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먹기

먹기 위해 걷는 길 - 가락시장에서 등심먹기

fotomani 2020. 12. 22. 12:11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되다 보니 2.5단계가 시작된 게 1주일 전인지 10일 전인지 가물가물합니다. 

불필요한 외출, 모임, 외식, 여행을 삼가라 하지만, 숙제처럼 하던 아침 운동을 못하니 건강염려증 환자로

변해가는 것 같습니다. 새벽 5시에 집 앞 쓸고 인적 없는 하천 산책로를 걸어왔습니다.

주말을 맞아 느지막이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을 걷고 10시쯤 아점을 하려고 친구에 문자를 띄우니

1시에 만나잡니다. 얼리버드에게 1시라니? '내 다신 부르지 않는다'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은 지난 2016년 몇 번 다녀왔지요.

(애개 이딴 게 성이야?' blog.daum.net/fotomani/70534 )

이번에 가니 주택가 곳곳에 주차장 비슷하게 울타리를 쳐놓았습니다. 

 

몽촌토성은 1980년대 중반 발굴되었으나 풍납토성은 이미 주택지로 개발된 후 1997년에야

비로소 발굴이 시작되었으니. 윗 사진처럼 조금씩 서울시가 매입하여 주택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복원, 정비 전까지 울타리를 치고 파헤치지 못하도록 블록을 깔아 놓은 것이었습니다. 

 

그나마 88 올림픽으로 몽촌토성이 아닌 올림픽 공원으로나마 개발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요?

 

백제의 한성은 2개의 궁성 체제로 운영되었다 합니다.

북성인 풍납성이 정궁이며 백제의 도성으로, 남성인 몽촌토성은 남한산 끝자락 능선을 이용한 산성으로

별궁이며 방어용 요새 목적으로 축성되었다 합니다.

 

우리들이 기억하고 있는 백제는 웅진시대와 사비시대의 백제로

문화유산이 화려하다 하지만 한성백제와는 비교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림자 사람은 몽촌토성과 완벽하게 한몸이 됩니다.

 

하늘을 찌를 듯이 올라간 롯데타워에 비하면 이게 뭐야 할지 모르겠지만

풍납토성이 BC18-AD475년에 평지에 사람과 가축의 힘만으로 강돌, 점토, 사질 흙들을 다져가며

쌓아 올린 것이라 하면 당시로써는 대단한 토목공사였을 겁니다.

 

저 억새는 몇 천 년 전에도 저 모습이었을 것이라 생각하면 인간사의 변화는 무궁무진한 겁니다.

 

코로나로 기획하고 있던 전시도 현수막만 썰렁하니 매달려 있을 뿐 문은 굳게 닫혀 있습니다. 

 

친구와 만나기로 한 1시까지 아직 여유가 남았습니다. 식자재마트로 규모가 큰 다농마트로 가

생크림 등 몇 가지 삽니다.

 

등심 사러 가기 전에 지하 2층에 있는 부산물센터로 갑니다.

잘 손질 된 곱창과 양, 간, 지라 등이 보입니다.

 

부산물 시장엔 가게가 몇 개 없어 1층으로 올라가 꽃등심을 삽니다.

'둘이서 8백그람이면 돼?'

곁의 젊은이는 가게에 도착하자마자 '야, 토마호크 스테이크다!'라며 낼름 삽니다.

 

'어디야? 3층 <ㅇㄹㄷㅇ 한강>이라는 곳에 있을 테니 빨리 와!'

회 상차림은 3천 원, 고기 상차림은 6천 원이랍니다.

숯불을 못 피우는지 안 피우는 건지 가스버너에 종이 포일을 올리고 굽습니다.

 

등심과 살치살 사이 지방 등 지방은 깔끔하게 떼내고 저울에 달아 주었습니다.

 

8백 그람이야 간단히 먹겠지 하던 건 처음 한 장까지, 두장째 접어들며 포만감이 오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아구아구, 낮거리로 <이즈백> 3병.

질 좋은 등심을 값 눅게 원 없이 먹고 후회하지 않게 지하로 내려가 곱창 한 줄씩.

지하철이 종로로 접어들자 '야, 더근아 우리 딱 한잔씩만, 응?'

 

손질을 다 했다 하지만 미심쩍어 한번 삶아 씻어 팬에 넣고 사골 국물에 다진 양념을 넣고

야채를 넣어 푹 끓여 김치 만두 몇 개 집어넣습니다.

겉껍질을 벗기지 않아 질기기는 하지만 잡내 안 나고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구이용 곱이 많은 곱창으로 만들었으니 달지 않으면 안 되지요.

 

닥다리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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