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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남도여행 첫날- 녹동. 소록도.

fotomani 2013. 8. 8. 11:33

 

장어탕으로부터 촉발된 우발적 고흥 녹동행이 녹동, 소록도, 거금도 도보여행으로 점점 구체화 되었습니다.

그보다 저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회색빛 우울함과

머릿속에 들어있는 쓰레기를 털어 버려야겠다는 조급함이 더 큰 동기가 될 수도 있었겠습니다.

아니면 나이가 들어가면서 남들도 다 느끼는 막연한 갱년기 증상일 것 같고

여행을 떠난다 해서 그게 해결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새로운 환경이 자극이 되지 않을까 해서 무작정 떠나보기로 한 겁니다.

누구랑 가?”라는 말에 혼자라는 답은 사춘기의 치기어린 답 같기는 한데

그렇다고 혼자 가는 걸 거짓말할 수도 없습니다.

 

(고흥군천에 미리 부탁한 안내책자)

 

 

나 홀로 여행의 애로사항은 숙식입니다.

아무리 혼자 간다고 밤낮 순대국에 설렁탕만 먹을 순 없지 않겠습니까?

백방으로 항꾸내(함께) 가볼랑가?’ 수소문해서 꼬셔보지만

주변 사람들은 모두 바쁘고 나만 할 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혼자 여행을 갈 수밖에 없지요.

우선 잘만한 곳을 알아보니 녹동에 괜찮은 해수사우나가 있습니다.

일단 그건 됐고, 밥은 좀 문젭니다. 죄다 혼자 식당에 들어 갈 때 눈치 본 이야기만 나옵니다. 할 수 없지요.

잘하면 기사식당에서 먹어도 기본반찬은 하는 남도백반, 최소한도 해장국이야 먹을 수 있겠지요.

그래도 억울하면 모르는 사람이라도 꼬여서 남도 한정식이나 해물 밑반찬이 그득한 회 한 접시 들고 올까요?

 

8310시 환자예약이 없어 토요일 근무를 작파하고 센트럴에서 녹동행 고속버스를 탔습니다.

천안까지 내려가는 고속도로는 아스팔트 열기와 승용차로 보기만 해도 숨이 꽉 막힙니다.

운전하는 고생을 면했다지만 5시간 버스 타는 것도 이제는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나 35천원으로 그 먼 곳까지 내려갈 수 있다니 그 정도 고생이야 감수해야지요.

 

(녹동까지 가는 고속버스이지만 고흥에서 승객들이 거의 대부분 내립니다.)

 

 

버스가 고흥에 도착하니 승객 거의 대부분이 내립니다. 여기에서 20여분 더 걸려 녹동 버스터미널에 도착합니다.

배를 채우기 위해 근처 정육식당으로 들어가니 메뉴엔 갈비탕이라 적혀있는데 지금은 고기 손님만 받는답니다.

우려가 현실감 있게 다가옵니다. 다시 근처를 둘러보니 허름한 기사식당이 보입니다.

한번 거절 당하니 은근 주눅이 듭니다.

저기...한 사람인데 식사할 수 있어요?”

메뉴는 달랑 백반 하나지만 그것만 해도 어딥니까?

커다란 쟁반에 2층으로 쌓여 나오는 반찬들. 반건 갈치와 꽁치구이, 멸치볶음, 김무침, 파김치 등등.

가짓수를 세어보니 무려 13, 걷는 걸 생각해 반주는 생략하고 멸치 호박국에 훌훌 뚝딱 밥 한 그릇 해치우고 나옵니다.

 

(녹동 버스터미널 앞 기사식당 백반차림, 반찬 가짓수가 13가지나 됩니다.)

 

(터미널 안에서 어떤 노인께 녹동항 가는 버스가 어디에 서냐 묻고 잠시 자리를 비웠는데

'저기 버스 들어왔다"며 일부러 뛰어와서 알려줍니다. 원 이렇게 고마울 수가?)

 

다시 군내버스를 타고 기사양반 담배 다 피우기 기다려 소록도로 갑니다.

해변을 따라 놓여진 보드워크를 따라 소록병원까지 가니 본관건물 뒤편으로 산책로가 있습니다.

산책로 축대에는 소록도를 기념하는 모자이크 벽화로 채워져 있고

엣 건물을 이용한 편의점 겸 선물가게, 검시실, 감금실들이 나타납니다.

검시실의 부검대와 목조 단종대(정관수술을 위한 수술대)는 지금 당장에라도 피가 흘러내릴 듯합니다.

그 뒤의 감금실, 작은 방으로 이루졌지만 서대문 형무소의 감방과 독방에 다름이 아닙니다.

 

(중앙공원으로 가는 산책로)

 

(사슴 그림은 소록-작은 사슴-을 의미합니다.)

 

(감금실- 오래된 건물들은 대개 이런 형태입니다.)

 

(부검대. 수도꼭지가 그걸로 무얼 했는지 암시해줍니다.)

 

(정관수술을 위한 단종대)

 

(관람객 중 한분이 '화장실 넓네' 합니다. 사실은 감방처럼 방에 변기가 붙어 있는 것이지요.)

 

(수저가 구부러진 것은 손가락을 상실한 원생들의 손목에 고무줄로 고정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렇게 소외된 사람들을 일부러 찾아와 어루만져 주었던 분이 계셨나요?)

 

(한하운 시인과 시집들)

 

이런 살벌한 풍경과 달리 정원은 깨끗하고 커다란 나무들로 잘 꾸며져

김근태님이 남영동에서 물고문 당할 때 라디오에서 정수라의 하늘엔 조각구름 떠있고...

원하는 건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가 흘러나왔다는 얘기가 어떤 느낌일지 실감나게 다가옵니다.

똑같은 하늘과 공기이건만 한쪽에선 한가한 삶이

다른 한쪽에선 차라리 죽여달라는 고통의 신음소리가 공존을 할 수 있다는 비틀어진 역사가 어떻게 가능한지...

 

(보리피리가 음각된 판석)

 

(한센병은 낫는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들은 감금수용된 것 뿐만 아니라 간척공사에도 강제 동원되었다 합니다.)

 

 

 

 

(섬내에는 이렇게 버려진 집들이 종종 보입니다.)

 

그 아름다운 정원을 감상하기엔 마음이 무거워져 편의점에서 물 한 병을 사고 서둘러 소록대교로 향합니다.

날씨가 흐리다고는 하지만 간간히 내리쬐는 땡볕과 습한 바람은 흘러내리는 땀을 마르게 할 새가 없습니다.

멀리 언덕에 가리워져 있던 다리 상판을 지탱하는 주탑 2개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니 저 아래 물살은 어림짐작에도 꽤 빨라 보입니다.

작은 동력선에는 낚시꾼들을 태우고 있고 방파제에서도 낚시하는 사람들이 간간히 보입니다.

 

 

 

 

 

 

 

녹동으로 들어오니 6시 정도 되었습니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활어회 센터로 들어가니 회뜨려는 사람들로 붐빕니다.

10년 전에는 그냥 노점에서 활어를 팔곤 했는데 정취는 오히려 그때가 더 나았던 것 같습니다.

혼자 먹을려면 뭘 먹어야 하우물으니 2킬로 정도 되는 도미를 들이댑니다.

해삼이나 멍게를 잘게 썰어 물회로 타는 목이나 축이려 했지만 눈 씻고 봐도 해삼, 멍게가 눈에 띄질 않습니다.

아무래도 포기해야겠지요?

 

(활어회 센터)

 

 

이곳에서야 산 붕장어로 장어탕을 끓이겠지만 그것도 내키질 않습니다.

 메뉴 선택의 고민 없이 전남 영광 웨딩뷔페에서 편안하게 굴비와 닭발을 먹었던 기억이 떠올라

길을 헤매며 뷔페를 찾아가니 폐업이랍니다.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다시 녹동항 뒷골목으로 되돌아가니 생선구이집이 하나 눈에 들어옵니다.

혼자라니 여기서도 달가운 표정은 아닙니다.

 서대구이 하나 시킵니다. 역시 서대구이는 맛이 담백합니다. 대신 죽순과 소라무침이 입맛을 돋웁니다.

 

 

(서대구이)

 

(소라와 죽순 무침)

 

오늘 10킬로 정도 걸은 것 같습니다. 해수사우나를 찾아들어갑니다.

몇 번 경험을 해봤지만 찜질방은 좀 찜찜하긴 하지요. 보관함에 짐을 넣고 탕으로 들어갑니다.

온탕, 해수온탕, 해수열탕, 3가지에 냉탕 둘, 사우나실 둘 정도 있어 읍 단위 사우나치고는 시설이 괜찮습니다.

열탕에서 몸을 덥히고 냉수 폭포에 식히며 담금질을 하고 젖은 옷가지 등을 빨아가지고 찜질방으로 갑니다.

강당처럼 넓직한 수면실에 불안감이 줄어듭니다.

매트리스 깔고 곁에 젖은 옷가지를 널며 매점 아줌마에게 맥주 한 캔 시키니

거기에 널면 주인이 와서 잔소리한다며 87도짜리 찜질방에 널면 금방 마를 거라며 친절히 갈켜 줍니다.

 

 (밥을 먹고 나오니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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