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갤러리

닥다리의 바닷길걷기5-임원에서 북평까지

fotomani 2013. 12. 23. 10:35

 

닥다리의 바닷길 걷기 5번째 코스는 삼척이나 북평부터 출발해야 하는데,

대략 40km 지점에 묵을만한 찜질방이나 마땅한 숙소가 없습니다.

더구나 겨울에 들어서며 기상상태가 어떤 식으로 돌변할지 몰라

혹 눈이라도 쌓이면 보행거리는 당연히 짧아질 수밖에 없겠지요.

궁리 끝에 욕심을 버리고 임원에서부터 출발하여 삼척으로 올라와 삼척온천에서 묵기로 했습니다.

애로사항은 시외버스가 동서울에서 6시 반도 아닌 7시 10분에 출발해서

근 4시간이나 걸리니 걷는 시간은 대폭 짧아지고

동지에 접어들어 해 떠있는 시간은 제일 짧으니, 밥 먹지 말고 걸어볼까요?

걷는 거리가 짧으면 들인 시간과 돈이 아까워 어쩌나? 에고 어찌됐건 몸으로 부딪혀보자.

 

 

동서울에서 강릉, 삼척을 거쳐 임원으로 향하는 길은 어느 정도 낯익은 길이 되어 그리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임원에 도착하자마자 꾸물거리던 날씨는 강하진 않지만 눈을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도보를 시작하자마자 시작되는 고갯길은 나의 기를 꺾기에 충분했습니다.

 

 

고갯길을 넘으며 식사시간을 줄이기 위해 가져온 김밥을 먹으며 모퉁이를 도니

동해대로 육교 아래로 바다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길가에 세워 논 ‘낭만가도’라 쓰여진 표지판,

을씨년스런 날씨와 나의 맘과는 맞지도 않게 지 홀로 행복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기분입니다.

 

 

 

군데군데 녹지 않은 눈을 피해 걸으며 산모퉁이를 도니 멀리 신남항과 해신당공원이 보입니다.

거친 파도가 방파제를 삼킬 듯이 때리고 마땅히 쉴 곳을 잃은 갈매기들이

파도가 칠 때마다 등대 주위를 떼 지어 날고 있습니다.

오늘은 유난히 바다가 거칩니다.

 

 

원래 지형이 험한 곳인지 방파제 안팎에 작은 섬과 암초를 안고 있는 갈남항 월미도 마을은 궂은 날씨에도 아름답습니다.

그래선지 갈남항을 지나며 고갯마루 솔밭 사이로 보이는 바다도 인상적입니다.

 

 

 

방파제를 때리는 파도나 해안의 암초를 때리는 파도의 크기가 엄청나다보니

갈남보다 규모가 큰 장호항에는 온갖 배들이 접안되어 있고

 잠시 쉬는 틈을 이용해 배를 손보고 있습니다.

파도를 한참 구경하고 있다 고개를 들어보니 내가 갈 길이 있는 북쪽 해안이 산으로 막혀있는 게 보입니다.

허걱! 설마, 사잇길이 있겠지. 저걸 넘어야 돼?

 

 

 

장호항을 지나자 삼척레일바이크 용화정거장이 나오지만

이런 날씨에 바이크를 타려는 용감한 사람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고개를 내려오며 젊은 연인 한 쌍을 만난 것도 그 까닭인 것 같습니다.

다시 시작되는 고갯길, 야~ 이거 죽입니다.

고개가 끝나면 또 고갯길, 아까 걱정하던 그 산이 있는 바로 거깁니다.

다행히 저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장호와 갈남항 경치가 지루함을 덜어줍니다.

항구 초입에 동해의 나폴리 어쩌구 한 게 빈말은 아닌 듯합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집채만한 파도은 한꺼번에 너 댓개의 연속파를 만들며 해안으로 밀려들어오고 있습니다.

 

 

 

 

결국 사잇길 없이 꼭대기까지 올라왔습니다. 제가 어쩌겠습니까?

되돌아갈 수도 없으니 그냥 눈감고 올라와야지요.

해안 쪽으로 황영조공원, 초곡항이라 적혀있지만

 해수면까지 내려갔다 다시 올라올 생각이 끔찍해 내려가기가 싫습니다.

잠시 스마트폰 네비를 보니 거기서부터는 한참동안 해변을 따라 걸을 수 있을 것 같아 내려갑니다.

 

 

 

원래대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왔으면

올라오기 싫겠다 할 정도의 급경사를 가진 길을 내려가니 오륜마크가 보이고 기념관이 있습니다.

볼 게 많을 것 같지만 그냥 지나치기로 하고 앞을 보니

암초같은 산이 바다로 불쑥 튀어나와 있어 해안으로는 도로가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대신 그 암초에 구멍이 뚫려있습니다. 터널입니다.

 갑자기 어렸을 때 짧은 철교를 지나던 게 생각납니다.

침목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강물, 기차를 만나지나 않을까 가슴 졸이던 기억,

다행히 레일바이크만 다니게 되어 치일 염려는 없지만 플래시가 없으면 침목에 발이 걸릴 정도로 조명은 어둡습니다.

 

 

 

터널 밖에는 소나무로 지붕을 만든 터널로 다시 이어지고 있습니다.

날씨 좋은 날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바다를 보며 소나무 그늘 아래를 달리는 레일바이크는

돈을 주고서라도 달릴 만하겠습니다.

이 레일구간이 아마 전에 동해북부선으로 불리던 구간일 겁니다.

단선은 레일바이크가 교차할 정도로 돈을 들여 복선으로 깔아 놓았으니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요.

궁촌역 근방으로 가니 비로소 바이크를 타는 청춘남녀-중년남녀가 탈 것 같지 않으니 그렇게 불러봅니다-가 보입니다.

 

 

 

여기서 오른쪽 공양왕릉 쪽 해안을 따라가면 지도상으로도 꼬불꼬불, 그 의미는 다 아시겠지요?

노래에도 나오잖아요? 꼬부랑고개를... 정도가 심한 걸보니 경사가 급할 것 같습니다.

왼쪽으로 우회합니다. 그래도 고갯길입니다.

 사람 만나기 힘든 길에 짧은 팬츠에 윈드스포퍼를 걸친 마라토너가 뒤에서 추월해옵니다.

헛기침을 하며 길을 비키라는 소리겠지요.

반가워 한마디 걸 새도 없이 마라토너는 매정하게 찬바람을 남기며 지나갑니다.

 

 

출발지에 늦게 도착해 도보시간을 아끼려고 김밥으로 요기를 하며 쉬지 않고 걸은 게

오히려 관절에 무리를 주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고개가 많이 있어서 그랬는가?

다행히 국도를 지나는 버스가 많아 근덕에서 일단 삼척역까지 가서 거기서 시내를 걸으며 저녁을 해결해야겠습니다.

근덕 버스정류소에 있던 할아버지는 버스요금이 1천2백원이라고 친절히 알려주기까지 합니다.

 

 

삼척 가로수는 낙엽송입니다. 봉황산을 끼고 삼척중앙시장 근처 밥집으로 들어가 소머리순대국밥을 시킵니다.

국물 속에 넣는 순대는 풀어지기 쉬워 당면이 많이 들어 간 순대를 넣긴 하지만 ‘수제’라고 내세울만한 것은 아닙니다.

대신 사람들이 좋군요. 옆자리 경상도 악센트가 들어간 강원도 말을 안주 삼아 반주를 합니다.

감탄사가 막 흘러나와 대단한 걸 먹는가 봤더니 거기도 국밥입니다. ‘아~~ 허~~어흑’,

그 소리에 반하여 나도 한잔 따릅니다. 소리를 죽여 가며 내는 ‘카~’ 소리는 혹사시킨 근육이 내는 신음소립니다.

 

 

 

 

택시 타고가면 기본이라는 데 걸으려고 나온 놈이 무신 택시냐며 삼척온천까지 걸어갑니다.

중간에 편의점에서 파스까지 열나는 놈으로 한통 사고, 대충 씻고 탕으로 들어갑니다.

뜨거운 물이 지끈한 관절이며 근육을 부드럽게 애무해줍니다.

추운 날 걸었어도 한참 걸으면 몸에서 열이 나게 마련입니다.

냉탕으로 들어가 폭포수로 온몸을 두드리고.

이 삼척온천 전립선염에 걸리지 않은 샤워 물줄기하며 열탕, 냉탕 수온과 다른 곳보다 부드러운 안마의자가 맘에 듭니다.

물통 하나짜리 식혜를 하나 사들고 MP3 이어폰으로 귀마개하고 잠을 청해봅니다.

 

 

누구 핸드폰 알람소리인지 10분 간격으로 계속 울려주는 바람에 깼습니다.

새벽 3시가 아니길 바라며, 다행히 5시 조금 넘었습니다.

짐 정리를 하고 새벽에 목욕하러 온 사람들께 물으니 다행히 눈도 안 오고 그리 춥지 않답니다.

눈이 안 왔다는 건 믿겠는데 그리 안 춥다란 말은 별로 믿을 게 못됩니다.

군인정신이 투철한 사람은 안 추울 것이고 나약한 민간인은 추울 것이고

그래서 국방부에 대민서비스로 심리전단 같은 게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배낭에 깜빡이 차고 플래시 챙겨들고 나갑니다. 지난 번 종착지였던 북평을 향해.

삼척IC로 가니 일반국도와 자동차 전용도로 구분이 안 됩니다.

네비를 믿고 산속 길로 들어가니 다행히 해안이 나옵니다. 어스름히 먼동이 트며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합니다.

파도소리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집을 부수는 소리가 납니다.

삼척해수욕장을 지나 작은 고개를 넘으니 증산해수욕장, 북쪽으로 촛대바위가 있는 추암해수욕장이 보입니다.

정동진이나 마찬가지로 일출 보기위한 장소로 유명한 곳이지요.

옛날엔 장바닥 같더니 많이 깨끗해졌습니다.

군부대가 있어 돌아가야 할 것으로 짐작했는데

다행히 초병 순찰로와 산책로를 공용으로 만들어 우회하지 않더라도 추암해변으로 곧장 갈 수 있습니다.

철책에 붙여놓은 딱지를 만지고 있는 애띤 초병에게 그거 뭐냐 물으니 우물쭈물합니다.

아마 군사기밀인 모양이라고 웃으며 지나칩니다.

 

 

해안에 사람들이 몰려있어 무얼 하나 봤더니 풍등입니다. 강풍에 겨우 불붙인 풍등을 하늘로 날려 보냅니다.

소.원.성.취.

 

 

 

북평 동해자유무역지구를 빙 돌아 마침내 종착점인 북평동에 도착합니다.

동해시외버스터미널에 식당이 없었던 게 생각나 여기서 아침이나 들고 가야겠습니다.

또 소머리국밥, 여긴 순대가 들어가질 않는답니다.

짜배기로 순대 한 두 덩이 얻어 볼까 신소리를 해보려 해도 여주인은 한 치의 빈틈을 보이질 않습니다.

 머 별 수 없지. 대신 국물이 진국입니다.

소머리국밥에 들어간 고기는 맛은 별로여도 여자 분들에게 요즘 각광받는 젤라틴 성분이 많다는 걸 참고로 말씀드립니다.

 

 

 

 

고개, 파도, 바람이 인상적인 도보여행이었습니다.

첫날 29km, 둘쨋날 9km정도. 올해 바닷길 걷기는 여기서 끝입니다.

내년엔 경북으로 진입하겠지만 울진에서 포항까지 교통편과 숙박이 신경 쓰입니다.

 

내년엔 경제가 더 나빠진다고 야단들입니다.

이보다 더 못 하겠냐 마음먹고 지나볼라 합니다. 다 같이 겪는 어려움입니다.

길은 혼자서도 걸을 수 있지만 삶은 혼자 가는 게 아닙니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고 함께 하는 사람이 있어 새해에는 더 밝아질 수 있을 겁니다.

힘내십시오, 여러분!

 

38km

누적 166km

 

닥다리 블로그

http://blog.daum.net/fotoma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