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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남도여행 둘쨋날 - 회먹을 꿈은 사라지고

fotomani 2013. 8. 9. 09:08

자다 깨다하며 새벽에 일어나니 내 곁에 젊은 학생이 자고 있습니다.

내가 코를 심하게 골지는 않는 모양이지요?

탕으로 내려가니 나만큼 일찍 일어나 배낭을 꾸리고 있는 중년분이 있습니다.

인사를 하며 물으니 어제 일정이랑 오늘 일정이 나와 거의 같고 혼자 왔답니다.

무엇보다도 저녁 때 생선회 먹을 동행이 생겨서 잘 됐습니다.

동행하기로 하고 사우나 주인에게 거금도 들어가는 버스 시간과 정류장을 물으니

곁에서 수건으로 몸을 닦고 있던 분이 자기가 거기서 왔다며 자기 차로 거금대교 주차장까지 데려다 주겠답니다.

어째 오늘은 일이 잘 풀릴 것 같습니다.

 

 

(거금대교 주차장에서 해안도로 똑으로 내려갑니다.)

 

(벌써 벼이삭이 패였습니다.)

 

차 태워주신 분은 서울사람으로 거금에 내려와 유자농장을 하는 분이었습니다.

어차피 걸을 작정이었으므로 주차장에서 해안도로 쪽으로 내려와 빙 돌아서 금산면사무소까지 갑니다.

물먹은 공기를 가르며 들판에 울리는 이장님 목소리는 이제 뗄래야 뗄 수 없는 정겨운 시골 풍경의 하나가 된 지 오랩니다.

 논에는 벌써 파란 벼이삭이 맺힌 것도 있고

밭에는 대개 깨와 고추를 많이 심어놓았는데 그동안 가물었는지 콩잎은 노랗게 말랐습니다.

아침결에 콩 따러 나온 할머니 한 분이 보입니다. 같이 한 장 찍자고 하니 수줍게 웃으며 한사코 사양합니다.

 

 

 

 

 

어느 집 대문 곁에 주차된 승용차를 보니 바로 새벽에 타고 온 승용차입니다.

담장 너머로 왁작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게 친구 18명이나 왔다는 게 맞긴 맞나 봅니다.

조금 걷다보니 다시 그 차가 우리 쪽으로 다가오며 섭니다.

손님들께 선물로 줄 멸치가 모자라 그걸 사러 갔다 오는 길이라는군요.

서울 사람이 지방에 집을 짓고 상주하든 며칠에 한 번씩 오든 요즘 같은 휴가철에는 사람이 꼬이게 마련이지요.

사람을 만나서 즐겁기도 하지만 손님 접대하려면 그것도 일입니다.

 

(친구분들이 저 버스를 타고 온 모양이지요?)

 

(멸치를 사가지고 온다며 차를 세우고 인사합니다.)

 

(저 아래 김일기념체육관이 보입니다.)

 

 

드디어 금산면에 도착했습니다. 마을 식당은 일요일까지 겹쳐 모두 문을 닫아 가게에서 라면을 시킵니다.

마을에 양조장이 있던 게 생각나 더불어 유자 생막걸리도 하나 시켜 묵은지와 함께 먹고 있으려니

유리 미닫이 문 밖으로는 소나기가 세차게 아스팔트 바닥에 물방울을 튀기며 내리꽂힙니다.

빗소리를 안주 삼으니 여행하며 막걸리 한잔하는 맛이 배가됩니다.

막걸리가 갈증 난 목젖을 적시고 넘어가며 유자맛이 감치는 게 괜찮습니다.

차를 타고 가던 여자 여행객이 가게로 들어와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가는 걸 보고

차에서 들지 말고 여기서 들고 가라며 참견하기도 하면서 먹는 라면 맛도 그럴 듯 하고요.

 

(밖에는 굵은 소나기가 쏟아지고...)

 

(빗소리와 함께 감치는 한탁배기...)

 

 

올 생각이 없는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기 답답하여 비에 젖은 아스팔트를 걷자니 김일 기념체육관이 나옵니다.

마당에 세워놓은 김일 석조상은 너무 왜소해서 온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던 프로레슬러 같질 않습니다.

그 조각가 욕 좀 먹었을 것 같습니다.

자료실에는 그런 사람들의 뜻이 받아 들여졌는지 거의 실물비례의 조각상이 비닐포장에 싸여있습니다.

너무나 퀭하니 큰 체육관. 어떻게 유지가 될지 궁금합니다.

그런 쓸데없는 궁금증은 떨쳐버리고 다시 길을 걷습니다.

 

 

 

고개를 넘으니 연소해수욕장이 나타납니다.

캠핑장에는 울긋불긋한 천막들이 쳐져있고, 한쪽에선 아침준비,

밥을 안 먹어도 배고프지 않는 젊은 남녀는 산책로에서 맑은 웃음소리를 뿌리며 행복 만들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요즘은 여행이나 캠핑은 제출해야 될 과제물을 하는 것 같습니다. A학점 받기.

 

 

 

 

 

(수박을 들라며 푸념을 늘어놓는 부녀회 아주머니. 말도 못하고 속이 많이 상합니다.

조용한 마을에선 그 분위기에 맞춰줘야 하는데 요새 젊은이들이 쉽질 않지요.)

 

 

입구에서 부녀회 아줌마인 듯한 분이 테이블에 수박과 참외를 깍아 놓고 이거 하나 잡쑷고 가씨오합니다.

머뭇거리는 나에게 그냥 먹으라며 하나 건네줍니다. 인심이 배여 있었는지 목이 탔었는지 수박이 답니다.

해변에 여행객들이 와서 좋긴 한데 거기에서 생기는 마음고생 또한 큰 것 같습니다.

오랜 연애 끝에 결혼한 부부도 서로 다른 생활방식 때문에 헤어지는 판인데

난데없이 외지인이 들어와 마을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까지 주차하고 텐트 치며 헤집어 놓으니 그럴 만도 하겠습니다.

잘 쉬었습니다. 이렇게 짧게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피로가 풀립니다.

 

(거금도엔 채석장이 많습니다. 산이 깍여나간 걸 보는 게 증겁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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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바람과 산바람에 밀려 이리 구불, 저리 구불, 구부러져 있는 해안도로를 따라 걸으니 익금해수욕장이 나옵니다.

연소해수욕장보다는 사람도 많고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음악이 전형적인 유흥지입니다.

우선 아이스케익으로 열로 달아오른 얼굴과 몸을 식히며 점심 먹을 곳을 찾는데 역시 쉽질 않습니다.

메뚜기 한철이라니 나무랄 것도 없지요. 제육볶음을 시켰는데도 밥이 안 나옵니다.

그건 안주라 밥값은 따로 받는답니다. 대목 공부할 때 사부님 말마따나 정성이 있시야지된장,

그래, 알았다. 잔소리 말고 소주나 한 병 가져와라.

 

 

(넓은 산기슭을 점유하고 있는 태양전지판)

 

 

누가 열 받으라 그랬나? 지 혼자 열 받아 반병 했더니 숨은 차고 땀은 비 오듯 쏟아지는데 내 앞으로 SUV 하나가 섭니다.

옆으로 지나려니 창문을 내리며 말을 겁니다.

 오늘 일정을 대충 얘기하니 자신도 여행을 좋아하는 서울사람이라며 다음에 나오는 금장해변에 집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그곳에 평상과 모기장도 갖추고 있으니 저녁 때 들르랍니다.

 그 말하려고 일부러 차를 되돌려왔으니 말만으로도 고맙습니다. 그러겠다 약속을 하고 발길을 돌립니다.

 

(오천마을에 자리잡고 있는 펜션)

 

(오천마을 입구에서 잠시 쉽니다.)

 

(내가 앉은 자리 밑엔 짱벌이 열심히 먹이를 나릅니다.)

 

(동행은 너무 더우니 체면치레 할 겨를 없이 훌러덩)

 

(타이머를 해놓고 하나, 둘, 셋... 10초를 가늠하고 아그들처럼 펄쩍 뛰었으나

털버덕 땅에 떨어지고 난 뒤 찰칵!)

 

생각으로는 하루 20킬로 정도야 별 것 아니겠거니 했는데 뙤약볕에서 배낭 메고 걷자니 그게 아닙니다.

 도착지인 오천마을,

27번 도로가 끝나는 곳에 오니 다리보다도 어깨죽지가 아파

저녁에 금장해변에 들러 평상에 누워 술 한잔할 달콤한 제안도 엄두가 안 나고

지금까지 지나온 마을을 보아하니 변변한 식당이 없을 것 같고

그분께 저녁까지 신세지게 될 것도 부담이 돼서 그냥 녹동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물론 미안하다고 문자를 띄웠지요.

 

(버스 창틀을 이용하여 창문을 만들고...)

 

(이 장의자 같은 '공구리' 테이블 위에 풋고추 그릇과 된장, 막걸리 주전자 올리면...)

 

물 하나 사먹으려고 마을 작은 가게로 들어가니 완전 70년대 풍경입니다.

대청마루 벽면에 나무로 진열대를 만들어서

라면, 스낵, 세제들을 올려놓고 앞에는 공구리로 만든 빤질빤질한 장의자 같은 테이블이 있습니다.

 대학 때 무의촌 진료를 갔다 구멍가게에 들르면

마을 할아버지들이 막걸리 주전자 놓고 양푼에 담긴 풋고추를 집어 들어 된장을 찍어먹던 바로 그 풍경입니다.

열린 문으로는 손주들이 윤기나는 온돌방에 누워 TV를 보며 재잘대고 있습니다.

딸네 식구들이 놀러 왔다네요.

 곁에 붙어있는 부엌에 들어가 수돗물에 땀을 씻으려니 따님이 설거지를 하고 있습니다.

놀러 왔수? 설거지 하러 왔수?”하니 씩 웃고 맙니다.

 

 

(버스에서 내려다 본 오천마을) 

 

 

거금도를 일주하는 버스는 서로 반대, 양방향으로 운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 않았던 북쪽해안 쪽으로 나가는 버스를 탑니다.

버스는 친절하게도 손님도 없는 막다른 마을을 일일이 찾아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며 녹동으로 향합니다.

여기서 동행했던 분은 속이 좋질 않다며 순천으로 향하고 나는 다시 외떨어져 혼자가 됩니다.

두 사람이 생선회 한상 받아놓고 걸지게 먹으려던 야무진 꿈은 허망하게도 차도녀처럼 미련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김유신 장군의 말처럼 내 발걸음은 자동적으로 해수사우나로 향합니다.

몸을 씻으려고 보니 양말자국이 선명하고 코를 중심으로 발갛게 익었습니다.

또 혼자가 되었으니 어쩐다? 어제 시장골목에서 보았던 동해루라는 중국집으로 갑니다.

바닷가 중국집은 해물짬뽕이 실하다는 설이 있지만 안주겸 밥으로는 약할 것 같아 난자완스밥을 시켰더니

아줌마가 뭐요?’하고 다시 묻습니다. 흔하게 시키는 메뉴가 아니었던 게지요.

 

 

앞자리에 앉아있는 동네 분들 시끄러워도 엄청 시끄럽습니다.

그걸 보니 오늘 같이 동행했던 분이 내가 아침, 점심 반주하는 걸 보고 주사에 시달릴까봐

지레 겁먹고 도망치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혹 이걸 보신다면 저의 방정을 이해해 주시길...)

여하튼 나온 음식은 기대와 달리 훌륭합니다.

소음과 술잔이 날라 올 것 같은 불안감까지 안주로 함께 하며 긴 밤을 대비해 깨끗이 긁어먹습니다.

 

수면실은 어제와 달리 사람이 많이 빠져 운동장입니다.

빈 콘센트에 휴대폰 충전기까지 꽂아놓고, 빨래도 87도 찜질방에 널어놓고...요령이 생깁니다.

토요일에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일정이 당겨졌습니다.

내일 거금도 도보여행으로 잡아 놓았는데 오늘 다 해버렸으니 어쩐다?

에라, 잠이나 자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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