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찌개 하면 뚝배기, 김치찌개는 냄비라는 등식이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섯시 삼십분을 육시 서른분이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어쩐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제 맛이 날 것 같지 않습니다.
물론 집에서야 그릇을 가리지 않고 온갖 좋다는 부재료를 다 써서 찌개를 끓이지만
별 것 들어가지 않은 된장뚝배기가 더 끌리는 것은 왠일일까요?
요샌 농사 새참으로 빵과 스쿠터로 배달되는 읍내 다방 커피가 대세인 듯 한데
집에서 마련한 꽁보리밥에 열무김치를 위시한 각종 나물을 소쿠리에 이고 나가
논두렁에서 커다란 양푼에 꽁보리밥을 퍽퍽 퍼담고 각종 나물을 올려놓고
고추장 한듬뿍 올리고 참기름 들기름에 썩썩 비벼먹는 새참을
상상만 해도 회가 동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겠지요.
꽁보리밥이야 안 먹어본 사람이 먹을려면 미끈덩 미끈덩하고 아무리 좋다는 나물을 넣고 비빈다 한들
볶은 고기와 계란프라이 하나 더 올려놓고 비빈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겠지만
그래도 맛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드는건 어쩔 수 없습니다.
종로 관철동 골목에 들어가면 워낙 음식점들이 많아 무얼 먹을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은데
언젠가 점심을 먹고 나오다 보니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뚝배기집이란 찌개집이 끌립니다.
이미 밥을 먹었으니 다시 먹을 수도 없고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는데
이 동네는 저녁때 술 한잔하려고 가는 때가 많으니 그 또한 기회가 쉽게 오질 않습니다.
날씨가 계속 추우니 달마다 모이는 정기모임도 전철역 근방에서만 모이게 됩니다.
이번에도 종각역 근방 숯불구이를 잘한다고 인터넷 상에 많이 올라 있는 구이집을 갔습니다.
젊은이들 좋아하는 실내분위기에 사람들로 빈 테이블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술과 대화가 있어 즐거운 게 아니라 점점 짜증이 나기 시작합니다.
주문을 하면 한참 소식이 없다가 느닷없이 딴 종업원이 와서 주문하시겠느냐 물어보고
불판 갈아달라면 몇 번을 소리쳐야 갈아주고 불친절한 건 아닌데 도대체 무신경입니다.
마무리로 곡기를 채우려다 갑자기 그 찌개집이 생각납니다.
“야, 이 근방 찌개집으로 가자.”
다행히 저녁밥 때가 한참 지나서인지 기다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주문을 하고 근방 편의점에서 사온 소주를 주인 안 보게 슬쩍 한 컵씩 땁니다. 죄송.
완전 일용직 노동자 스타일이지요.
차림표에는 우렁된장, 된장찌개, 순두부, 된장찌개 단촐하게 4가지 뿐입니다.
5천원짜리가 제일 비싼 것이니 근처 학원생들께 매력 있는 값이긴 하지만 관광객도 많이 오는 곳입니다.
문간 화덕에 쌓아놓고 끓이는 뚝배기는 주문하자마자 기계적으로 투닥투닥 나옵니다.
펄펄 끓는 찌개와 반찬 몇 가지 그리고 양푼에 담겨 나오는 밥, 자동적으로 밥을 비벼먹게 만듭니다.
정신이 번쩍 들게 맛이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닌데 이런 밥상 차리는 과정들과
오로지 찌개에 밥 비벼먹을 일념 하에 부대끼는 것도 기꺼이 받아들일 태세가 된 사람들이니
좁은 홀에서 모르는 사람과 겸상을 하더라도 껄끄러울 게 없습니다.
맛있게 비벼먹을 준비가 다 돼있는 것이지요.
오늘 참석 못한 친구로부터 온 문자 메세지에 ‘내가 안가면 누가 술마시나?’ 했는데
예지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냥 2차를 밥으로 끝냈으니 새마을 정신이 투철하다고 해야 하나 뭐라 해야 하나?
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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