져 버렸습니다



그는 1948년 서울에서 별세하여 양화진 제1묘역(-20)에 안장되었으며

그 후 이집에 대한 내력이 잊혀 졌다가 

2006년 아들 브루스 테일러가 내한함으로 내력이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양화진 선교회 자료 많이 참조)

**문헌에 따라 조지 테일러의 아들을 앨버트와 브루스로 뒤바뀌어 불려지기도 합니다.**



제가 테일러 가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 것은

 딜쿠샤로 검색을 하다보면 앨버트 테일러의 공적에 대한 얘기 일색이기 때문입니다

일제의 만행을 당사자도 아닌 미국인이 외부세계에 폭로해주고 

3.1운동을 알려준 것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한제국의 쇠락에 묻혀 그도 역시 

자기 나라의 국익을 위해 또는 개인의 부를 위해 이 나라에 들어온 사람들 중 하나라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요.



요즘 어떤 미친놈이 저지른 사건으로 높으신 분들이 솔선해서 과공(過恭)하는 모습에서 

생기는 불편한 마음이 이 딜쿠샤로 다시 되살아나는 듯합니다

있는 대로만 봐야지 이러면 안 되는데... 쿨 해져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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