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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라이 떠오르는 그맛

fotomani 2010. 2. 4. 10:22

 

***위 내용 중 동치미는 짠지로 정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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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한 번씩 모이는 동창모임에서 장소선정은 항상 내 몫이다. 몇 되지도 않는 숫자지만 최소한도 ‘맛없다’라는 소리는 안 들어야 하기에 신경이 쓰이는데 그렇다고 매번 미리 답사해보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음식 맛이 괜찮다는 집에서 매번 모임을 갖기도 그렇고 하여 주로 인터넷의 도움을 받는데 사람 얼굴이 제각각이듯 평도 천차만별이어서 호평이 있는가하면 혹평도 있다.


을지로에 있는 안성집을 택할 때도 그랬다. 맛이 싱겁다느니 왜 보쌈김치에 돈을 받느니...

음식점을 찾아갈 때 볼트나 선반기계로 가득 찬 골목길을 지나게 되니 불안한 느낌은 더 했는데 막상 문을 열고 들어가니 생각했던 것보다는 비교적 깨끗했다. 돼지갈비를 시키니 일하는 아줌마가 대뜸 ‘세 사람이니까 1000그람?’이라고 연변 사투리로 묻는다. 2인분이나 3인분도 아니고 1000그람이라니?


밑반찬을 둘러보니 동치미에는 살얼음이 떠있다. 약간 짜게 보이는 동치미를 한입 베어무니 생각보다 짜지 않다. 보통 음식점에서 주는, 동치미 같지도 않은 달짝지근한 나박김치가 아니라 방금 독에서 꺼내 간을 맞춘 것 같다. 일단 스타트가 괜찮다. 데친 양배추를 된장에 찍어 먹으니 된장 맛도 사서 쓰는 된장 맛이 아니다.


점점 흥미로워진다. 따로 돈을 받는 보쌈김치에는 밤이나 해산물이 들어가 있지는 않지만 바닥에는 넉넉히 빨간 김치 국물을 깔고 먹기 좋게 썰어놓은 보쌈이 우선 시각적으로 입맛을 돋군다. 무채, 잣, 배가 들어간 속은 알맞게 숙성되어 있고 약간 매운 맛은 기름기 있는 음식과 잘 어울릴 것 같다.


이윽고 나오는 초벌된 돼지갈비. 돼지갈비는 얇게 저며 짙은 양념이 밴 것이 아니라 투박하게 옛날 먹었던 통갈비를 연상시킨다. 대학 다닐 때 제주항에는 웬 돼지갈비집이 그리도 많았던지? 연탄불 드럼통을 끼고 앉아 노릇노릇 익혀, 냅킨대신 잘라놓은 싸구려 뻘건 포장지로 잡아 이빨로 골막까지 벗겨먹던 돼지갈비의 추억이 떠오른다. 석쇠 위에는 간장소스에 마늘을 잘라 넣었는데 잘 구워진 고기로 듬뿍 찍어 먹으니 소스는 그냥 간장이 아니고 불고기 육수다. 이러니 돼지갈비 양념이나 소스 맛이 싱겁다고 떠들지. 그러나 요새 갈비양념은 너무 달고 진해서 아이들이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하니 고기를 먹는 게 아니라 양념 묻힌 건더기를 먹는 느낌이다. 오히려 이 정도 양념과 불고기 육수가 노릇하게 익혀진 고기의 순수한 맛을 살아나는 것 같아 점수를 주고 싶다.


군시절 대전 한밭식당 골목으로 들어가면 육개장만 전문으로 하는 집이 있었는데, 그 집 육개장은 요새 흔히 넣는 고사리나 버섯은 넣지 않고 오로지 대파와 사태만 써서 문 앞에는 대파더미가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아줌마들이 둘러앉아 손질하는 것만 봐도 식욕이 동했다. 그때 먹었던 넉넉한 편육과 맵고 칼칼한 맛을 생각하며 육개장을 하나 시킨다. 여기도 건더기는 대파와 사태고기만 넣고 끓이는데 매운 맛은 덜하고 대파 때문에 약간 달싸한 국물에 약간 꺼륵한 느낌이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맛을 유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냉칼국수를 시키니 냉면 육수에 칼국수를 넣고 냉면고명을 그대로 얹었다. 보통 이렇게 먹으면 국수에서 밀가루 냄새가 조금은 나게 마련인데 그런 걸 느낄 수 없고 기름기 있는 음식을 먹던 입이 개운해지고 쫄깃하게 감긴다. 그러고도 뭔가 모자란듯 싶으면 아까 고기 찍어먹던 불고기육수나 동치미에 밥을 비벼먹던가 국수사리를 넣어 먹어 보시라. 아마 이제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맛이 아스라이 떠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