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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령과 두 마누라

fotomani 2010. 1. 29. 09:31

 

 

 

"부처님이나 탑 같은 것은 못봤지만유, 저 인(印)바위에 가믄 환하게 웃는 산신령님이

한 분 새겨져 있는디유, 양 옆에 본마누라와 작은 마누라도 있시유, 근데 작은 마누라가

의자에 다리 꼬고 앉아서 손가락으로 볼따구를 찌르고 슬슬 웃으면서 용용 죽겠지 하고

놀리니까 본 마누라가 장돌을 쥐고 집어 던질 채비를 하고 있시유."

이 글의 출처가 어디인지 잘 모르겠지만, 1959년 보원사 터를 발굴하기 위해 조사단이

들어 갔을 때, 탐문조사를 하는 단원에게 마을사람이 한 말인 것 같은데, 이처럼 적나라

하고도 정확하게 서산 마애삼존불을 묘사한 말은 더 이상 없을 것 같다.

 

서산 마애삼존불하면 워낙 많이 알려져 있어, 시시각각 변하는 미소라던가, ‘백제의

미소’ 등의 표현이 수긍이 안가는 것도 아니지만, <서산 마애삼존불=백제의 미소>라는

불변의 등식이 관람자 상상의 자유를 모조리 빼앗아 버리고

이미 도출된 정답을 강제로 주입시키는 것 같아 조금은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한다.

 

그러니 이런 견해와 다소 다른, 전병철씨와 같은 견해가 우리 피부에 와닿는 지도 모르겠다.

“삼국시대에는 중국과의 교류가 중요하였는데, 태안-서산-당진-예산-부여.공주로 이르는

육로는 매우 중요한 교통로였다. 이 길을 따라 불교가 들어오고, 그 길목에 불상들이

조성될 수밖에 없었는데, 바로 서산 마애삼존불이나 태안 마애삼존불상이 이에 해당된다.

그리고 불교가 들어오는 초기이다 보니 사람들에게 친근감 있는 불상이 만들어졌고,

특히 교통로였던 이곳을 지나는 이들에게 자비로움과 편안함을 주기 위해서는 부담 없이

생긴 얼굴에 웃고 있는 모습의 불상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 해석하든 우리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데,

마애삼존불을 평생 관리하였던 성원 할아버지(스님)의 말은 새겨들을 만 하다.

“조각한 분이 예술적 가치를 발휘해서 만들었다고 하지만 불교에서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부처님 세계에 가서 부처님을 보는 것처럼. 불안(佛眼)으로 부처님을 조상한 것입니다.

그분이 본 부처상이 마음에 먼저 그려지니까 바위에 새긴 거예요. 조각한 것이 아니라

묘를 파면 백골이 드러나듯 바위에 드러낸 것 뿐이쥬.”(삶이 보이는 창 . 하용희)

 

서산 마애삼존불은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가야산에 있다.

1959년이면 종전된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이어서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때인데

교통도 불편한 시절에 이 산골에 보원사지를 발굴하러 들어 왔다는 사실과

그분들의 직업의식과 정열에 존경해 마지 않을 수 없다.

전쟁의 상흔으로 벌거벗은 산과 얼마되지 않는 논밭, 잡초 밭 속에서 지게와

삽, 순전히 사람의 힘만으로 고찰의 흔적을 찾는 보잘 것 없는 조사단.

긴가 민가 농부의 말만 듣고 쫓아 올라 간 계곡 저 높은 바위 위에 새겨진

미소짓는 얼굴의 마애삼존불을 처음 발견했을 당시 조사단의 감격은 마치 성불한

것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마애불이 암각된 인(印)바위는 용현계곡물을 가로 지르는 다리를 건너 

돌계단을 따라 올라 가면, 한옥으로 만들어진 관리사무소가 나오고, 여기에 출입을

통제할 수 있는 불이문이 얕은 벼랑길 초입에 서있다. 문을 지나 벼랑길을 오른쪽으로

돌면 3단의 석축과 돌계단 그리고 보호각(법당)이 보인다.

마애불은 V자로 골이 파인 암벽 벽면에 가려져 있어 보호각이 없다면

그냥 지나칠 위치에 조성되어 있다. 돌계단을 올라가니 10여평의

마당이 있고, 지붕에 씌워진 마애삼존불상은 아직도 푸르스름한 아침기운이

사라지지 않은 가운데 붉게 느껴지는 조명 아래 자태를 나타낸다.

 

옛날에는 미인의 기준을 달덩이 같은 얼굴이라고 했던가?

전체적으로 후덕한 느낌의 둥근 얼굴이지만, 흔히 보는 불상의 얼굴과는 달리 매우

사실적이다. 우선 눈, 코, 입의 위치와 비율이 거의 실존하는 사람의 얼굴과 비슷하다.

눈의 수직 위치가 얼굴 길이의 절반이라든가 코의 폭과 입술의 폭, 인중의 길이가

사실적이다. 더욱이 이러한 비율과 폭이 피부 아래 근육과 지방의 두께와 량,

또 그 밑에 위치하고 있는 두개골 형태를 짐작할 만큼 입체적으로 조각 돼있어,

석공이 인체 데생할 때 배우는 해부학을 공부한 것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이다.

불상에서 흔히 보는 늘어진 귀라던가 옆으로 길고 가느다랗게 뜬 눈이 있는

평면적이고도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한 비현실적인 얼굴이 아니라, 때묻지 않고,

평화롭고, 순수한 아가의 얼굴모습을 갖고 있다.

여기에다 손 모양(手印)으로 세상의 모든 두려움을 떨쳐주고, 모든 소원을 다 들어주겠다고

하니 어찌 꺼벅 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여기에서 다시 성원 할아버지의 글을 음미해보자.

마애삼불 찾아오신 손님들이여

잠시라도 망상번뇌 여의어버린

고요한 마음으로 즐기십시오

천국 아닌 지상의 극락입니다 

 

 

 

조성된 것이 6-7세기로 추정되는데, 윗쫏은 입구 게시판에 있는사진, 아랫쪽은

지금 사진. 얼굴에 붉은 색의 얼룩이 있다. 천년이 넘는 세월에도 변화가 없었는데

불과 반백년 사이에 얼룩이 생겼다.

 

보호각을 철거하느냐 마느냐로 뜨겁다. 그런데 주장하는 바가 거꾸로 아닌가 싶다.

<충남도는 “보호각이 자연채광을 차단하는 데다 관리인이 손전등을 비추며

관람시키고 있어 불상에 대한 신비감이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일부 문화재전문가들은 “보호각이 철거될 경우 불상훼손과 외부 노출에 의한 풍화

또는 균열이 가속화 될 우려가 있다”고 반대한다.

http://www.buddhapia.co.kr/mem/hyundae/auto/newspaper/314/d-1.htm>

 

같이 갔던 친구는 이런 곳에 이만큼 균열이 가지 않은 바위를 찾아낸다는 것이

쉽지 않고 벽을 막아 놓는 것은 문제라고 단.언.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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