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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어탕이 나를 녹동항으로 가라하네.

fotomani 2013. 7. 25. 13:29

 

 

제가 붕장어를 구이로 먹어 본 것은 얼마 되질 않습니다.

후배와 몇 년 전에 한번 먹어보고  ‘(구이로는) 붕장어가 아니다라고 결론낸 지 오래입니다.

이젠 시중에서 자연산 민물장어를 구경해 보기도 쉽질 않지만

불과 80년대 후반이나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비싸서 그렇지, 먹을 수는 있었습니다.

쫀득하며 찰지고 기름진 맛은 요즘 양식 민물장어에 견줄 바가 아니지요.

 

(벌교식당에서 비오는 날 먹었던 짱뚱어탕)

 

얼마 전 초등친구들과 청량리 근방에 볼 일을 보고 술 한잔하려고 뒷골목 쪽으로 들어갔습니다.

날씨가 우중충해선 지 구어 먹는 것은 싫고 끓여먹는 안주를 찾는데 마땅한 것이 없습니다.

그냥 매운탕이나 먹으려고 조그마한 횟집을 들어갔습니다. 메뉴를 보니 장어탕이 있습니다.

값도 청량리부근이니 그럴 듯하고 서더리를 넣어서 같이 끓여준답니다.

붕장어로 만들어 준다는 장어탕에 별반 기대를 갖은 것은 아니었지만,

벌교에서 오늘처럼 비가 부슬거리는 날 꼬막정식과 함께 먹었던 짱뚱어탕이 생각나서 시킨 것이지요.

 

 

드디어 장어탕이 나왔습니다. 된장을 넣고 끓인 게 아니라 매운탕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구이에서 느꼈던 푸석한 식감이 아니라 보들보들합니다. 아하! 붕장어를 끓이면 이렇게 되는군요.

억지를 써서 안 된다는 멍게까지 한 접시 서비스로 먹고 나왔습니다.

 

(살이 부드럽다 못해 말랑말랑합니다.)

 

 

(금강전자 고사장님)

 

며칠 전입니다. 용산에서 금강전자라는 오디오샵을 하는 고사장님이 술 한잔하자고 전화를 했습니다.

아니 제가 고사장님 글에 어디 그 근방에 장어탕 잘하는데 없느냐댓글을 달았던 것이지요.

전 생선으로 만드는 탕류는 약간 기름기가 도는 걸 좋아해서 장어탕이라면 당연히 그런 줄 알았더니,

요즘은 90% 이상이 붕장어로 만들어 기름기가 거의 돌지 않는답니다.

하여간 붕장어탕이 그런대로 먹어줄만 했으니 이젠 크게 상관치 않습니다.

 

(용산 전자상가스러운 식당 앞 전봇대)

 

나를 끌고 간 곳은 용산 전자랜드 부근에 좀 알려진 엄마손맛이라는 허름한 음식점이었습니다.

밖에는 완도에서 택배로 보낸 스티로폴 박스가 쌓여있고 안에는 손님이 꽤 있으니

어느 정도 내공이 쌓인 집 같습니다.

 

 

오늘이 중복이라고 전복삼계탕을 특별메뉴로 준비했던 모양인데

저 때문에 바쁜 중에도 장어탕을 따로 만들어야 되니 좀 눈치가 보이지만,

같이 간 고사장님이 단골이라 그런지 별 내색을 하질 않습니다.

채소를 찍어먹으라고 나온 된장 색깔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약간 배릿하면서도 혀에 착 감기는 맛이 이전에도 어디선가 먹어 본 듯한데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생각나든 안나든 맛만 좋으면 됐지요.

 

 

 

삼치구이가 먼저 나옵니다. 보통 나오는 삼치 한 마리가 아니라 커다란 삼치 꼬리 쪽 토막입니다.

양념을 얹져 나오는 삼치구이는 눅눅해져서 싫어하는 편인데 이건 그냥 소금구이입니다.

소금 맛과 담백한 살맛이 잘 어우러집니다.

곁에선 두터운 살점을 회 뜨고 있어서 민어냐 물으니 병어랍니다. 얼마나 큰 병어였으면...

그 말에 고사장님이 자신이 찍어 두었던 병어구이 사진을 보여주는데 정말 큽니다.

 

 

(젓가락 든 손과 비교해보십시오.)

 

 

드디어 장어탕이 나왔습니다.

살코기 맛이 우럭젓국처럼 살짝 건조시킨 붕장어로 만든 듯한데

탄력이 느껴지는 우거지와 함께 씹히는 맛이 괜찮습니다.

살점들이 익으며 흐드러져나가 추어탕이나 어죽 같은 느낌을 들게 만드니 밥 한 그릇 말지 않을 수 없군요.

그걸로 술안주를 하는데 난데없이 카스텔라 두 조각을 갖다 줍니다.

자세히 보니 카스텔라가 아니라 두부네요.

오늘은 제가 장어탕을 먹었지만 다음엔 주종목인 민어회나 병어회를 한번 먹어봐야겠습니다.

 

 

(여기 장어탕엔 약간 건조된 붕장어를 쓴 모양입니다.)

 

(빵같은 느낌이 나는 두부)

 

 

(아이스크림 안주로 생맥주 한잔)

 

2004년 녹동항에서는 규모는 작았지만 불꽃축제가 한창이었습니다.

선착장은 음식점에서 붕장어 굽는 연기와 불꽃 연기로 뒤범벅이 되어

비릿한 바닷내음과 함께 분위기를 진득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장어탕을 먹으니 녹동항이 연상되며 회 한 접시 시키면 푸짐하게 나오던 해산물 밑반찬들이 그리워집니다.

돌멍게, 세발낙지, 성게... 이번 휴가 때는 도보로 거금도 섬 일주나 하고 와야겠습니다.

1인분은 안된다고 고집하면 회를 떠서 저녁노을 물든 녹동항 방파제에 앉아

돌멍게 껍질 소주 한잔에 해삼, 멍게나 씹으며 피로를 풀어 볼까요?

 

(2004년 녹동항 모듬회 밑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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