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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집 같은 절- 완주 화암사

fotomani 2014. 4. 17. 11:49

기존 홈페이지가 폐쇄되며 잃어버린 글을 수정. 보완하여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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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옛집을 접하다 보면 자나 자 형태의 집에서 아담한 마당을 접하는 때가 많다.

아파트가 흔치 않았을 때에는 우리가 살던 집이 바로 그런 집들이어서

아침이면 싸리비나 수수비로 모래알 하나 없이 비질하는 소리를 듣던 때가 있었다.

 

 마당의 쓰임새는 꽤 많아서 김장을 하거나 손님을 치룰 때처럼 큰일도 치러내고

일상에는 솥을 걸어 놓고 밥을 짓거나 국이나 지짐이를 부치는 일,

별이 총총한 여름밤에 평상에 눕거나 멍석을 내어 놓고 모기를 쫓으며

이야기를 꽃피우는 광경을 떠올리게 마련인데 현대식으로 말한다면

아파트 거실에 해당한다고나 할까?

 

 

그래서 집 한가운데 있는 작은 마당은 당연히 세속적인 냄새를 풍기게 마련인데

 이런 아늑한 마당을 가지고 있는 아담한 절이 완주군 경천면 가천리 불명산 자락에 있다.

사찰이라기보다는 절간이라고 하는 것이 어울릴 것 같은 화암사는 불명산 작은 계곡 끝자락에 위치해서

깊은 산은 아니더라도 넓은 부지를 확보할 수 있는 곳이 없고,

계곡은 건천이라고 믿어지지만 비가 많이 오거나 눈이 많이 내리면 꼼짝없이 고립될 것 같은

심산 같은 지형조건을 가지고 있다.

 

 

 

 

절로 가는 오솔길은 작은 계곡이라 할지라도

수많은 작은 폭포와 울창한 나무들로 싸여 있어 상쾌한 기분으로 산책할 수 있는 곳이다.

우리가 갈 때는 이미 완주 송광사에서 뜻하지 않은 유쾌한 재미를 느끼고 난 후라,

혹 화암사를 찾았을 때 혹 그런 기분이 깨지지나 않을까 우려했는데 그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송광사와는 다른 마치 소쇄원 정원을 걸어올라 가는듯한 오솔길과 맑은 물,

시골집에 온 듯한 살림집 같은 절간 그리고 집으로 포근히 감싸여진 네모난 작은 마당은

송광사와는 다른 만족감을 주었다.

 

 

 

 <화암사 대문 시주기> 대문에 어눌하지만

정성스레 빼꼭하게 명단을 적어 놓아 세속과의 끈끈한 관계를 보는 것 같아 미소짖게 만든다.

 

화암사를 찾게 된 동기는 마지막 남은 백제 하앙식 건축양식을 보러 간 것이었는데

그런 목적은 계단을 올라 위 아래로 휘어진 다감한 월방(月枋)을 가진 작은 문을 지나 마당으로 들어서는 순간

머리속에서 담박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대문에 적어 놓은 어눌하지만 꼼꼼하게 작은 글씨의 <화암사 대문 시주기>,

 

 왼쪽 우화루와 오른쪽 적묵당 건물 사이 골목으로 진입한다.

 

 

 절밖에선 기둥에 받혀진 누각이고 안에선 마당과 단차가 거의 없는 강당.

 

 

 오래 전에 마곡사에서 이렇게 소박하고 무서운 얼굴을 하지 않은 목어를 보았던 기억이 있다.

작년에 다시 찾았을 때 없어서 서운했었는데 마치 그 목어가 환생한 것 같아 반가웠다.

 

건물 흙벽으로 둘러싸인 동네골목 같은 통로,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는 나무결이 들어 난 기둥과 문틀,

완고한 할아버지가 연상되는 낡았지만 힘찬 글씨의 편액,

우화루의 단청이라는 화장발은 구경해본 적도 없는 듯한 꾸미지 않은 목어,

우화루 마루 한쪽에 단정히 정리되어 쌓여 있는 가재도구

우화루는 강당일 것으로 생각되지만 이러한 절의 규모로 보아 다른 용도로 쓰일 것 같고

오히려 그런 분위기 때문에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마루는 안마당과 거의 단차가 없어 마당의 연장선처럼 여겨진다.

우리 기억에 익숙한 편안함 때문인지 우리보다 먼저 온 사람들은 적묵당 툇마루에 먹을 것을 풀어놓고

퍼질러 앉아 이야기하고 있다.

 

화암사는 극락전이 대웅전 역할을 하고 있다.

 

 

하앙식 건축양식이라는 게 별게 아니다.

간혹 오래된 절에 가보면 지붕 네귀퉁이 추녀가 처지는 것을 막을 목적으로

기둥을 세워놓은 것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이런 식으로 서까래에 가해지는 하중을 분산시키기 위해

사진의 녹색점처럼 아래로 뻗은 구조물 위에 가로 걸쳐 긴 막대(외출목도리)를 대고

 그 위에 서까래를 올려놓음으로 하중분산과 처짐 현상을 막는 걸 말한다.

 

그 제서야 살펴본 극락전

하앙(下昻-서까래가 처지는 것을 막는 지붕구조)은 전면부에 용머리 형태를 후면에 용꼬리 형태를 취하고 있어

허균(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의 설명대로라면 법당 전면의 용머리는 선수(船首), 용꼬리는 선미(船尾)가 되어

이는 부처님을 모시고 중생을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반야용선(般若龍船)을 상징한다 했는데,

불명산 산자락에서 떠나는 반야용선, 극락전이라정말 그럴 듯하다!

 

 

법당 내부는 법회가 진행 중이라 자세히 살피기 힘들었으나

어둠 속에서 송광사에서처럼 날아다니는 주악비천상(奏樂飛天像) 목조각이 연꽃봉오리와 함께 보여

깨달음의 희열 속에 운항하는 반야용선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이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건물과 구조지리산 화엄사 보제루와 개심사 법당 배치구조가 언뜻 떠오르지만

이렇게 마음이 편하고 아담한 절을 우리 곁에 두고 있다는 뿌듯함을 안고 절문을 나선다.

 

07/04/03

 

닥다리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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