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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을 보고 야하다니? 괘씸한 노옴~

fotomani 2010. 12. 1. 14:56

파주 보광사에는 망태버섯과 오래 된 목어를 보기 위해 몇번 가보았지만

용미리 마애석불은 바로 근처에 있으면서도 들러볼 기회가 없었는데

파주 장단콩축제를 보고 집으로 돌아 오는 길에 용미리로 넘어오게 되어

잠시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팔만대장경도 모르면 빨래판이다>라는 다소

쇼킹한 제목의 역사평론집을 낸 전병철이라는 사람은

불교가 전래되는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불상들은

불교의 정착을 위해서라도

대부분 친근감 있는 부담없는 얼굴에 웃는 모습이 많고

통일신라말부터 고려시대에는

호족의 세력근거지인 지방색이 반영되어

얼굴모양이 제멋대로인 경우가 많다라는

재미있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서산 마애삼존불>

 

대표적인 것으로 전자는 서산 마애삼존불과 경주 배리 삼존불상 등을 들 수 있고

후자의 경우로 파주 용미리 마애불, 관촉사 보살입상 등을 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통일신라의 불상은 어떻게 평했을까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

필자의 입을 빌어 바로 인용을 해보도록 하지요.

 

"통일신라의 불상을 보면 '가히 예술적이다'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있고 아름다워 보인다.....

더불어 신라 지배층의 향락적이고 사치스런

생활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제는 불교가 정착된 만큼 자리를 잡았으므로

굳이 푼수처럼 웃어가면서까지 친근감을 보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통일신라시대 불상을 보면 옷모양이 화려하고 심지어

야한 모습으로 표현된 불상이 많다."

 

경주 탑골 석불 - 위 설명을 들어보니 그럴싸 합니다.

 

불경스럽게 불상을 그딴  식으로 표현하다니 깜짝 놀랄 지경이지요?

 

<백제의 미소>라고까지 칭송하는 미소를 푼수같은 웃음이라고 했다고

발끈하실 일이 아니라

그런 결론으로 이르게 된 동기가 초기에 불교정착을 위해서였다라면

한편으론 수긍 못할 일도 아닙니다.

 

결국 필자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경박스런 표현으로

흥미나 끌자는 얘기가 아니고

좀 더 다양하고 새로운 각도에서 문화재를 접함으로

역사가 발전하고 변하는 것이라는 점과

새로운 시각을 포용함으로 좀 더 인간적인 애정과 관심을 가짐으로

문화재가 흘러간 과거의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바로 나의 모습임을 일깨워 주는데 있을 것 입니다.

 

자, 그럼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석불을 볼까요?

78번 도로를 지나가다 가끔 숲 위로 볼 수 있는 불상입니다.

 

목 아래부분이 원래 바위이고 머리부분을 따로 조각해 올려놓았습니다.

우측 석불의 손모양을 보면 바위가 원래 저렇게 생기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인위적으로 조각을 했다기 보다 원래 형태가 그런 모양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자연스럽습니다.

 

운주사 와불을 보고 부부와불이라고 하는데

이 용미리 석불을 보고도 남상이니 여상이니 하는 것을 보면

민속신앙이 녹아 들어가 있는 것 같아 흥미롭습니다. 

 

왠지 모르게 투박하고 무사 얼굴 같은 모습입니다.

수학여행때 지겹게 봐온 관촉사 은진미륵이지요.

얼굴 모양이 용미리 석불과 형제지간 같지 않습니까?

 

이것도 고려시대 미륵불로 안성 기솔리 석불입니다.

분위기가 매우 비슷하지만 용미리 석불보다는 좀 더 유연해보입니다.

 

 

 뒤로 돌아가보면 이렇게 머릿부분을 커다란 바위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불상을 조성한 것은 서천 한산면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데

잘 생각이 나질 않는군요.

 용암사 전경입니다.

 

자 이렇게 보니까 삼국시대 불상은 미소를 띈 모습,

통일신라 불상은 화려하고 다소 관능미가 있는 모습,

고려시대는 투박하고 무사 얼굴 같은 모습으로

이제 불상을 보면 쉽게 어느 시대 조성된 것인지 짐작할 수 있겠지요?

이것만 해도 문화재가 여러 분들 앞으로 친숙하게 한걸음 다가온 것 같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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