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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누구 없소? 그냥 한 번 불러봤어~!"

fotomani 2012. 6. 12. 08:30

 

 

잠실 탄천 스쿠터 레이싱 본선을 끝까지 보지 못하고 서소문 시립미술관 앞마당에서 열리는

70년대 금지곡 콘서트로 갑니다.

 

 

이제 막 시작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인디밴드들을 잘 모릅니다.

이 두분은 코지카페라는 밴드로 '행복의 나라로'를 열창하고 있습니다. 

 

 

점점 사람들이 많이 모입니다.

원곡을 리메이크를 해서 마치 금지곡 가수들을 위한 헌정 콘서트 같습니다.

 

 

 이벤트로 공연도중 관객에게 사랑의 선물로 캔커피를 바치고 있습니다.

 

 

오늘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수고한 나의 발입니다.

 

 

70년대 금지곡이 금지곡이 된 이유에 대해 CBS 변상욱의 기자 수첩을 인용하는 것이

더욱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저항가요로 우리가 김민기 씨를 떠올린다면 미국인들은 포크음악의 창시자 피트 시거를 기억한다.

피트 시거는 저항가요를 확실한 대중음악의 한 장르로 만들었다.

1940년대 스페인 내전에서 60년대 베트남전 반대, 최근의 이라크 전쟁 반대에 이르기까지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음악인이다.

‘We shall overcome 우리 승리하리라’, ‘들에 핀 꽃들은 어디로 갔나’ 등이 그의 작품이다.

존 바에즈, 밥 딜런, 피터 폴 앤 메리 등 유명한 가수들이 피트 시거의 추종자들이었다..."

 

 

"피트 시거의 노래들은 1970년대 초 한국으로 상륙한다.

‘우리 승리하리라’는 1972년 김민기 씨가 서울대 신입생 환영회에서 처음 번안해 불렀고

이후 대학가로 번져 1970년대를 대표하는 저항가요가 됐다.

이때 저항의 의지를 노래에 담은 가수들이 김민기 씨를 비롯해 한대수, 서유석, 양희은 씨 등이다." 
 

 

 

 

" 독재정권의 감시와 통제가 아주 엄격했기 때문에 김민기 씨가 작곡한 저항가요들은 대중적으로 불리지 못했다.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으로 시작하는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금관의 예수)”,

“예쁘게 빛나던 불빛 공장의 불빛 온데 간데도 없고 희뿌연 작업등만 이대로 못 돌아가지 그리운 고향마을‘

 - “공장의 불빛”,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까 있을까 분홍빛 고운 꿈나라 행복만 가득한 나라,

하늘빛 자동차 타고 나는 화사한 옷 입고 잘생긴 머슴애가 손짓하는 꿈의 나라’ - “이 세상 어딘가에”

 

 

 "아침 이슬’이 대표적인 예이다. 결국 많은 노래들이 정치적 의도로 또는 오해로 금지곡이 되어 버린다.

아침이슬은 겉으로는 ‘붉은 태양’이 문제가 되었지만 사람들이 시대상황에 실망할 때마다 너무 애창해 금지곡.
이장희의 ‘그건 너’는 군사정권에게 손가락질하며 대드는 이미지라고 금지곡.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는 정권의 신뢰를 훼손한다고 금지.

(전설에 의하면 방송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연설이 막 나갔는데 그 다음 프로그램 프로듀서가 이 노래를 내보내는 바람에 금지라고...)


 

 

사토 유키에

한국 주재 일본인으로 결성된 밴드 곱창전골 멤버랍니다.

기타를 가지고 두손으로 연주했다, 커다란 숟깔로 연주했다...

신나게 다양한 연주기법을 선보여 주었습니다.

 

 

 

 

"송창식의 ‘왜 불러’는 돌아서서 가는 사람을 왜 불러? 장발단속, 불심검문하는 경찰 공권력에 저항하는거냐며, 금지.
한대수 ‘물 좀 주소’는 물고문을 연상케 해서 금지.
‘행복의 나라로’는 독재정권 아래서 살기 싫다는 거냐며 금지.
신중현 ‘아름다운 강산’은 정권 찬양 홍보 노래 좀 만들라는데 신중현 씨가 거절해 미운털이 박혀 금지.
정광태의 ‘독도는 우리 땅’은 한일관계를 풀어가려는데 일본 감정 자극한다고 금지.
반면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창법이 왜색이 짙어 금지."


 

 

 "상당히 엉뚱한 금지곡도 있다. ‘키다리 미스터 김’은 박정희 대통령의 작은 키 때문에 금지.
‘고래사냥’은 허무주의 조장이라고는 하지만 실은 대학생들이 데모하러 나가자고 목이 터져라 부르는 통에 금지.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도 겉으로는 ‘너무 허무주의야’라고 핑계를 댔지만 민주화를 그리는 이미지라고 금지됐다."


 

 

 

"1980년대에는 대학가와 노동계를 중심으로 운동권이라는 영역이 자리 잡으면서 지어 부르고 구전되는 노래가 많아졌다.

특히 광주민주화항쟁 이후 저항을 담은 노래도 많아지고 책으로 묶어내는 작업들도 이뤄져 시중에 유통되었다.

정권이 금지하든 말든 공권력의 힘이 미치지 않는 영역에서 부르는 노래들이 많아지니

굳이 대중가요를 저항의 뜻으로 빌려쓰지 않았고 저항가요와 대중가요가 확실히 분리되어 금지곡이 많지 않다.

심수봉 씨의 금지곡 리스트가 눈에 띈다. ‘그 때 그 사람’은 박정희 대통령의 마지막 때문에 금지.
‘순자의 가을’ - 이건 전두환 대통령만 부를 수 있는 노래라 금지. 그래서 ‘올 가을엔 사랑할 거야’ 바뀌었다.
‘무궁화’는 ‘참으면 이긴다 ~’는 가사가 문제가 돼 금지. 뭘 참고 누구를 이겨?"


 

 "6·10을 항쟁으로 부르기도 하고 혁명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아직국민 모두가 공감하도록 정리가 되지 않고 있음을 반증한다.

국가와 국민이 발전하는 토대 중에 ‘공유’라는 것이 있다.

과거의 아픔과 기쁨 역사적 사건을 공유해야 하고 미래의 꿈과 희망을 공유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많이 아쉽고 아프다. 일제의 침략과 강점, 해방과 친일, 6.25와 분단, 군사독재, 지역감정과 이념대립...

그걸 정치적 정략적 이해가 아니라 모두의 아픔과 안타까움으로 공유하고 미래의 희망도 공유해야 하는데

아직도 치열하기만 한 분열과 대립으로 우리 사회는 어지럽기만 하다.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소? 그냥 한 번 불러봤어~!"

 

이상 변상욱 기자의 글

 

 

자 이쯤해서 서울 시립미술관 건물을 한번 둘러 보도록 하지요.

보시는 것처럼 전면부는 옛 대법원 건물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조선말 평리원(한성재판소)가 있었던 곳에 일제가 1928년 경성재판소로 세운 건물이라 합니다.

1995년 대법원이 서초동으로 이사갈 때까지 사용하였다고 하며

평면은 '日'자 형태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日자 무척 좋아 하지요? 

 

 

그런데 자세히 보면 서울역과 마찬가지로 석조 조형물은 철근이 들어 간 시멘 몰탈 같은

느낌이 많이 듭니다.

부셔서 확인해볼 수도 없고... 

 

 

내부는 외곽 벽체에 붙여 새로운 벽체를 붙여 놓았습니다.

 

 

 새 건물 투광천장으로 전면벽 중앙부가 보입니다. 

 

 

 

술 한잔 '빨러' 나오겠다는 친구가 바로 코 앞에서 시립 미술관이 어디냐

자꾸 전화를 합니다.

무대 곁에 앉아 있다가 스피커 소리때문에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아! 정동교회 몰라? 그 옆에 시립미술관이 있어.

모르겠으면 옆에 사람들 한테 물어 봐!"

 

사회자를 포함한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어이 쪽 팔려~'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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