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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앞에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곳- 경교장

fotomani 2013. 7. 4. 13:51

 

(경교장은 일제하 금광사업으로 돈을 번 최창학이 지은 건물로 1945년 11월부터

1949년 6월 26일까지 백범 김구선생이 생활하던 사저입니다.)

 

 

 

장준하의 자서전 돌베개속의 사진 중에

노능서, 김준엽, 장준하 선생이 옆구리에 총을 끼고 찍은 군복사진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하겠습니다.

 그 사진은 비록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19458월 한국으로 침투해 들어오기 위해

광복군으로써 미군 OSS(Office of Stratergic Service) 훈련을 받던 중 찍은 사진이었다 하니,

만일 좀 더 일찍 작전이 실행되어 국내에서 광복군 특수부대의 교란작전이 성공하였다면

임시정부의 정통성은 보다 확고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1938년 완공된 건물인데 썬룸이 있어 천창을 달았습니다.)

 

 

경교장이 복원된 것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지난 토요일 서울역사박물관 전시를 갔다가 들러보게 된 곳이지요.

근대건축물로써의 의미보다는 김구의 암살, 임시정부, 친일청산 같은 묵직하면서도

아직도 미결, 미완의 주제가 숙제처럼 다가오는 곳입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만일이라는 가정법이 많이 떠오르는 곳입니다.

 

 

 

(김구 선생의 데드마스크)

 

전시물 중에 신기독(慎基獨)’이라 쓴 족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혼자 방안에 앉아 있어도 천 사람 만 사람 가운데 앉아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뜻이지요.

지도자는 시정잡배가 아닙니다. 아집을 원칙이라 하지 않으며 남 탓하지 말고 자기 말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합니다.

솔직히 사과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나도 사람인데라는 핑계를 댄다면 그 때부터 지도자이길 포기해야 합니다.

 

 

 

 

 

 

(김구 선생의 거실. 창가의 책상이 김구 선생이 총탄에 쓰러지신 곳)

 

 

눈 덮인 벌판을 걸어 갈 때는 발걸음을 어지럽게 걷지 마라. 오늘 나의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말년에 치매가 와서 화장실 거울에 비친 당신의 모습을 보고

일본순사로 착각하시어 호통을 치시곤 했다는 선배 아버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귀빈 응접실. 이곳에서 최초의 국무회의가 열렸습니다.)

 

(환국후 임시저부 첫 국무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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