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갤러리

스쿠터 타고 제주에서 혼자놀기 - 둘쨋날

fotomani 2009. 8. 10. 11:55

 

 

 

땀에 젖었던 빨래를 말리느라 켜놓은 에어컨에 한기를 느끼며 새벽에 깬다. 어제 밤 뉴스에 오늘 제주에는 장맛비가 내린다 했다. 은근히 오늘 일정이 걱정되기도 하고 또 역기를 들 생각하니(스쿠터 주차요령을 몰라 힘으로 번쩍 드는 것을 말함) 그게 더 큰일이다. 오늘은 김영갑 갤러리, 성산 일출봉과 우도, 아부오름을 들리려 하는데 비가 온다면 주행이나 제대로 할까 진퇴양난 형국이다.

 

 

 


제주도에는 가로등이 거의 없어 어둠 속에서 주행하지 말라는데 그래도 비가 오지 않을 때 조금이라도 더 가볼까 하고 어둠을 헤치고 모텔을 나선다. 거리에는 밤새 술을 마신 한 무리 젊은이들이 거리 한복판에서 시끄럽게 차를 잡으러 나와 있었지만 시골 국도에 접어드니 길은 한적하다. 30분쯤 달렸을까?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어스름한 버스정류장에 스쿠터를 대놓고 우선 배낭과 카메라를 비닐에 싸고 비옷을 쉽게 꺼낼 수 있게 사이드백에 챙겨 넣는데 왜 노숙자란 단어가 떠오르지? 여름인데도 비가 올 날씨여서 그런지 바람이 차다. 윈드자켓을 입는다.

 

 

 


김영갑 갤러리 앞에 가니 문이 굳게 닫혀있다. 정원이라도 구경할 수 있게 문이라도 개방하지. 그 흔한 제주도식 대문 빗장이 아니라 쇠바퀴가 달린 철제문이다. 부잣집 집마당을 까치발을 하고 구경하는 것처럼 들여다보고 되돌아 나온다. 성산 일출에 도착하니 이른 아침인데도 주차장은 사람들이 꽤 많다. 다시 돌아 나와 성산포항으로 간다. 하늘은 구름이 꽉 끼어 언제 비를 쏟아 불지 모를 그런 날씨이다. 우도로 가는 여객선터미널로 가니 9시에 배가 출발한단다. 망설이는 내 맘을 눈치챘는지 곁에서 신원불명의 아저씨가 ‘사람이 있으면 8시에도 배가 뜬다’며 부추기는데 내가 배 때문에 어디 한두번 고생해봤나? 비라도 오면 우도일주고 뭐고 없는 터라 아부오름이라도 제대로 보러 비자림 국도로 들어선다.

 

 

멀리 보이는 성산 일출봉

 

해는 떠오르지 않더라도 꽤 많은 사람들이 올라간다

 

성산 여객선터미널로 들어오는 우도발 여객선

오래 전에 맑은 날이지만 태풍이 올라온다는 예보가 있어 배만 타고 보길도 갔다가

땅끝까지 다시 나올 수 있느냐 확인에 확인까지 하고 들어 갔으나 중간에 주의보가 내려

꼼짝없이 보길도도 아닌 노화도에 갇혀 2박3일을 지낸 적이 있다.

그 다음부터는 여객선터미널에서 누가 뭐래도 내가 판단이 안서면 배타는 것을 포기한다. 

8시표 사놓고 9시 출발하는 것도 문제지만 들어가서 비가 좍좍 내리기라도 하면...

성산여객선 터미널

 

 

성산항 경매장

 

 

멀리 우도가 보인다. 


이상하게 동네사람들도 아부오름이 어디 있는지를 모른다. 분명 그 근방일 텐데도 비를 긋기 위해 들어 간 작은 축사가 있는 집주인도 어딘지 잘 모른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비를 긋는데 10여분이 지나도 비는 그칠 생각을 하지 않고 주인은 많이 올 비라며 은근히 겁을 준다. ‘이런 날은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소주나 한잔하면 끝내주는데...’ 일단 샵에 스쿠터를 반납하고 예보처럼 오후 내내 비가 내리면 제주시내에서 버스와 택시로 관광을 하리라 마음먹고 일회용 비옷을 단단히 걸치고 시동을 건다.

 

 

잘 갈아진 밭

 

저런 오름을 한번 올라봐야하는데 구름이 장난이 아니다

 

비자나무길

 


스쿠터를 일단 반납하고 동문시장을 한 바퀴 돌고 수산물을 전문으로 하는 작은 식당에 들어간다. 국산옥돔이냐 물으니 저 값에는 국산 옥돔을 내지 못한단다. 서울에서처럼 반으로 가른 반토막 구이를 만들어 백반으로 팔면 나 홀로 여행자들이 얼마나 좋아하겠는가? 비도 오는데 낮걸이 소주 본격적으로 한잔 할 셈으로 옥돔구이를 시킨다. 수입산이라도 오랜만에 먹어보는 옥돔은 아직도 온기가 가시지 않은 촉촉하고도 하얀 살점에 소금간이 잘 맞아 눅눅한 날씨와 어우러져 맛이 기가 막히다. 그런데 ‘이게 뭐야?’ 구름이 점점 걷히기 시작하며 빗줄기가 가늘어지기 시작한다.

 

 

제주 동문시장

 

옥돔구이

 


거리구경을 하며 제주목 관아로 걸어간다. 낮술 한잔과 비옷으로 습한 날씨에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다. 안내서에 실려 있는 탐라순력도(圖)중 제주전최(濟州殿最)라는 그림을 보면 관덕정거리에는 관아뿐만 아니라 많은 관청건물이 들어 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복원한지 얼마 되지 않아 건물들은 깨끗하고 특히 집무를 보던 건물들은 외벽을 돌로 둘러놓아 비바람을 막기 위한 제주만의 양식으로 짐작된다. 목사가 집무를 보던 연희각 마당에는 곤장을 치기 위한 형틀과 주리를 틀기 위한 의자를 갖다놓아 분위기가 살벌해지는데 관아에는 우련당과 귤림당이라는 연회하는 장소가 있어 기생 인형을 갖다 놓았다. 한 울타리 안에 ‘지화자’를 외치는 기생의 간드러진 웃음소리와 볼기짝 치는 비명 소리가 섞여 들려오는 듯하니 자기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의 달콤함을 엿보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해진다.

 

 

제주 동문로터리

 

제주목 관아.

 

 

내친 김에 국립제주박물관으로 가려고 택시를 타니 불과 몇 블록 떨어지지 않은 거리를 빙돌아 세워주는데 월요일이라 휴관이다. 투덜거려 보려는데 택시는 휭하니 떠나버리고 만다. 다행히 쪽문이 열려있어 정원을 산책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국립 제주박물관

 

 


무슨 일기예보가 그 모양인가? 오후 내내 다 지난 장맛비가 내린다더니 비는 점점 그치고 스쿠터 대여료가 아까워지기 시작한다. 다시 샵으로 가 스쿠터를 돌려받고 주차요령을 다시 익힌다. 받침대에 몸무게을 싣고 들어 올리니 그렇게 쉽게 세워놓을 수 있는 것을. 이제 3시이니 아침에 포기한 아부오름에 오르려고 제주시내를 벗어난다. 아니 버둥거려 보지만 동서남북이 가늠되지 않는 외지인에게는 좁은 제주시내라도 미로와 같다. 40분이상을 헤매고 나서야 번영로로 접어드는데 갑자기 ‘툭’ 소리가 나더니 스쿠터는 전진을 못하고 서버리고 마는 불상사가 일어난다. 벨트가 끊어진 것이다. 샵에다 전화거니 지금 사람이 없어 조금 기다리란다. 마침 앞에는 제주생태도시연구소로 쓰여지는 폐교가 하나 있어 심심풀이 삼아 구경을 한다. 직원들 교육장소로도 쓰이는지 잔디를 깐 마당 귀퉁이에는 야외식탁이 여럿 놓여있고 식수대와 중앙에는 교단이 있어 초등학교때 이름만 다르고 ‘이하동문(以下同文)’ 상장을 받던 기억이 새롭다.

 

 

교체해 줄 스쿠터를 기다리며

 


근 한 시간정도 기다리자 1톤 트럭에 같은 종류 스쿠터를 하나 싣고 와 교체해 준다. 이제는 모두 포기다 포기. 해안도로를 따라 구경이나 하다 탑동의 한 모텔로 들어선다. ‘한분이냐’고 묻고 혼자 비죽 웃는 카운터 영감님을 무시하고 몸을 씻고 제주항 서부두로 나간다.

 

 

 


서부두에는 횟집, 수산센터가 몰려있다. 상자가 좁다고 상자 속에 들어있는 길이만큼의 머리와 꼬리를 상자 밖으로 내밀고 있는 두툼한 갈치, 반으로 갈라 건조시키는 고등어, 전복, 이가 갑자기 아파지려는 홍삼, 해삼... 그 유명한 산지물식당, 물항식당도 여기에 있다. 아점을 먹은지라 배도 출출하고 메뉴판을 보니 물항식당에서 갈치백반에 고등어회 한 접시 시켜 남으면 싸가지고 들어가 밤중에 한잔하면 좋을 것 같은데 사람이 너무 많다. 산지물로 가니 밀납으로 만든 음식샘플에는 고등어회가 양이 너무 많아 보여 엄두를 못내고 해산물뚝배기 하나와 감귤막걸리 하나 시킨다. 페트병에 나오는 감귤막걸리. 담근 술인 줄 알고 시켰는데 아차한다. 이윽고 나오는 펄펄 끓는 해물뚝배기에는 커다란 새우가 두 마리 들어있어 끄집어내니 딱새우라는 것으로 새우맛과는 조금 다른데 여기서 우러나는 국물이 다른 해산물 맛을 덮어버린다.


닥.다.리.즈.포.토.갤.러.리 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