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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날이 내일인가요? - 수정본

fotomani 2020. 11. 17. 14:06

  해봐야 밑지는 장사, 개고기논쟁

 

벌써 10년도 더 지난 얘기입니다. 오마이뉴스에 개장국에 관한 소소한 글을 하나 기사로 내보냈더니, 식용 개고기 논쟁이 격하던 1년쯤 지난 뒤 나에게 찬성 글을 하나 써달랍니다. 그러지 않아도 그 글에 오뉴월 개 패듯이라는 구절 하나로 홍역을 치른 바 있어 거절하였더니 집요한 청탁 전화에 나락에 빠지는 기분으로 어쩔 수 없이 써줬던 글입니다. 참고로 말하면 지금은 입에 대지도 않고 그냥 '이런 시절도 있었다' 재미로 읽어 주세요. ()

 

'아침진지 드셨어요?'라는 인사를 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나요?

국민소득이 100불에도 못 미치고 먹고살아야 한다는 일이 삶의 목적이었던 시절. 명절이나 어른 생신날은 마음 놓고 배 터지게 먹을 수 있는 날, 용돈 받을 수 있는 날이었다. 그런 날 고기는 먹여야 되겠는데 가장 구하기 쉬운 것은 마당에서 키우던 닭이니, 몇 마리 잡으면 벼슬부터 발까지 심지어 선지까지도 음식재료가 되어 온 가족이 먹을 수 있었다. 먹고산다는 것이 빤한 시절이니 이럴 때 거든다는 핑계로 식구들을 다 끌고 가 법석이며 배 터지게 먹어도 하나도 흉이 될 수 없던 시절이었다.

 

'열아홉 살 섬색시가 순정을 바쳐 사랑한 총각 선생님'은 가르쳐야 할 아이들이 횟배와 영양실조와 결핵에 시달려 공부보다는 단백질 공급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래서 아이들과 허구 헌 날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며 뱀을 잡아먹이며 아이들 체력을 키웠다. 아니 쉽게 얘기하자. 라면이 이 땅에 선보인 것은 1963년 삼양라면이었다. 아직도 보릿고개가 있었던 시절 박정희 대통령이 라면이 기근을 면해줄 식품으로 극찬했다는 일화가 있는 것을 보면 굶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였든지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겠다.

 

농경문화에서 소가 차지하는 비중은 너무나 크다. 늙거나 병들어 죽지 않는 한 고기를 먹기 위해 소를 잡는다는 것은 망조든 집안의 대들보를 빼는 일과 같았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애완(愛玩)동물이란 것은 마당에 놓고 기르던 닭이나 개새끼가 아니라 황소에게 더 걸맞은 말일지도 모른다. 우골탑(牛骨塔)이란 게 무엇인가? 이렇게 배곯고 사는 것이 못 배운 탓이라며 늙어 죽을 때까지 나를 돌봐 줄 장남을 위해 대들보 같고 한 식구 같은 소를 팔아 대학 등록금 마련해주어 생겨난 말 아니던가? 호구를 위한 농사를 위해 새벽부터 밭 갈아주고 짐 날라주니 식구들은 못 먹어도 군불 때서 소죽 끓이고 냇가에서 씻어주고 내 새끼처럼 등 긁어 주던 소 아닌가? 주인과 떨어지기 싫어 눈물 그렁이는 소를 팔고 매몰차게 돌아서며 논둑을 걸어오는 농부의 심정은 어떠했을 것인가?

 

95세로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는 50대에 병치레 하시면서 잡숫고 싶은 음식을 말씀하시라 했더니 "나 개장국이 먹고 싶다."하셨다. 처음에 나는 물론 집안 식구들 중에 그런 음식을 먹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어서 놀랬다. 그리고 당황했다. 어떻게 여자가 그런 음식을 들 수 있는가 하고. 그러나 그만한 연배의 여자들은 '그냥' 접할 수 있는 음식이겠구나 라고 이해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도 한참 후였다. 사실 그때만 해도 '개장국'이라는 단어는 아가씨의 예쁜 입에서 항문을 '똥구멍'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나에게는 충격적이었다. 그런 위선은 방송에서 국악이 흘러나오면 무슨 기생 음악이냐고 슬며시 다이얼을 돌리는 '신식교육' 영향도 컸으리라 생각한다.

 

사실 육개장은 개장국이다. 물론 여러 견해가 있겠지만 소의 양지머리나 개고기 살이나 육질과 맛에서 거의 차이가 없다. 된장국물에 고기를 찢어 넣고 대파를 큼직하게 썰어 푹 끓인 개장국은, 정서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허한 몸을 보양하는데 그보다 손쉽게 구할 수 있고 좋은 음식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영양보충이 아니라 맛을 위해 마블링이 잘 된 값비싼 한우에 수입 와규도 먹을 수 있지만 그 옛날엔 소 잡을 생각은 꿈도 꿀 수 없고 돼지 잡기조차 눈치가 보이는 터에 닭처럼 마당에 돌아다니는 똥개를 잡는 게 별 일이었겠는가?

 

풍속화를 보면 한편에서는 남녀가 희롱을 하고 있고 한쪽 마당 귀퉁이에서는 이에 상관없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누워있는 개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한창 춘색이 도도해질 즈음 슬그머니 나타난 개새끼가 하초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며 흥을 깨버리니 어찌 책임을 준엄하게 묻지 않을 수 있을까? 부엌에서 일하려면 뒤로 와서 킁킁대고 부뚜막에 밥상 차릴라치면 물고 튀려고 허연 눈자위를 내리깔며 곁눈질하는데 이 정도면 빗자루 맞아야 할 천덕꾸러기지 '엄마 간다'하며 품에 답삭 안고 가는 애완견은 아닌 것이다.

 

인간인 여성참정권도 겨우 20세기 초에 들어서야 확립되기 시작하였는데 그 옛날에 아무리 동물을 사랑했다 하더라도 대놓고 개의 권리를 주장하기는 좀 힘들었을 것이다. 어쩔 수없이 모른 체하고 지나쳤을 가능성이 많으니 '조상님! 왜 우리에게 이런 좋지 않은 식습관을 물려 주셨나요.'라고 마냥 원망할 수도 없다.

 

음식은 규범이 아니다. 시대적 요구에 따라 변화할 수는 있어도 강제할 수는 없다. 어떤 분의 말씀처럼 '먹기 싫으면 안 먹으면 되는 것'이고 수요가 없으면 사라지는 것이다. 영장류를 먹는 사람들도 있고, 맛있는 푸아그라를 위해 움직이지도 못할 좁아터진 닭장에 집어넣고 먹이를 억지로 먹여 비대한 지방간을 만들어 먹는 사람들도 있다.

 

'개장국'이면 개장국, '육개장'이면 육개장이지. 음식에 보신이란 이름은 왜 붙인단 말인가? 지금은 없어졌지만 양평 용문사 앞에 뱀이니 뭐니 해서 정력에 좋다는 음식을 만들어 놓고 파는 보신촌이 있어 '용문산 뱀은 새벽이슬 맺힌 약초만 먹고 자라서 효험이 100%'라고 선전하던 때가 있었다. 그저 정력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사람들은 약초 먹는 뱀에 대한 아무런 의심도 없이 마누라에게 개 끌려가듯 끌려가서 며칠 씩 묵고 먹으면서 간절하게 그분이 강림하시는 그 날만 기다렸다는 우스갯소리도 전해온다.

 

언젠가 케이블에서 소의 생식기를 요리로 파는 음식점을 보여주는데 여자분들도 입을 가리고 겸연쩍은 듯 까르르 고개 돌리며 인터뷰에 응한다. 온통 개고기로 난린데 어떻게 그런 게 아무런 문제없이 방영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만약 대상이 소의 생식기도 아닌 '개고기'였다면 반응이 어떨까? 관습적으로 개고기를 먹는 것과 유난을 떨며 '거시기'만을 찾아 먹는 것은 어느 것이 더 혐오스러운 것일까? 소는 이미 식용으로 공인되어 있어 아무 부위나 썩썩 잘라먹어도 되는 것일까?

 

개장국은 정력이 좋아지는 보신탕이 아니라 그저 개장국일 뿐이다. 개고기는 가난하고 먹을 것이 없었던 아주 오래 된 시절부터 관습적으로 먹어 오던 음식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 음식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게 되었다. 누가 먹으래서 먹을 것도 아니고 남들 싫어하는데 기쓰며 먹을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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