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서울 시내에 제대로 된 고유 기능을 갖추고 있는 재래시장이 별로 없습니다.
남대문 시장이나 동대문 시장이나 주종목은 시들하고 먹자골목만 흥청댑니다.
이런 와중에서도 경동시장은 아직까지도 농수축산물을 주종으로 하는 서울에서는 가장 큰
규모의 재래시장일 겁니다. 사실 크게 경동시장이라 함은 경동시장을 주축으로
약령시장, 청량리 재래시장, 청량리 청과물 도매시장, 청량리 수산시장, 동부 청과시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전 집에 갈 때 약간 돌아가면 되므로 가끔 이곳에 들르는데 장보러 나오는 사람이 많은 만큼
먹을 곳도 요소요소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청량리 청과물 도매시장이란 간판이 달린 문쪽으로 한 100여 m 들어가면
길가에 그야말로 시장통에서나 볼 수 있는 안주인 닭발, 닭똥집(모래주머니), 참새구이,
순대, 돼지머리고기, 자연산?바다장어,,, 심지어 돼지꼬리까지 중무장한 포장마차
대폿집들이 있고 그끝 골목 초입에 이름도 야리꾸리하게 <성아한식부페>라고 적힌 식당이
하나 있습니다. 닭 한마리 7천원, 삼계탕 8천원, 삼겹살 5천원?
음식점에서 옹근 삼계탕 1만원짜리 삼계탕까진 봤어도, 심지어 이마트에서 데워먹기만
하는 간편식도 7천원인데 음식점에서 8천원?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삼계탕이길래?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부는 생각보다 깨끗하고 어머니가 하다가 가게 일을 인수 받은 듯한데
차림상에서 보듯 맹탕 날루 먹으려는 심보는 아닙니다.
음식값을 이 정도로 저렴하게 받는데 돈들여 김치를 사다 내놓지는 않겠지요.
마치 겉절이처럼 싱싱하고, 함께 나온 치킨무도 식재료상 제품인 깍뚝썰기가 아닌
나박썰기로 그리 달지 않습니다. 사실 이번이 두번 째로 지난 번 삼계탕에서 약간
군내가 났어도 다시 찾게 된 것도 별 건 아니지만 이렇게 깔끔하게 반찬 내올 정도면
다음 삼계탕엔 괜찮지 않겠나 하는 막연한 기대감도 작용했습니다.
닭은 영계보단 약간 큰 중닭입니다. 아무리 시장에서 닭값이 싸더라도 기대 이상입니다.
저야 반주할 때 모자랄까봐 양 조절할 필요 없으니 행복하지요.
한방 삼계탕이라고는 하지만 황기나 감초 등 한약재를 넣어 삶은 삼계탕은
아닙니다. 그래서 국물이 담백합니다.
전 날개부터 먹는데 보기좋게 다리를 놓고 찍으려다 핀이 나갔습니다.
네, 오늘은 냉장고에서 며칠 묵힌 냄새가 나질 않아 기분이 좋습니다.
이 겨울에 전문집도 아닌데 ... 아마도 이건 뽑기운(運)일 겁니다.
주인 양반이 파를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파 좀 달랬더니 무지막지하게 엄지손가락
굵기만한 대파를 즉석에서 썰어서... 다대기 갖다 달라면 거친 고춧가루를
가져올까봐 그냥 먹습니다. ㅋㅋ
영화 <집으로>에서 치킨 사달라는 손주에게 백숙을 해주는, 맛은 손질을 안한
할머니의 거친 손으로 만든 그러나 잔잔한 정이 연상되는 그런 담백한 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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