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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보신탕이야?' - 을지로6가 평창사철탕

fotomani 2010. 6. 8. 17:51

“다음 저녁 때 한번 올께요.”

그 사철탕집과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몇 달 전 광희동(을지로 6가 근처)에 있는 러시아 음식점에서 2차로 맥주를 한잔씩 걸치고  나오는데 어디선가 짙은 사골국물 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근원지가 어디인가 보니 바로 옆집에 골목에 내건 2개의 커다란 무쇠 솥에서 흘러나오는 냄새였는데 의례 설렁탕집이겠거니 하고 간판을 보니 사철탕 집이었다. 궁금하여 식당 안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얼굴 모양이 전혀 업종선택을 잘못한 듯한 주인아줌마에게 탕과 전골에 사골국물을 쓰느냐 물으니 그렇다 한다. 그렇지 않아도 사골국물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편인데 탕국물로 사골국물을 쓴다니  은근히 회가 동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날은 다 끓여놓았는지 김이 펄펄 나진 않았는데 김이 나기 시작하면 좁은 골목이 사골국물 냄새로 진동한다 


광희동 골목은 러시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 점포마다 러시아어를 같이 써 붙여 놓은 집들도 많고 아예 러시아 사람이 운영하는 음식점들도 좀 있다.  이 보신탕집이 있는 골목도 러시아 음식으로는 꽤 유명한 사마르칸트라는 음식점이 바로 곁에 붙어 있는데도 건물이 좀 들어가서인지 노란 바탕에 빨간 글씨로 <평창사철탕>이라 쓰인 현수막이 없으면 찾기 힘든 곳이다.

 

양쪽에 러시아 음식점이 있어 왜 이런 곳에 사철탕집이 있을까 의아스러운 만큼

주인아줌마에게서 풍기는 인상도 사철탕집 주인아줌마 같지 않다.


이미 여름이 시작된 듯한 날씨는 음식점에 들어서자마자 시원한 맥주 한잔을 청하게 만든다. 맥주하고 유리잔만 달랑 들고 오길래  ‘뭐 씹을 거, 오이 같은 거 없어요?’ 하니 잠시 후 옆집에서 꿔 온 오이를 썰어 내오는 설익은 장사솜씨에 웃음이 난다. 벽에 빼곡이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보신탕의 유래와 효능 등이 써있는데 술 먹으러 까지 와서 공부하기는 싫고 얼핏 커닝을 해보니, 개장국이 보신탕으로 불리며 음지에서 파는 음식처럼 되어버린 게 야속한 듯, 원래 개장국이란 제 이름이 있어도 제 이름으로 당당히 불리지 못하고 보신탕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된 유래가 ‘미국문화에 빠진’ 이승만 박사부터였다는 다소 한이 맺힌 해설도 곁들여 있다.

 

개고기의 유래에 대해 적힌 현수막이 방안에 걸려 있는데 윗쪽으로 이만큼 설명이 더 있다.

 

 


보신탕은 애완견을 가족 같이 키우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비록 종류가 다르다 하더라도 여러 사람들 앞에서 ‘좋아한다’라고 말하기가 좀 껄끄러운 쪽으로 흐르는 게 세태이기는 하지만, 호불호는 논외로 하고 조선조에는 성균관 유생들에게 1,6일 3,8일에는 별미를 내놓았다 하는데 초복에는 개고기를 주었고, 중복에는 참외 2개, 말복에는 수박 1통을 주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보신탕은 우리 생활 속에 뿌리가 깊어서 좀처럼 뗄래야 뗄 수 없는 상관관계가 있는 듯하다. 

 

 

사격을 잘하려면 총알장전부터 잘 해야지요?

겨자 듬뿍, 식초 듬뿍, 들깨 듬뿍 '아줌마! 여기 생강 좀 더 줘요!'


쫓아다니며 먹지는 않더라도 여름에 한두번 먹을 기회가 생기면, 특별히 어느 집이 맛이 있어 찾아간다기보다 풍속화에 나타나는 세시기나 시골에서 끓여먹던 육개장, 시골 보신탕집 대청마루에 앉아 먹던 무침, 군 시절 ‘난닝구’만 걸치고 먹던 추억이 연상되는 그런 곳을 찾는 편이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비싸서 그런 것보다는 별로 비싸지 않고 깨끗한 집으로 가게 되지만 어디 그런 집을 쉽게 찾을 수 있는가?

 

수육은 더워도 불이 있어야 제맛이지


어찌됐건 우선 수육을 시켜본다. ‘날이 더운데 도마 위에 올려 드릴까’하는 권유를 ‘에이, 선풍기 엎어 놓고 땀흘려가며 먹어야 제 맛이지’하며 만류한다. 찜냄비 위에는 야채가 깔리고 4줄로 가지런히 고기를 올려놓았다. 고기는 껍질이 붙은 부위를 삼겹살 자르듯이 잘라 놓았는데 기름기가 적당하여 너무 퍽퍽하지도 않고 먹기 좋다. 곁들여 나온 뚝배기 국물을 먹어 본 친구들은 ‘야, 국물 좋다.’며 국물을 퍼 나른다. 그제서야 전골시킬 생각이 난 것은 부재자투표를 놓치고 이른 아침부터 투표 때문에 쫓아다니느라 끼니를 라면 하나로 때운 판이라  허기진 뱃속에 기름기가 돌 때쯤 해서야 아차하며 사골국물로 만든 전골 생각이 난 것도 별로 탓할 일은 아니었다.

 

 

 

사골국물이 가득 들어간 전골


부추와 대파가 넉넉하게 들어간 전골은 야채 속에 양념된장을 넣어 국물이 끓으면서 하얀 국물이 누렇게 변하며 펄펄 끓기 시작한다. 역시 사골국물은 이렇게 걸쭉하게 끓여먹는 모든 음식의 기재로 궁합이 잘 맞는 것 같다. 겨자가 좀 더 매콤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긴 했지만 건져 올린 고기 한 점에 잘 익은 부추와 대파를 얹고 들깨를 듬뿍 넣어 버무린 양념장에 푹 찍어 먹는 맛은 사골국물 여운과 함께 색다른 맛이 난다.

 

끓게 되면 이렇게 변한다.

 

 


곁에 있는 러시아 음식점에서 보드카로 2차를 하기로 했지만 조금만이라도 곡기를 꼭 채워야만 하는 ‘나쁜’ 습성 때문에 2인분만 볶아 먹는다. 보통 이렇게 친구들과 만나면 소화 잘 되도록 흥건하게 꿀꿀이죽을 해먹는데 술에 취해 기분에 취해 잘 받아주는 주인아줌마의 말에 취해 두말 않고 그냥 볶아 누룽지까지 딸딸 긁어 먹고 나온다.

 

이집에선 밥은 볶는 것보다 국물이 흥건하게 죽처럼 잡숫는 게 사골국물 맛을 더 느낄 수 있습니다.

 

깨끗히 긁어 먹고... 2차로!

 

우리은행 광희빌딩 건너편 골목 2272-9540

보신탕은 항상 논쟁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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