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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죄송해요~ 성공회대성당

fotomani 2011. 5. 13. 14:19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이하 성공회대성당)을 말할 때

강화성당과 강화 온수리성당을 빼놓고 말할 수 없는데,

모두 한옥과 서양식 건축기법이 혼용된 건축물이기 때문입니다.

 

왜 성공회에서 강화도에 공을 들였는 지는 알 수 없으나 

강화성당과 온수리성당을 보고 난 후 성공회대성당을 보면

좀 더 쉽게 유럽의 성같은 이 건축물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강화성당/온수리성당 바로가기 

http://yonseidc.com/bbs/view.php?id=gallery&page=1&sn1=&divpage=1&sn=off&ss=on&sc=on&keyword=강화&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94

 

매주 수요일 열리는 열리는 '주먹밥콘서트'라는 것이 있습니다.

서울 대성당 정길섭 신부는 이와 관련해 "한국성공회는 신앙과 일반생활을 구분하지 않는 나눔운동과 사회선교에 치중해왔으며,

그 본당인 서울 대성당은 닫힌 종교적 영역에 머물지 않고 지역인들과 공존하는 대표적인 공간'이라고 말했는데,

이러한 정신이 코프 초대주교와 트롤로프 3대주교로부터 아니 성공회 건축물을 단적으로 정의해주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강화성당 내부입니다.

천장에는 들보가 있지요?

 

온수리 성당과  종루겸 외삼문형태를 띈 솟을대문입니다.

 바로 이런 정신이 한국의 독특한 성공회 건축양식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지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대표되는 서울 대성당도 처음에는 조그마한 한옥에 장림성당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서울에는 정동과 낙동(명동부근) 2군데서 따로 예배를 보아왔는데

이를 통합하기 위해 새로운 성당건립이 필요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서울대성당의 건립과정은 크게 둘로 구분해볼 수 있습니다.

영국인 아더 딕슨의 설계에 의해 1922년 3월 착공하여

1926년 5월 2일 건립비용 조달의 어려움에 봉착하여 일차 준공되었습니다.

현재 성당을 위에서 내려다 보면 커다란 십자가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이때는 좌우 날개가 없는 일자형의 건축물로 이후 70년간 존속되었습니다.

 

이 부분건립을 원 설계대로 완성시키는 것이 성공회의 숙원이었으나 여의치 못하고

1993년 대한 성공회 관구가 설립되고 초대 관구장으로 김성수 주교가 취임하면서부터

'서울주교좌성당' 완공을 위한 건축운동이 벌어지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이 운동은 문화재 변경을 반대해 온 서울시 문화재위원회의 반대로 좌절을 겪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미사에 참석했던 영국 관광객이 자신이 사는 런던 교외 렉싱턴 도서관에

성당 건축도면이 있다는 말을 전해 준 것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복음이 아닐 수 없는 일이었지요.

 

그래서 증축 설계책임자로 있던 김원을 보내 원래의 건축도면을 찾아내고

서울시의 허가를 받아 1996년 5월 드디어 완공을 보게 되었다는 전설같은 사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정동은 원래 태조 이성계의 계비인 신덕왕후의 능이 자리하고 있어 정능이라고 했답니다.

그 후 능을 도성밖 지금의 정릉으로 옮기고 나서 정동으로 바뀌었다고 하지요.

현대식 건물 사이로 유럽의 성같은 성공회대성당이 보입니다.

 

자세히 보면 돌쌓은 기법이 좌우도 다르고 각각 크기도 다릅니다.

마치 강화성당의 축성기법이 연상됩니다. 강화성당의 기법도 상당히 정성스레 쌓은 축대라 할 수 있지요.

서울대성당은 화강석을 모두 정으로 쪼아 만들었다고 하는데

5천여장이 들어가는 화강석의 크기가 모두 달라 조달에 무척 애를 먹었다고 하는군요.

 

전형적인 한국기와입니다.

그런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증축을 하면서 애먹은 것은 허가와 화강석만 아니라 벽돌도 마찬가지였답니다.

연세 지긋한 수녀님이 그 당시 강화도에서 화강석과 벽돌을 찍어왔다는 말을 듣고

강화도를 다 뒤졌으나 화강석은 비용때문에 중국에서 들여오고

비슷한 점토를 구하지 못해 화성에서 벽돌을 찍어왔다고 합니다.

 

 

기둥과 회랑은 로마네스크 양식이면서도 천장은 들보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지하성당인 카타콤입니다.

여기에도 파이프오르간이 비치되어 있습니다.

바닥에는 트롤로프 3대주교의 1대1비의 모습이 동판에 음각되어 있고

그 밑에 안장을 했다고 합니다.

 

"성당측이 옛 도면대로 하기를 원했을 때, 마음을 비울 수 있었다.

실제로 찾아 낸 도면을 통해 90년 전 영국의 대선배와 교감할 수 있었던 것이

나에겐 아름다운 감동이자 또 하나의 보람이었다."

증축 책임건축설계사였던 김원의 말입니다. 

 

 

이 사진들은 지난 3월 26일 토요일입니다.

서울역사박물관에 들러 '서울의 근대건축'이란 비매품 도서를 열람해보고

러시아공사관, 정동교회, 성공회대성당, 환구단을 둘러보려고 했던 것인데

열람실은 문이 닫혔고 근방의 작은 식당에 들러 오징어두루치기로 점심을 때우고

투어를 나선다는 계획이었는데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따~악 한잔 걸쳤습니다.

 

 

성당 내부를 보려니 정장차림의 사제님 풍모의 한분이 걸어 잠근 자물쇠를 일부러 열고

일일히 내부를 설명해주시는데 술냄새 풍기지 않으려고 숨도 못쉬고 쫓아다녔습니다.

나중엔 이실직고 했지만서도...

이 자리를 빌어 새삼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자상한 안내 너무 감사드립니다.

아이고 얼굴이 달아오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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