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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그렇게 만들려면 얼마 들어요?”

fotomani 2010. 5. 22. 19:22

 

 

집안일이라는 것이 해도 해도 끝이 없다라는 말은 마누라로부터 귀가 닳도록 들어왔건만 비가 들이쳐 페인트가 일어난 현관문을 사포질하고 칠하는 것으로부터 남이 시킨 것도 아닌 고달픈 여정이 시작되었다.

 

 

4월 초순 집의 모습. 현관문은 비바람에 칠이 일어나고 장식용 H빔은 녹이 날 지경이다. 


현관문만 칠하면 끝이겠거니 했던 환상이 깨진 것은 문짝 칠을 끝내고 나서였다. 일단 하나가 완료되고 나니 나머지 눈에 띄는 곳이 왜 그렇게 많은지 집안의 문짝들을 전부 다 칠을 하고야 말았다. 지겨운 칠...


그렇게 좀 잊을 만하니 출발점이었던 현관에 비가 들이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볼까 하는, 취미목공이 결코 넘어서는 안 될 길을 곁눈질하기 시작하고야 말았다.

 

몇날 칠을 하고 나니 아주 쬐끔 깔끔해졌다.

빗물이 들이치면 다음에 또 칠을 해야겠지? 

 

스케치업 도면. 폭이 넓어 가로가 15자가 넘는다.

근방에는 12자짜리밖에 없어 멀리서 주문하자니 배보다 배꼽이 크다.


우선 스케치업으로 도면을 그리고 나니 가로 4500미리 세로 1700미리의 소일 삼아 저지르기에는 좀 벅찬 ‘대물’이었다. 그러나 이런 일에는 항상 옆에서 꼬드기는 역할을 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인데 요번에는 같이 대목(大木) 배웠던 동기로 공구 몇 가지 빌려 줄테니 한번 해보라 부추긴다.


우선 목재를 구입하고 2X6, 12피트를 옮기느라 들어보니 구조물을 만든다면 이거 장난이 아닐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대목이 소목과 다른 점은 소목이 작품의 질과 상관없이 어떻게라도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작업이라면 대목은 일단 부자재가 크기 때문에 같이 힘써줘야 할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데 주변의 가용인력은 젊었을 때 힘 좀 쓰셨다는 난청의 노인네 한분이니 절로 한숨이 나온다.

 

첫날은 치수대로 재단하고 짧은 부재를 연결하는 작업만 하기로 했다.

자작해서 만든 원형톱가이드가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서까래


첫날은 재단과 짧은 자재를 길게 잇는 작업을 먼저 하기로 하였다. 근방에 15피트 넘는 방부목을 구할 수 없어 그것 몇 개 때문에 원거리에서 주문하자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장선으로 쓰이는 목재는 어쩔 수 없이 연결철물로 잇고 서까래 등을 절단한다. 각도절단기나 테이블쏘가 없으니 각도가 정확히 맞질 않고 연결철물로 긴 부재를 연결하니 직선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렇게 장선과 동자주를 맞추어 놓고 나란히 세워놓으니 들쭉날쭉이다. ‘어이할꼬?’


도면상에서 작업을 해볼 때와 현장작업은 차이가 있게 마련이지만 한동안 공구를 잡아보지 않으니 특히 대목과 같은 집을 짓는 작업에서 나타나는 뒤틀림 현상과 오차를 간과하고 말았다. 레고처럼 부자재들이 곧바르고 각이 딱딱 맞지도 않을뿐더러 실력이 없으면 그런 오차들은 점점 더 크게 나타나는 법이다.


한옥의 대들보를 보면 제멋대로 생긴 것을 보게 된다. 그런데도 그 위에 지붕을 올릴 수 있는 것은 양끝부분(보머리)이 같은 높이에서 기둥 위에 올라앉아 있기 때문인데, 이 대들보에 해당하는 장선을 도리에 얹혀지는 양끝부분만 걸치고 동자주를 맞추어 보니 대략 10미리의 오차가 생긴다. 다시 먹줄을 긋고 서까래를 얹혀가며 조정하고 첫날 일을 마친다. 대목실습을 할 때는 젊은 분들이 있어 무거운 부재를 옮기고 하는 힘든 일들은 살짝 빠지고 옆에서 주둥이만 까고 있었으면 됐는데...

 

아마 짧은 부재를 연결할 때 직선이 안되었던 모양이다.

양끝 걸릴 부분만 자투리로 괴어놓고 가운데 동자주(올라온 부분)이 얼마나 오차가 났는지 확인해본다. 

실제로 서까래를 대어보고

트러스 5개를 완성시키려고 보니 대못도 들어가기 힘들어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산에 잘 가지 않던 50대가 등산을 한다면 소시적 생각만하고 폼 잡아서는 안된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데도 간혹 가다 골절상을 당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평형감각이 퇴화되어 일어나는 현상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꼬맹이들은 밑바닥이 편편한 테니스화를 신고도 펄펄 날라 다니는데 ‘멀쩡한’ 사람은 확인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신속히 머리 쪽으로 전달돼 와야 할 땅바닥 경사도나 높낮이 정보가 오래 된 플러그 전선줄처럼 저항이 생겨 오류가 발생한다. 그러니 같은 높인 줄 알고 한눈팔고 발을 내디뎠다가 2-3센티 정도의 오차만 생겨도 걸려 넘어지거나 덜컹 주저앉게 된다. 


첫날 일을 마치고 일주일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은 생각도 바로 그것과 연관되는 일이었다. 조립을 해서 올리자니 너무 무거워 들 수가 없겠고, 장선(대들보)을 건 뒤에 합판 깔아놓고 작업을 하자니 높은 곳에서 덜덜 떨려 현기증이 날 것 같다. ‘야, 조립은 다 해놓을 테니까 휴일날 잠시 와서 좀 들어줄래?’ SOS는 ‘연휴라서 그날만은’, ‘제사가 있어서...’라는 말로 허공에 뜨고 만다. 야속한 놈들...

 

도리를 안쪽에 걸쳐놓고 완성된 트러스를 하나씩 조립해가며 밖으로 밀어낸다.

 

3개째 조립한 모습. 이때쯤에는 퇴약볕에 지치기 시작한다. 


궁하면 통한다든가? 완성된 트러스와 도리에 미리 연결철물들을 부착시켜 놓고 하나씩 조립해가며 바깥쪽으로 밀어내기로 한다. 도리를 걸쳐놓고 트러스를 올려놓는다. 할아버지는 쓰러지지 않게 이 작업만 도와주고 나머지는 <쇼생크 탈출>의 <모건 프리먼>처럼 그늘진 옥상 벽에 기대앉아 ‘어 그렇게 하니까 좋구먼’만 연발한다.

 

뼈대가 완성된 모습.

이 때까지는 옥상에서 작업하며 밖으로 밀어내면 됐는데

지붕합판을 올리려면 올라가야 한다. 후덜덜...

 

위에서 보면 별거 아닌데...


하나 올리고 바깥쪽으로 조금씩 밀고 하다 보니 트러스 5개 모두 다 올려진 채로 할아버지 말처럼 뼈대가 그럴 듯하게 조립 되었다. 이제는 혐오하던 지붕합판 올리기. 합판을 올리고 제1포복으로 납작 엎드려 망치질을 한다. 아래 내려다 볼 생각은 엄두도 못내고. 합판을 다 올리고 테두리인 플래싱을 두를 때쯤 되니 이제는 가끔 경치도 구경하면서 앉아서도 널널하게 망치질이 된다. ‘먹구 살 길은 다 있는 벱이여’

 

합판을 올리는 중


날씨가 꾸물거려 방수시트까지 덮고 오늘 일을 마감한다. 자외선에 신경 써봐야 땀을 많이 흘리니 크림을 아무리 발라도 소용이 없었겠지만 올해 할 일광욕을 오늘 하루에 다 해서 노출된 부위는 새빨갛다. 안 쓰던 근육들은 욱씬거리고 온몸에 열이나 잠이 쉽게 들 것 같지 않다. 누가 허리에 올라와서 자근자근 밟아 줬으면...

 

테두리 플래싱을 대고 방수시트를 올린다. 오늘작업 여기까지!

이젠 지붕에 앉아서도 내려다 보며 작업이 된다.


오늘 일은 아스팔트 슁글 올리기. 몸은 욱씬거리지만 마무리 작업이니 마음은 상쾌하다. 自作을 하면 애착이 가서 별 것 아닌 걸 만들어 놓고도 이리보고 저리보고 한동안 속으로 ‘이런 걸 내가 다 만들었어’하고 감탄하며 뜯어보게 마련인데 전면 트러스에 모양으로 버팀대를 만들어 붙일 걸 몸이 곤하다는 핑계로 안한 게 후회된다. ‘그래서 초보지’

 

"할아버지, 나 사진 한장 찍어줘요."

 

그래도 못 미더워 인증샷 한컷

 

그거 참 이걸 내가 만들었단 말이야?

 

괜찮아진 현관 포치


“아저씨, 그렇게 만들려면 얼마 들어요?”   

누가 지나가며 물어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