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 사람이야 아침잠이 없어서 그렇다지만 9시도 되지 않았는데 젊은이들이 전보다 많이 눈에 띕니다.
이번 가을이 지나고 나면 다음 해에는 가을이 찾아오지 않을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젊은이가 산을 찾는다는 건 구들장 지고 뭉개는 것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훨씬 좋은 일이지요.
아차산 하면 고구려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데 산성의 보루를 정비하면서야 비로소
번듯하니 고구려 유적을 일부나마 살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4보루는 건물지를 비롯하여 저장고, 배수지 등 생활시설 흔적을 볼 수 있는 가장 큰 보루입니다.
중요시설이 많았던 만큼 석축으로 축성돼있습니다.
카메라가 필수품인 세상이긴 하지만 모델처럼 남 의식하지 않고 각종 포즈를 자연스럽게 취하며
사진을 찍는 세대는 역시 젊은이들입니다. 이런 걸 카메라 놀이라고 해야 하나요? 멋집니다.
그냥 보면 정원이요, 자세히 보면 유적이라, 역사는 그렇게 우리 곁으로 슬며시 다가옵니다.
1948년에는 아차산 양주와 고양(구리시와 광진구) 군계 동쪽 기슭에 스키장을 만들어 스키대회를 열었다 합니다.
이 보루 경사면을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그 당시로써는
역사와 문화를 갈음할 만한 대단한 스포츠 행사였을 겁니다.
당시 교통 상황을 보면 협소하긴 하지만 서울 근교에서 스키대회 갖는다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건너편 봉우리에서 건너다본 제4보루
반대 방향에서 걸을 땐 급경사인 줄 몰랐는데 이 방향에서 보니 경사가 급해
건너 산 단풍 속으로 빨려 들 것 같습니다.
아차산, 용마산, 망우산이 모여 있다 보니 산책로가 많습니다.
친구와 만날 약속 시간이 다가와 망우산 코스를 지름길인 서울 둘레길로 서둘러 왔는데
우리 귀에 익은 분들의 무덤이 많은 사색의 길을 여유롭게 천천히 걷는 걸 권합니다.
한용운, 오세창, 문일평, 방정환, 지석영, 박인환, 최학송, 차중락...
'...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박인환 목마와 숙녀 중에서>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산책길을 서둘러 떠나는 게 아니라
친구와 술 먹을 통속적 약속에 늦을까 봐
청춘을 찾아야 할 무지렁이는 중랑 캠핑장도 건너뛰고 양원역에서 중랑구청으로 향하는 버스를 탑니다.
"상계동에 좋은 데 있다면서?"
"뭔 상계동?"
언젠가 신내동에 돼지 생갈비와 양념갈비 무한리필하는 곳이 있다 얘기했더니 동네를 헷갈리고 만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천호동에서부터 중랑구 쪽으로 코스를 잡았던 것이지요.
우리가 첫 손님입니다. 생갈비와 타이머를 가져오더니 가스불을 붙이고
5분 30초 지나면 숯에 불이 붙으니 그때 가스를 끄고 숯불에 고기를 구우랍니다.
삐삐빅 삐삐빅, 허기에 5분 30초 참으로 깁니다. 목살을 붙인 게 아니라 통갈비를 거칠게 포 떠서 두껍습니다.
진짜 갈비지요. 겉이 구워질 즈음 가위로 작게 잘라 속을 익히려니
자르면 육즙이 빠진다며 자주 돌려가며 충분히 구운 뒤 먹기 전에 자르랍니다.
국내산 생갈비라는데 어떤 분은 질기다며 참조하라는 데 '뽑기 운'인지 질기지 않고
떨어진 기름에 끄름이 올라와 약간 묻어도 맛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아, 좋습니다. 아침부터 해장술 이리해도 되나?
서비스로 준 갈비가 들어간 김치찌개와 돌솥밥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진짜 갈비를 손에 들고 뜯어본 지 얼마만인가?
대학 시절 제주항에서 드럼통 연탄불에 구운 갈빗대를 사각형으로 자른 신문지로 붙들고
골막까지 싹싹 벗겨 먹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얼마나 맛있게 먹었던지 아직까지도 소갈비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생갈비 파는 곳이 몇 곳 있지만 이렇게 무한리필 국내산 생갈비 1인당 1만 3천 원? 믿어지질 않습니다.
생갈비 4덩어리 먹으니 배가 꽉 차 캐러멜이나 초콜릿을 넣지 않고 불고기 양념을 해서 맛있게 보이는
양념갈비는 다음으로 미뤄야 하겠습니다. 또 아차산 걸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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