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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좌파 김정희 - 추사코드-수정본

fotomani 2020. 11. 17. 13:53

추사코드 - 서화에 숨겨둔 조선 정치인의 속마음

추사고택에 가보면 대팽두부과강채 고회부처아여손(大烹豆腐瓜薑菜 高會夫妻兒女孫)’란 대련이 기둥에 붙여져 있는 걸 보게 된다. 흔히 '가장 좋은 반찬이란 두부, 오이, 생강, 나물이고 최고의 모임이란 부부와 아들, 딸과 손자'로 해석하고 그 뒤에 '소박하고 욕심 없고 꾸밈 없는 순후함이 가득한 마음의 표현입니다. 글씨 또한 오랫동안 연마한 연륜을 느끼게 하는 의 졸()함이 배어나옵니다.'라고 평하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당대 최고의 학자이고 예술가이며 천재인 추사의 작품에 대한 해석으론 무언가 모자라다. 왜 갑자기 두부, 오이, 생강, 나물 타령이고 부부, 아들, , 손자까지 끌어들였는 지에 대한 답은 없고 잔소리 말고 서의 졸함에서 깊이를 느끼라니 어찌 이렇게 무책임할 수가 있나?

 

이 대련뿐만 아니라 추사의 거의 모든 작품들이 이런 식인데, 형식을 파괴한 자유분방함과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추사체가 우리들에게 주는 긴장감이 내용으로 가면 스러져 버리는 이유가 과연 무엇 때문일까? 그러니 서법에 있어서 기교니 개성에 대한 평은 많이 있지만 내용을 논할 게 별로 없으니 위와 같이 이름만 다르고 다 똑같은 상장(賞狀)처럼 비슷한 내용의 평밖에 볼 수 없다. 그럴듯한 평을 해보려 해도 도무지 속내를 알 길 없으니 그저 "세상에는 추사를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아는 사람도 없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얼마 전(2016) 신문에 <추사코드>란 책의 발간 소식이 실렸다. 이성현이라는 사람이 펴낸 책이었는데, 추사는 '예술가가 아니라 정치가'라는 도발적인 주장이 눈을 끌었다. 난해하고도 독특한 서체를 구사함으로 그의 예술세계가 후대에 윗글과 같이 애매하게 묘사되는 걸 알지만 그래도 예술가가 아니라 정치가라니?

 

이 책에 추사 나이 서른 되던 해에 여든 셋의 옹방강이 보내온 편지 담계적독(覃溪赤牘) 전면에 추사가 쓴 찬문(讚文)이 소개된다.

 

핵실재서 궁리재심 (覈實在書 窮理在心) 고고증금 산해숭심 (攷古證今 山海崇心)’

 

이것을 저자는 "핵실재서 궁리재심은 '옛 경서의 뜻을 헤아려 밝은 이치를 얻으려 하나, 경서에 담긴 본뜻을 입증하는 일은 (고고증금) 경서를 산과 같이 높게 받들자 해도 성인의 말씀과 자신 사이엔 바다와 같이 깊은 물(시간상 간극)이 있어 어렵다"며 고증학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고 풀이하고 있다. 그 숨은 뜻은 공자의 가르침이 주자가 해설한 성리학으로 폐해와 허구성(깊은 물)이 깊어졌는데 이를 고증학을 통해 공자께서 그리 말씀하신 적이 없다라고 바로 잡아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조선이 주자의 성리학을 정치이념으로 삼고 있었으니 추사는 강남좌파라고나 할까?

 

기득권 세력이 알던 서체와는 다른 받아들이기 힘든 서체를 쓰는데도 청에서도 알아주는 명필이라니 거기에 토 달 수도 없고, 천재라고는 하지만 오만함이 눈엣가시처럼 거슬리는데 그 뜻을 알았다면 대역죄로 국문을 하지 추사를 가만히 놓아두었을까? 그러니 말년까지도 '소박한 밥상과 단란한 가정만큼 소중한 것이 없다 (대팽두부과강채 대회부처아녀손)'라 해도 그저 늙은이 넋두리나 이제야 철이 드는 모양이라고 아무도 눈여겨보지도 않았겠다. 그래서 세상을 마치기 하루 전날까지도 봉은사에 <판전> 편액 글씨를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추사의 대팽두부...’는 명말청초 동리 오영잠의 시구를 변형한 것으로 나는 대팽을 당해 현실 정치에 실패하고 조상의 제사를 모실 혈육도 남기지 못한 죄인이지만, 나의 뜻을 계승할 후계자(제자)를 길렀으니 언젠가 내 뜻이 꽃필 날 있으리라라고 풀이하고 있다.

추사라는 사람은 몰라도 추사체는 다 알고 있고 명필이라는 것도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 추사의 글씨를 보면 우리가 생각하던 명필과는 너무도 동떨어졌음을 느끼면서도 감히 저게 뭐야란 말을 내뱉지 못한다. 그러나 자주 보게 되면 내용은 모르더라도 서체의 창의성과 조형성의 독보적 경지를 몸으로 느낄 수 있다. 글자 한(1)자에도 우리에게 암시하는 창조적 내용이 들어 있다는 뜻이다. 저자는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이나 영화 다빈치 코드를 보듯 풍부한 지식과 번뜩이는 추리로 추사의 속내를 헤아리고 있다.

 

우리의 가려운 곳을 잘 알고나 있었다는 듯 긁어주니 한번 잡으면 끝까지 놓지 못하는 책인데 단번에 머리속에 집어넣기 힘들어 읽을 때마다 새롭게 다가온다. 도대체 몇 번이나 더 읽어야 머릿속 하드 드라이브에 저장 말고 내 것으로 소화할 것인가?

 

참고로 추사의 독특한 매력은 초의선사와 오간 서신에서 좀 더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추사코드 이성현 들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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