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기+만들기

이러려고 육포했나?

fotomani 2019. 4. 16. 08:09



지난 번 술 한잔 걸치신 듯한 정육점 아자씨에게 육포용으로 썰어 달랬더니 

불고기처럼 얇게 썰어줘 애를 먹었다는 얘기를 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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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아서 온전한 모양을 하고 있는 육포가 없고 모두 파지(破紙) 상태입니다.



육포 먹는 기분이 나질 않아 다시 간을 하여 팬에 볶았더니 볶음 반찬이 되었습니다.

한참 잊고 있다가 곰팡이 슬었겠지 하고 꺼내보니 술안주로 괜찮더라는.. ㅋㅋ



TV에 아질산나트륨을 사용한 빨간 육포가 나옵니다. 식욕 당기게 빨간색을 유지하려고

1급 발암 물질 중 하나인 아질산나트륨을 발색제로 쓴다나요? 

정상적인 육포 색깔은 검습니다.

또 어느 신문 기사엔 중국 보따리 장사가 소금인 줄 알고 국에 집어 넣었다가

암이 생기기도 전에 돌아가셨다는 얘기도 있고요.

그걸 보고 있다 내가 제대로 된 '자연산, 수제, 흑고무신' 육포를 보여주겠다고 허세를 부립니다.


이번엔 그 집이 아닌 건너편 정육점으로 갑니다.

이 집 아자씨, 4 mm로 썰어 달라니 '이 정도면 됐냐'고 친절히 물어 봅니다.

좀 더 얇게 썰어 달라고 하니 두 번 씩이나 두께 조정을 해도 마냥 똑같은 두께로 나옵니다. 

이 아자씨는 상상 음주 상태인지 마냥 입으로 친절만 하지 말하나 마나 입니다. 그만 포기.



이틀 정도 말렸는데도 두꺼우니 아직도 생고기 색깔입니다.

모처럼 아들이 집으로 와서 불고기 대용으로 살짝 구워줍니다



'육포에요?', '좀 덜 말라서 그렇지 양념은 알맞네요' 어쩌구 저쩌구...

그 꼬락서니를 곁에서 가만히 보고 계시던 중전마마께서 한 마디 날리십니다.

'그건 육포가 아니라 스테이크네'

그 순간 따뜻하던 불고기편에 서리가 앉고 육포가 천덕꾸러기로 변합니다.


철군을 할까 말까 망서리던 조조가 암구호로 '계륵'을 하달했더니 

철군 준비를 시키는 '총명한' 부하 장교(양수)가 있어 목을 날렸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남은 속상한데 군더더기 하나 없는 매끈한 촌철살인, '밉상'입니다.



자존심 무척 상했지만 육포로 말려서 먹다간 딱딱해서  '니빠디' 상할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론  우습기도 하고 그 말이 일리 있어 양념을 더 넣어 눅눅하게 볶았습니다.

이래서 육포를 만들 때 적당한 건조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고급스레 꿀을 쓰는 모양입니다.

두께가 얇으나 두꺼우나 처방은 눅눅하게 만들려고 똑같이 양념 더하고 볶으니 돌팔이 맞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렇게 해 놓고 1주일 정도 내버려두니 육질도 약간 부드러워지고

숙성되는 거라면 꼴값떤다 그러겠지만 양념이 배어 깊은 맛이 납니다. 

내가 만든 것이라 해도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는데 맛은 술을 부르는 맛입니다.

장롱 속에서 하명이 없어 체념하고 불로주가 되려 하는 와인을 불러 냅니다.

 자고로 문명의 발달과 문화의 발전은 범생이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게으른 천재로 출발한다는데 한 표 던집니다. 흠 흠 ㅋ


닥다리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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