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먹기

기분 좋은 날 융건릉, 황도칼국수

fotomani 2024. 2. 27. 07:54

 

 

정조는 재위 24년간 66회 현륭원(화성) 능행차를 할 정도로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유별나고도

애틋한 사랑과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평소 화성과 행궁은 가끔 가보았지만 용주사와 건릉이 사도세자의 원찰이고 정조대왕의 묘인 줄은

독산성을 가보며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2월 5일 가랑비가 내리는 날 융건릉(융릉-사도세자, 건릉-정조대왕의 묘)을 도착하여

그 앞 편의점에서 두유 하나 사마시며 건너편 매표소를 보니 사람이 없습니다.

개관시간이 언제냐 물으니, 그것도 모르냐는 듯 '월요일은 대한민국 모든 문화재가 휴일'이랍니다. 

대한민국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는 문화재 휴일도 모르다니, 나 간첩인 모양입니다. 

꿩 대신 닭이라고 용주사를 들렀습니다. 

정조의 효심이 깃든 절답게 <효나눔 무료 국수 공양>이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는 

규모가 큰 사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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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때나 들어와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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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8일 일요일 다시 융건릉을 찾았습니다.

매표소에는 지난 번엔 휴관으로, 오늘은  '산책로 폐쇄'라는 붉은 LED 글씨는

나의 까진 머리를 잔인하게 또 한 번 때려 주고야 맙니다.

어쩔 수 없이 가장 긴 코스인 뒷산을 오르는 산책로는 포기하고

왼쪽 소나무 숲길로 올라 건릉- 개활지- 융릉- 참나무 숲길로 코스를 잡았습니다.

아침 안개 깔린 송림은 엄숙하고도 신비한 모습으로 다가오고

그 밑을 산책하는 관람객은 한 폭의 그림이 되었습니다.

경기상고 본관 앞 반송  처럼 붉은 소나무 줄기는 팔을 허공에 휘저으며

액막이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널찍한 잔디밭에 위치한 건릉은 보는 이의 가슴이 활짝 트이도록 만듭니다.

홍살문이나 금천교를 진입하기 전까지는 속세 즉 산자의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자각으로부터 능침까지의 공간은 죽은 자의 공간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럼 그 사이 공간은 무엇일까요? 

산자와 죽은 자의 만남 혹은 교감의 공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한국의 정원은 인위적이 아닌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정원이었습니다.

산세를 이용해 봉분을 쌓고 주위를 숲으로 싸이게 하여 포근한 형태의 왕릉에 앉아 있으면

누가 나를 해할 일도 없고 나를 들어내도 부끄러움이 없는 온유의 장입니다.

 

 

건릉과 융릉 사이의 개활지가 무슨 용도였는지 모르겠으나 

이곳으로 넘어가는 숲은 참나뭇과로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정조는 능을 조성할 때 소나무뿐만 아니라 쉽게 자라는 참나무와 함께 심어 관리를 쉽게 했습니다.

또한 왕릉은 세조 때부터 인력이 많이 소모되는 석실 대신 회격벽으로 만들어

백성들의 노고를 줄였다 합니다.

 

 

융릉은 정자각에서 보면 왕릉의 축이 약간 비틀어졌습니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답답하게 생을 마감한 것을 고려하여

막히지 않은 활짝 트인 시야를 확보한 것입니다.

오늘날 왕릉은 우리에게 무엇일까요?

성균관에서 제사에 대한 의견을 취합했더니 반 이상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 했답니다. 

제사상에 고인이 좋아했던 음식 심지어 피자나 치킨이 올라가는 것도 용납하는 세상이니

저렇게 정자각에 편하게 올라 가족들과 즐겁고 편안한 시간을 갖는데 거슬림이 없습니다.

이제는 엄숙한 충효예를 생각지 않고 누구나 즐겁게 자연 속에 묻혀서

생활의 찌든 때를 털어버리는 요즘 말로 힐링의 공간이 되었다면 너무 나간 것일까요?

 

 

죽은 자는 하늘을 떠다닐 정도로 가벼워 에너지 보충할 필요가 없더라도 산자는 먹어야지요.

융건릉 앞에는 가족 관람자들을 위한 한정식집, 구이집, 카페 등이 있었으나 

'나 홀로'를 위한 음식이라곤 해장국과 칼국수 밖에 눈에 띄질 않네요.

<ㅎㄷ면옥>이라 해서 들어갔는데 메뉴에는 온리 칼국수와 국수전골, 보쌈밖에 없는 집이었습니다.

자리에 앉으니 순식간에 인덕션레인지에 덜커덕 냄비를 올려놓으며 반찬은 셀프라 합니다.

'야아~ 혼잔데 끓여 먹게 주다니~' , 이건 초상집 개다리소반 대우가 아니었습니다.

허겁지겁 보리밥과 김치, 무생채를 가져왔습니다.

너무 감격해서 참기름과 초고추장 올리는 것도 깜빡했네요.

 

 

워낙 보리밥을 좋아하니 참기름과 초고추장이 없어도

보리의 매끄러운 식감과 무생채의 조화가 좋습니다.

식지 않고 계속 덥혀 먹는 칼국수는 꿀꿀한 날씨를 잊게 할 만큼 만족스럽습니다.

배가 어느 정도 차니 셀프 코너에 막걸리 보온물통이 보입니다.

요즘 금주를 하는데도 '꽁짜'로 준다는 막걸리를 망설임 끝에

바닥이 살짝 가려질 정도로 덜어 왔습니다.

보온통 뚜껑을 열 때 보이던 보글보글 술익는 거품은 덜어온 컵에서도 마찬가지로 

점막을 싸하게 간지러 주며 목구멍으로 시원스레 넘어갑니다.

오늘 기분 좋은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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