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먹기

하얀 눈이 흰 국물을 부르네-중림장

fotomani 2020. 1. 23. 10:13



안산 자락길이 좋다는 건 휠체어로도 산책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완만한 산책로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길게 주욱 벋은 메타세퀘이어 사이로 난 길을 걷는 즐거움은 무엇과도 견줄 수 없습니다.



이런 길은 가급적 느리게 걷는 게 좋지요.

올 겨울은 유난히 포근해서 바깥에 나가기 좋습니다.

새벽에 사우나를 하고 홍제천으로 해서 안산 자락을 올랐습니다.



자락길로만 돌다 중간에 등산로로 무악정을 거쳐 봉수대까지 오릅니다.

사방이 탁 트인 경치 올 들어 처음입니다.



이쪽 길은 등산로답게 제법 경사도 급하고 안전 밧줄도 쳐놓았습니다.



확실히 등산로 쪽이 경치가 좋군요. 다음부턴 이 길을 많이 애용할 것 같습니다.



낮에 이슬비가 조금 뿌린다는 소식은 있었는데 비 대신 하얀 눈이 내립니다.



붉고 높은 담장을 사이에 두고 내리는 눈을 보는 느낌은 전혀 달랐을 겁니다.

단체 행동만 허용되는 군 훈련을 받아 본 사람이라면 구령에 맞추지 않고

자유롭게 걷고 먹고 자고 생각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아실 겁니다.

너무 한가한 생각인가요?



하얀 눈이 설렁탕을 부릅니다. 이날 핸드폰 사진이 흔들려 다른 날 사진으로 가름합니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코레일 열차와 건널목. 아마 서울 도심에서는 마지막 남은 건널목일 것입니다.

서소문 고가차도 밑이니 엎드리면 코 닿는 데가 바로 시청이지요. 



이곳에 스카이라인이 형성된 것은 불과 십 수 년 정도밖에 되질 않습니다.

바로 곁에 경찰청, 중앙일보, 서울역이 있고 약현성당, 염천교 수제화거리가 있어

新舊가 공존하는 곳입니다. 바로 이곳에 설렁탕 잘하는 집이 있다 해서 찾아 갔습니다. 



거기까지 일부러 찾아갈 필요가 있었냐고요?

한식에 있어 아직까지 논쟁 중인 것이 평양냉면 사리 맛과 설렁탕 육수 맛일 겁니다.

평양냉면 사리는 지난 판문점 회담 이후로 논쟁 자체가 무의미해졌고

설렁탕 국물은 워낙 가짜가 많아 원래 어떤 맛이었는지 아무도 모를 정도가 됐습니다.

청국장 냄새를 기피하듯 설렁탕 특유 꼬리한 냄새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어 

옛날 설렁탕 국물은 간 데 없고 정체 모를 뽀얀 국물만 판을 칩니다.



그런 기분 좋은 꼬리함이 살아 있다 해서 확인 겸 가 보기로 했습니다. 주방이 분주합니다. 



설렁탕이 선농단과 떼어 놓을 수 없듯이 풍년을 기원하는 제를 지낸 후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 함께 먹으려고 큰 비법 없이 소를 잡아 뼈와 고기를 함께 넣고 푹 삶아 

국밥으로 먹은 게 효시랍니다.

설렁탕의 독특한 냄새는 머리 뼈에서 비롯된다고 하는데 

이 냄새를 싫어하면 머리 뼈를 제외한 사골과 잡뼈를 쓴답니다.

설렁탕의 부드러운 고기와 지라, 더불어 식욕 돋우는 꼬리한 국물 냄새 거기에 

파를 듬뿍 넣으면 삼위일체 그야말로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맛이 되지요. 



이 냄새를 간직하고 있는 설렁탕집이 종로 2가 ㅈㄹ설렁탕, 왕십리 ㅈㄱ설렁탕, 장안동ㄷㅎ설렁탕이 있으나

냄새만 그럴 듯하고 육수의 깊은 맛이 아쉽고 고기 양에 부족함을 느낍니다.

이 집은 꼬리한 냄새가 강하다 해서 간 것인데 그건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지만 

푸짐하게 내주는 포기김치와 비교적 양이 많은 고기에 어우러지는 감칠 맛은 어디보다도 좋았습니다. 



'깍꾹'으로 불리는 김치 국물까지 넣어 마무리합니다.



아~ 좋네요. 바쁜 시간에 가면 대접 받지 못할 가능성이 보이지만 그 시간대를 피하면

가격, 양, 맛 괜찮습니다.



옆집에 붙은 가격표입니다. 소주, 막걸리 5,000원? 오잉?

그러나 회값을 보니 그럴 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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